본문 바로가기
다른 나라에서

미국 허리케인 Sandy로, 국제 떠돌이 가족이 되다.1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10. 27.

 

 

 

 

2012년 작년 10월, 꼭 이 맘 때였습니다.

미국 유학 중이던 막내 동생이 결혼을 한다고 했습니다.

막내 동생을 못 본 지 오래였고, 미국에서 12년째 이민 생활을 하고 있던 다른 동생을 못 본 지도 5년이나 되었던 시점이었습니다.

결국 그리스에 사는 저희가 대서양을 건너간다면, 부모님까지 모두 한 자리에 5년 만에 모이는 셈이었습니다.

당시 그리스 영주비자 확인 종이 서류는 있는데 그리스 정부 개편으로 영주권 신분증이 1년 반 넘게 나오지 않으면서, 이런 제가 미국으로 출국이 가능하다고 했다가 아니다 라고 번복 주장하는, 일 못하는 그리스 이민국의 직원 때문에 맘 고생을 많이 했었고, 결국 책임자까지 만나 가며 어렵게 미국 행을 준비했습니다.

 

결혼식에 입을 우리의 옷과 구두, 오랜만에 만나는 부모님과 동생 가족을 위한 선물, 막내 동생 결혼 선물로 기념될만한 직접 그린 그림까지, 여러 가지를 꼼꼼히 준비했을 만큼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설렜습니다.

그런데…동생 결혼식 9일 전이었던 출국 예정일 이틀 전쯤부터, 저희가 가려는 뉴저지 지역을 비롯한 미국 동부 여러 지역이 허리케인 Sandy 샌디에 휩쓸리게 된 것입니다!

  

 

연일 보도되는 뉴스를 보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혼 준비로 부모님께서 진작부터 머물고 계셨던 큰 동생의 집은 이미 지하실 침수가 시작되었고, 뉴저지 대부분 지역이 정전사태가 벌어져 밤에 보일러를 틀 수도 밥을 해먹을 수도 없는 심각한 상태라고 했습니다. 집 전화도 끊어져서 동생은 사무실에서 간신히 충전한 휴대폰으로만 통화가 가능했습니다.

게다가 결혼식을 하기로 한 번화가의 고층빌딩들까지 정전이 된 상태라, 뉴저지의 가족들은 과연 결혼식을 제대로 치를 수 있는 것인지 비상사태였습니다.

국제 뉴스로 대대적인 허리케인 피해 상황을 보도하다 보니, 그리스 시부모님께서도 "갈 수 있겠니?" 라고 걱정부터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희 미국행과 동생 결혼식을 걱정하던 와중에도 그리스인 가족들은 이 허리케인 이름을 둘러싼 공방으로 치열했는데요.

시아버님 : "샌디라잖아. 샌디."

시어머님 : "산디가 아니고?"

(영국식 영어를 기본으로 사용하며, A발음은 무조건 아, 로 발음하려 하는 그리스인들에겐 이것을 샌디라고 부르는 게 도리어 이상했던 것이지요.)

꿋꿋한올리브나무 : "어머님, 미국식 영어로는 샌디에요."

시어머님 : "그래도 난 산디가 익숙한데?! 내 친구 중에도 산디가 있어! 머리가 빨간색인데 아주 곱슬이야.

               주근깨도 많지…"

 

…라며 얘기는 완전 삼천포로 흘렀습니다.

커피한잔

 

어떻든, 긴 여행에서 천재지변을 자주 경험한 저의 과거를 돌이켜 보았을 때, (911 테러 때 난민 생활을 했던 것을 기억하시지요? 일본에서 태풍으로 난민이 된 또 다른 여행도 있었는데 그건 다음에 소개할게요.) 이런 경우 항공사에서 비행기를 완전 취소하는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일단 출발을 해야 목적지까지 대안이 생기지, 그냥 포기하면 다른 비행기는 폭주된 예약자들 때문에 절대 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결혼식은 절대 갈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나는 것입니다.

 

저희 가족 비행기는 <로도스-아테네-스위스 취리히-뉴욕JFK> 이렇게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비행기였지만, 총 비행시간은 로도스에서 뉴욕까지 11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그리 길지 않은 일정이었고, L 항공사에서 할인항공권이 나왔을 때 감사하게도 세 사람을 위한 일정 전체 왕복항공권을 아주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허리케인 뉴스가 계속 보도되면서, 항공사 로도스 사무실과 아테네 사무실로 전화를 했는데, 뉴욕 JFK 공항은 닫힌 상태였지만, 한꺼번에 연결해 구입한 항공권이라 스위스 취리히까지는 항공권이 취소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저, 매니저 씨, 딸아이는 예정된 출발 날짜에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던 로도스 새벽 도로를 달려 공항으로 출발하게 됩니다.

그렇게 한 시간 만에 아테네에 무사히 도착하였고…

다음 티켓을 발권 받으려고 항공사 부스를 찾았을 때, 항공사에서는 계속 뉴욕뿐 아니라 미국 대도시 전체 공항이 닫혔기 때문에 저희에게 지금은 티켓을 발행해 줄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동생 결혼식이 있어서 꼭 가야만 해요.."

"손님 뿐만 아니라 뒤에 기다리는 모든 분들이 오늘 미국으로 가려던 분들입니다.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여기서 미국 공항이 열리길 바라며 대기를 하시든, 스위스 취리히 까지 가셔서 대기를 하시든 그건 손님의 자유입니다."

