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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에서

낯선 장소의 진수를 경험한 영국에서의 사흘 - 미국 허리케인 Sandy로, 국제 떠돌이 가족이 되다.3 끝.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10. 30.

 

  

런던 중심가에서 24km가 떨어져 있다는 영국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 것은 현지 시간으로 밤 12시가 다 된 시간이었습니다.

취리히 공항에서 이미 한번의 비행기 연착을 더 겪었고, 원래 5시간으로 예정되었던 기다림은 10시간 넘었으며 그렇게 취리히 공항에서 대기하며 하루를 다 보낸 저희는, 시계사진들을 보는 것도 지겨워 기운을 다 소진해, 오늘 런던에서 잘 곳을 구해야 하는데 라는 걱정뿐이었습니다.

  

취리히 공항에서 기다리다 지친 딸아이

런던에서의 1박은 자비로 해결해야 했기에, 아테네에 있을 때부터 히드로 공항 근처에 있는 호텔들을 알아보고 예약을 하려 했지만, 갑작스런 미국 입국불발로 영국에서 며칠을 대기해야 하는 유럽각지의 사람들은 저희만이 아니라서, 공항 근처의 대부분 호텔은 이미 예약이 다 찬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예정된 오후에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면 호텔 Information장소에서 더 기운차고 느긋하게 호텔들을 알아볼 수 있었을 텐데, 취리히에서의 연착으로 밤 12시가 다 되어 도착한 저희는 암담하기만 했습니다.

저희가 원래 여행으로 런던에 머물게 될 예정이었다면 공항 호텔 정보를 수집하고 어떻게 이동하면 좋을지 계획도 있었겠지만, 갑자기 벌어진 상황으로 영국에 오게 되었기 때문에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전혀 정보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급한 대로 아테네에서 떠나기 전에, 런던에 제가 아는 유일한 아는 사람인 말레이시아계 영국인인 메이에게 연락을 했지만, 로도스에 가족과 관광 왔을 때 렌터카 타이어가 하필 저희 집 앞에서 펑크나 저의 도움을 받았던 인연으로 언제든 런던에 오면 본인 집에서 하루 자고 가라고 신신 당부를 했고 이메일로도 몇 번 연락을 주고 받았었던 그녀였는데, 그녀가 말한 대로 재워달라는 요청을 한 게 아니라 긴급상황이라 호텔 정보만 좀 얻을 수 있을까 했던 몹시 미안한 기색으로 건 국제 전화에도 불구하고, 메이는 자신이 지금 병원 응급실 당직이라 바빠서 전화를 받을 수 없다며 훅 하고 전화를 끊었고 다시 연락이 오질 않았습니다.

 

"역시… 말이 먼저 앞 서는 사람은 국제적으로 어디나 있구나…혹시라도 그녀의 제안대로 내가 그 집에서

자겠다고 말이라도 했다면 어쩌려고, 그녀는 내게 그런 말들을 한 걸까."

헐

 

영국 입국 과정 역시 만만치 않았는데, 신분이 한국인인데, 그리스에서 출국했으나 스위스와 EU연합인 관계로 출국 도장은 취리히에서 찍혀있는 여권으로 영국으로 입국하려 하는 저에 대해, 정말 너무 늙은 할머니라 어떻게 은퇴를 안하고 일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입국 심사관이 계속 제 말을 못 알아듣고 "그러니까 한국인인데 스위스에 산다고?" "아니, 그리스인인데(그리스어로 쓰여진 영주비자를 보더니) 한국에 산다고?" 등의 이상한 질문을 했습니다.

히드로 공항 입국심사 업무를 보는 할머니 귀에 보청기 하나 놔드려야 겠어요…

wassap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저희들은 겨우 입국 심사를 마치고 히드로 공항 지도를 펼쳐 들고, 일단 Information으로 가기 위해 공항 내에 터미널 사이를 이동하는 열차를 탔습니다.

열차는 듣던 명성대로 내부는 좋았지만, 입국 장소에서 저희가 가려는 3터미널로 가려면 두 번을 갈아타야 하는 열차 편만 남아 있었는데요.

처음 와본 장소에서, 갈아타는 곳도 애매하고 창문 밖은 캄캄한 12시가 넘은 시각에 열차를 갈아타며 기다리느라 다리는 다 풀린 상태였습니다.

