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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에서

911테러 때 내가 미국에서 겪은 이상한 난민 생활 2. 끝.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9. 12.

 

 

 

시카고 아주머님 댁에서 지낸 지 사흘 째 날이 밝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행색은 점점 이상해져 갔는데요. 샤워를 한번 하려 해도 한 두 시간 차례를 기다려야 할 만큼의 인원이었기 때문에 씻는 것도 대충할 수 밖에 없었고, 가방 안에는 열흘 미국 일정 동안 입었던 구겨지고 세탁하지 못한 정장들만 잔뜩 들어있어, 대부분 일행들은 시카고에 도착하기 열 시간 전, 버스를 탈 때 입었던 장거리 비행을 위한 트레이닝 복에 가까운 복장으로 나흘을 버티고 있었습니다.

결국 냄새 나는 것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집주인 아주머님의 아들이 고등학교 때 입다가 버리려고 놔둔 살짝 구멍 난 바지, 소매가 늘어나고 빛 바랜 후드 티 등을 얻어 입게 되었습니다. 세탁기를 쓰라고는 하셨지만 속옷만 겨우 여자 것 따로 남자 것 따로 한 두 번 세탁하는 게 다였으니까요.

 

사흘째 날까지도 공항은 열리지 않았고 저희가 이용하는 항공사는 전화가 불통이었습니다.

결국 저희는 공항으로는 들어갈 수 없으니 시카고 시내에 있는 항공사 사무실을 찾아가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한 두 명만 알아보러 갔다가, 갑자기 공항이 열릴 경우 선착순 대기자부터 비행기를 타고 또 못 탈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일행이 짐을 들고 함께 움직이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스물 다섯 명의 인원이 짐까지 싣고 가려면 버스를 빌려야 해서 인근 렌터카 회사에 전화를 했는데, 워낙 상황이 상황인지라 저희처럼 비행기를 타지 못한 수 많은 사람들이 렌터카를 이용하면서 렌터카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싸졌던 것입니다. 승용차도 버스도, 없어서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택시를 나누어 타자니 시내에서 다시 공항으로 이동할 경우 등, 일행들이 흩어져버리면 연락도 되지 않고 정말 난민이 되어버릴 수 있는 여러 변수가 있어, 정말 어떻게라도 이동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여기 저기 전화를 하시던 한 분께서 "찾았다!" 라며, 버스나 승용차의 반값이면 하루를 빌릴 수 있는 이동 수단을 찾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뭔지 모르지만 찾았다니 얼른 예약을 부탁드렸고, 저희는 혹시 오늘 이 집을 떠나 만약 공항이 열린다면 다시 이 집에 못 올 수 있기 때문에 열심히 구역을 나누어 아주머님 댁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청소가 대략 끝나고 예약한 이동 수단이 도착했다는 들뜬 목소리가 들려 스물 다섯 명의 인원은 부랴부랴 짐을 챙겨 집 밖으로 나갔는데요.

저는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헉

 

 

 

 

거기엔, 제가 태어나 단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었고 영화에서나 보았던 검정색과 흰색의 아주 긴 리무진이 대기해 있었고 턱시도를 입은 기사분들이 리무진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하고 했더니, 리무진을 예약하신 분께서 하신 설명은 이랬습니다.

"지금 시국이 이래서 시카고에 있는 결혼식 등 큰 행사가 많이 취소되었대요. 그렇게 취소된 리무진을 굉장히 싼 가격에 빌릴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 리무진 한 대에 최대한 촘촘이 끼어 타면 열두 명 까지는 탄다고 하더라고요. 짐은 트렁크와 발 아래 좀 끼워 넣고, 아주머님께서도 시내까지 차로 최대한 많은 가방을 실어다 주신댔어요."

대박세상에나...

 

지금 행색들이 어떠하든 그것과 상관없이 일단 저희는 리무진을 타야만 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각각 열두 명 정도씩 구겨져서 리무진에 올랐고, 리무진 내부는 정말 호화롭기 그지 없었지만 그것을 즐길 여유가 없을 만큼 따닥따닥 붙어 앉아 있었기 때문에 얼른 도착하기만 고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삼십 여분을 달려 시카고 시내로 진입하니 창 밖으로 보이는 시카고 풍경에서 아름다움과 동시에 삼엄함이 느껴졌는데요.

다음 테러 가능지로 예상되어서인지 곳곳에 방탄 조끼에 형광색 옷을 덧입은 경찰들이 무장을 하고 서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내 안을 좀 더 달려 두 대의 리무진은 항공사가 있는 건물 근처에 세워졌는데요.