헉

언제 열릴지도 모르는 미국 공항 상황인데, 언어도 서툰 스위스 공항에서 대기하며 기다리는 것은 더 끔찍해 보였습니다.

OTL"그, 그냥 여기서 대기할게요. 스위스 시계가 아무리 좋아도 계속 구경할 순 없을 것 같아요.."

 

매니저 씨와 딸아이는 초조해 했고, 시아버님께 전화를 해서 상황을 얘기했더니 저희가 걱정되신 시아버님은 그냥 다시 로도스로 돌아오라고 성화셨고, 그런 말을 들을 것을 뻔히 알면서 굳이 전화를 하는 매니저 씨를 겨우 달래 좀 기다려보자고 방법이 있을 거라고 진정시켰습니다.

미국 가족들 역시 저희 걱정이 되긴 마찬가지여서, 그쪽에서도 일단 알아보겠다며 집에 전기도 안 들어 오는데도 여러 항공사로 전화를 하며 수고를 하였지만, 역시 공항이 열리지 않으니 미국에서도 티켓을 구할 수는 없었습니다.

몇 시간을 기다려도 항공사 직원은 아무 말이 없었고, 저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다른 연계 항공사가 있으시지요? 저기 S 항공사가 연계된 것으로 아는데, 혹시 모르니 가서 물어 봐도 될까요?"

"맘대로 하시든가요. S 항공이라고 별 수 없을 텐데요.~"

퉁명스런 직원의 말투에 빈정 상해할 틈도 없이 저는 S 항공 부스로 찾아갔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어차피 스위스를 경유해 가야 하는데, L 항공에서 이쪽으로 가보라고 했어요. 부탁드립니다."

스위스인으로 보이는 눈썹까지 밝은 금발인 남자는 "아, 네 그러세요?" 라며 친절하게 전산을 두드려보더니,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아! 지금 미국 공항 전산시스템이 열렸어요. 하지만 공항이 정상 가동되는 것은 5일 후부터 라고 뜨는데, 이 말은 5일 후에야 미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괜찮으시겠어요?"

"5일이요?"

5일 후면, 결혼식 이틀 전이니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5일 동안 어디를 어떻게 경유해 가야 하는 건가요?"

"우선 아테네에서 3일을 계시고 스위스 취리히에서 한 나절, 영국에서 2일을 계시는 것입니다. 다만 아테네에서 2박3일의 항공권과 식사권은 천재지변이므로 저희 항공사에서 지급해 드리지만, 영국에서1박2일은 제공해 드릴 수가 없어요. 원래 예정된 경유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조건이라도 가시겠어요?"

 

 

 <아테네 2박3일 - 스위스 취리히 5 시간 - 영국 런던 1박2일 - 미국 뉴욕 JFK>

 

 

라는 말이었는데요...

"5분만 주세요! "

저는 잽싸게 매니저 씨를 불렀고, 이렇게라도 하자고 설득했습니다. 분명 기다리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이 조건으로나마 안 가면, 미국에 갈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평소 자기 주장 강한 매니저 씨였지만, 이날만큼은 뾰족한 다른 수가 없기에 순순히 제가 하자는 대로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아테네 공항에서 네 시간을 기다린 끝에, 미국까지 세 번의 항공권과 아테네 호텔 숙식권까지 받고, 항공사 금발 눈썹 아저씨에게 거의 90도로 인사를 하며 저희 가족은 부스 앞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부스 앞에서 채 몇 걸음 떨어지지 않아 금새 알게 되었는데요.

 

제 바로 뒤에 기다리던 나이 지긋한 신사분께서 금발 눈썹 직원아저씨에게 "미국 공항 시스템이 열렸다고요? 보스턴을 가려고 예약했었습니다." 라고 말했고, 전산을 찾아본 금발 아저씨는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아! 그 사이 벌써 예약이 다 찼네요. 미국 전국 공항, 항공사가 지금 아주 전쟁 같은 상황일 테니까요. 죄송하지만 보스턴으로 도착하는 비행기는 10일 후 날짜부터 가능합니다. "

느낌표

'어머, 우리도 조금만 늦었으면 결혼식을 아예 못 볼 뻔 했네?? 아이 감사해라..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그 신사분이 울상이 되어 보스턴 행을 예약할 때, 바로 옆 직원에게 예약을 하는 다른 손님은 시카고로 들어가려는 분이었는데, 옆사람보다10초 정도 예약이 더 늦었을 뿐인데 2주 후에야 미국 도착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매니저 씨와 저와 딸아이, 저희 세 사람은 이렇게나마 미국을 갈 수 있게 된 상황에 감사하며, 신나게 호텔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려고 이동을 했는데요.

하룻밤에 200유로(약 30만원)를야 하는, 제 돈 주고 라면 절대 가지 않을 좋은 호텔이었기 때문에 어떻든 공짜로 묵는다는 사실에 기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엔 그 후 5일이 아닌, 7일 동안 미국에 들어갈 수 없는 우리 가족에게 어떤 험난한 일이 벌어질 지 전혀 알지 못 할 때였습니다.

그렇게 저희 가족이 국제 떠돌이가 된 다음이야기는 내일 다시 이어집니다~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관련글

2013/09/11 - [다른 나라에서] - 911테러 때 내가 미국에서 겪은 이상한 난민 생활 1

2013/04/08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외국인 사위를 마약 사용자로 오해한 한국인 아버지

2013/02/14 - [세계속의 한국] - 그리스인 남편의 팝송 제멋대로 한국어로 부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