"엄마…배고파… 졸려…"

"아휴…우리 딸. 호텔가서 자자. 어쩌면 좋니. 스위스에서 너무 오래 있어서 간단히 먹은 게 양이 안 찼나 보네.."

런데…겨우 도착한 공항 Information에서는 이곳에서는 호텔 예약이 꽉 찼으니, 호텔 예약만 전담으로 하는 Information이 따로 있다며 또 다른 터미널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겠어요!!! 

저희는 공항열차를 다시 두 번 갈아타고 그 터미널을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호텔을 알아보는데, 직원의 말은 이랬습니다.

"지금, 미국 행이 연착되며 공항 근처 호텔은 모두 꽉 찼습니다. 여기서 런던 안쪽 방향으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호텔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는데, 거긴 3인이 지낼 방이 두 개 딱 남은 호텔이 있군요. 가격은 200파운드(약 35만원) 입니다. 예약해 드릴까요?"

"그렇게 비싼 호텔밖에 안 남아 있나요? 지금 들어가 자고 또 내일 오전엔 다시 여기로 와야 하는데요…"

"방이 남아 있는 제일 싼 호텔로 알려드린 것입니다. 아니면 공항에서 아주 먼 호텔들인데, 내일 다시 들어오시려면 그런 곳으로 갈 수는 없으실 텐데요. 그곳은 버스비만 1인당 70파운드(약12만원)가 듭니다"

 

사실 현금을 좀 들고 오긴 했지만, 그것은 막내 동생 축의금으로 주려 했던 돈과 미국에 머무는 동안 사용할 돈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돈을 막 써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하지만 딸아이가 없고 저희끼리라면 추워도 공항 의자에서라도 대충 눈을 붙이든지 할 텐데, 아이를 데리고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어디라도 들어가 자야 했습니다.

그런데 결정을 못하고 어물거리는 몇 분 사이, 그 방을 누군가 인터넷으로 예약해 버린 것입니다!

"Sir! 이제 250 파운드(약 43만원) 방 하나가 남았군요. 예약 해드릴까요?"

"예약해주세요." 매니저 씨는 얼른 대답하고 돈을 건넸습니다. 그리고 호텔까지 공항버스표도 구했습니다.

흠....영국은 미술품 경매가 유명한 곳이라더니,

호텔 예약도 무슨 경매가격 흥정하듯 부르는구나... 정말 비싸다....흑.

안습

 

공항버스를 타는 승강장이 있는 곳은 무척 추웠고, 새벽 2시가 넘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버스가 3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밤 시간이라 배차간격이 긴 것 같았습니다.

딸아이는 서있는 채로 졸기 시작했고, 의자는 너무 차가워 엉덩이를 붙일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아무 정보도 없이(혼자 배낭여행을 해도, 여행 전에 모든 일정을 시간단위로 미리 정해 움직이기에) 낯선 곳에 있어본 적이 없던 저는, 서서 졸고 있는 딸아이를 보고 있자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매니저 씨는 아이를 안았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했지만, 차는 여전히 오지 않았습니다. 택시를 타고 가고 싶어도 캄캄한 밤이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30분을 더 기다렸고… 새벽 3시가 넘자 딸아이는 졸다가 바닥에 주저앉아버렸고 옷을 겹겹이 꺼내 입혔지만 얼굴은 꽁꽁 언 상태였습니다.

아이를 들어올려 매니저 씨에게 인계한 저는,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고개를 계속 한쪽으로 돌리고 있다가 반대로 돌리려는데, 앗! 강한 통증이 오면서 역시 팍하며 길바닥에 주저 앉고 말았는데요.

너무 아파 한번 눈물이 흐르니, 주체하지 못하게 흘렀고, 그리스 이민국에서 미국 행 때문에 직원에게 설움 당한 일부터 그간의 그리스 생활에서 고생했던 과정이 한꺼번에 떠오르며, 그리스에서 이만큼 그 동안 고생했으면 됐지, 미국에 가족 보러 가기가 이렇게 힘든가 싶어 어깨까지 들썩이며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엉엉

평소에 잘 울지 않는 제가 갑자기 우니 놀란 매니저 씨가 "왜 그래? 추워서 그래? 다리 아파? 어쩌지? 곧 버스 올 거야. 울지마." 라며 호들갑스럽게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아냐…배가 고파서 운 거야."

괜히 울어버린 게 민망한 저는 눈물을 닦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는데요...