이제 드디어 숨막히게 구겨져 있는 곳에서 나가 숨통이 트이겠구나 싶어, 사람들은 문 옆에 앉은 남자 분께 얼른 문을 열라고 재촉을 하던 찰나에, 정말 민망하게도 턱시도를 입은 기사분께서 그 문을 열어 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귀빈도 아닌데 왜 문을 열어주냐고요~안 열어 주셔도 되는데..."

헉4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문은 열린 후였습니다.

 

저희는 한 명씩 차례로 내리기 시작했는데, 그 때부터 밖에서 지나가던 시카고 시민들이 웃기 시작했는데요.

이건 저희가 생각해도 웃는 이유가 좀 많이 이해가 되었던 게, 리무진은 창 밖에서 안에 누가 있는지 보이질 않는데, 안 그래도 시내 한 복판에 초호화 리무진이 서서 어느 유명인이 내리려나 길가다 서서 쳐다 보고 있었을 사람들 앞에, 멋진 운전기사 턱 내려 리무진 문을 여니 웬 구멍 뚫린 바지, 떡진 머리, 꼬질꼬질한 사람들이 열 두 명이나 차례로 내리는 모습이 얼마나 웃겼겠습니까.

ㅎㅎㅎ

 

첫 번째 차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두 번째 차에서 역시 그 만큼의 인원이 내리자 급기야 구경하던 시민들 중에는 휘파람을 휘릭 불며 환호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책임져

아아...너무 창피하다...

 

저의 창피함의 정점은 사실 제 청록색 체크무늬 바지에 있었는데요.

그나마 구멍 뚫린 시카고 아주머님 아들의 바지가 제게까지는 돌아올 여분이 없어, 당시 잠깐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체크무늬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었던 저는, 미국에서는 그 복장이 전형적인 잠옷이라는 것을 알고 크게 경악하여 벗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그렇다고 구겨진 정장바지나 정장치마를 입을 수도 없어 창피함을 무릅쓰고 나흘이나 그 바지를 입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멋진 시카고 시내의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리무진에서 내리는 제 바지만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은 떡진 머리를 쳐다보고 있었는지도...)

 

 

 

 

정말 제 덩치가 커서 쥐구멍은커녕, 다른 사람들 뒤에 숨을 수 없는 게 한이었다고 할까요?

머릿속에서는 오래된 노래 한 구절이 웅웅 맴돌았습니다.

 

그렇게 창피함을 무릅쓰고 항공사에서 얻어낸 정보가 있었는데, 며칠 안에 급하게 출국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공항이 몇 시간만 열렸다 닫힐 예정이라는 것이었고, 항공사 직원은 거기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단체로 찾아온 저희를 돕고 싶었던지, 공항이 열리면 전화를 줄 테니 집에서 기다리다가 바로 출발하라고 말 해 주었습니다.

리무진까지 타고 나왔는데 오늘도 한국에 갈 수 없다는 사실에 실망한 저희에게, 이왕 이렇게 된 것 시카고 피자를 먹고 가자며 맛있는 곳으로 데려가 주신 아주머님 덕에 기분은 좀 나아졌지만, 결국 저희는 그 리무진을 다시 타고 아주머님 댁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틀 뒤에 딱 한 시간 공항이 열려, 이 항공사의 단 한 대의 비행기가 한국으로 향할 때 그 비행기를 타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미국 타 지역으로 출장을 갔던 다른 팀의 사람들 이야길 들어보니, LA 쪽에서는 공항이 닫혀 호텔을 잡긴 했는데 방값이 올라 상상을 초월하는 호텔비를 지불하고 열흘이나 더 묶여 있어야 했던 사람도 있었고, 사건이 발생한 뉴욕에 내리는 국내선을 타고 있었던 사람은 비행기가 공중에 있는데 공항이 닫혀버려 공중에 한 시간 반을 떠 돌다가 급유 때문에 비행기가 우회해 캐나다에 내려서 거기서 한국으로 들어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나마 저희는 난민처럼 두려움에 떨며 거지 꼴로 지냈지만, 인정 많은 아주머님 덕에 굶지 않고 잠도 잘 수 있었고, 이유가 어떠했든 태어나 처음 리무진을 타보기도 했으며, 항공사를 찾아간 덕에 정보를 얻어 일주일이 채 못되어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십이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잠옷 같은 체크무늬 바지를 입고 눌린 커트 머리를 하고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그래도 시카고 피자가 맛있다며 허겁지겁 먹었고, 그 와중에 트리뷴 Tribune 신문사 건물이 멋지다며 무장 경찰과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던, 그때의 제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은 9월입니다.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 image 출처는 google image입니다.

* 시카고의 고마운 아주머님과는 그후 몇 번인가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몇 년 후 연락이 끊어졌고, 지금은 그저 건강하시길 마음으로 바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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