갑자기 매니저 씨는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른 공항버스를 기다리던 미국인 모녀를 부르더니, 자기가 쇼를 보여주겠다며 아이를 안은 채로 입으론 마이클 잭슨 빌리진 노래를 부르며, 이상한 판토마임 같은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헉

그 큰 덩치로 그렇게 춤을 추는데, 영문 모를 미국인 모녀는 Awesome! 이러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안겨있던 딸아이는 자다 깨서 아빠의 모습에 깔깔거리고 웃기 시작했습니다.

우하하하하웃겨

정말 사진 찍을 여력도 없어서 찍어놓지 못한 게 아쉬울 만큼 폭소를 부르던 매니저 씨의 판토마임 춤은 10분 동안 계속 되다가 멈추었고, 배가 아프도록 웃은 저와 딸아이, 미국인 모녀는 급 친해져서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결국 버스가 왔고, 시설은 좋지만 운전사 아주머님은 불친절한 그 버스가, 돈에 비해 시설이 전혀 좋지 않은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5시가 다 되어서였고, 좁은 화장실에서 급하게 샤워를 하고 정신 없이 세 시간 동안 잠을 잔 후 호텔 시설만큼이나 맛 없는 잉글리쉬 브랙퍼스트를 먹고 다시 그 버스를 기다렸다가 공항으로 돌아왔습니다….

호텔이 있던 런던의 동네 풍경입니다.

그리고? 히드로 공항 S 항공사 부스에서 짐을 부치려는데, 직원은 이런 말을 남깁니다.

"손님들, 죄송합니다. 미국 공항이 기상악화로 하루 반을 더 닫혀있게 되어서 내일 오후까지 출국하실 수 없으십니다. 저희 항공사에서 1박 2일 호텔, 식사쿠폰을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호텔은 공항에서 30분 거리에 있고 셔틀은 무료입니다. 내일 오후에 여기에 다시 오시면 되겠습니다."

 

저와 매니저 씨의 반응은 어땠냐고요?

미친 듯이 깔깔거리며 웃었답니다. 도대체 이럴 거면 뭐 하러 이렇게 고생해서 여기에 또 왔나 싶었지만 이제 어이가 없다 못해 웃음밖에 안 나오는 이상한 상황이었달까요?

결국 좋은 호텔을 배정받았고 이렇게 2박 3일이나 런던에 있을 줄 미리 알았다면 런던 시내 관광이라도 했을 텐데 전혀 그럴 기운도 시간도 남아있지 않던 저희는 그냥 호텔에서 먹고 자고 TV보고를 반복하다가 다음날 공항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항공사에서 무료 제공한 방은 359파운드(약 62만원) 였네요!

 

새로운 비싼 호텔에서 맛있는 것을 많이 먹어서, 기분이 좋아진 두 사람

 

(이 호텔에서 생긴 이상한 일과 미국 입국 심사에서 느꼈던 씁쓸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것은 얘기가 기니 나중에 따로 한번 소개할게요.)

 

결국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한 저희는 가족들과 엄청난 포옹을 하였고, 결혼식 바로 전날 늦은 오후에 도착한 저희 가족은, 그간 계속 시간 변경선을 넘어가며 일 주일을 이동했던 떠돌이 생활에서의 피곤함 때문에, 다음 날 결혼식에 얼굴이 퉁퉁 부은 상태로 참석해야 했고, 양복입고 부은 눈을 가리려고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웨딩홀 앞에서 담배를 피던 매니저 씨는 정말 이 건물 매니저냐 경호원이냐 묻는 질문을 받아야 했으며, 딸아이는 결혼식 도중 너무 조느라 결국 그렇게 기대하던 그날의 스테이크 풀 코스 만찬을 하나도 먹지 못했고, 결국 의자를 침대 삼아 잠이 들었답니다.

 

경호원이세요? 매니저세요? (정말 이런 곳까지 와서 매니저라는 별명을 듣는 매니저 씨입니다^^)

 

 웨딩홀 건물 전망대에서 맨하탄을 바라보며

 

졸려서 눈을 뜨지 못하는 딸아이^^ 

 

그래도... 그렇게 고생해서 가족을 만날 가치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역시 Yes라고 말할 수 밖에 없네요.

짧아진 미국 일정 동안, 아주 찐하게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함께 미국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수다의 장을 열였으며, 한국음식도 배터지게 먹었으니 말이지요.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행복한 딸아이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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