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헤어진 지 한 달이 넘었어.
난,
아직 울지 못했어.
너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었나 봐.
너와 마브로가 우리 집 뒷마당에서 처음 태어났을 때
난 막 태어난 아기 고양이를 처음 보았거든.
좀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어.
붙임성 좋은 마브로와 달리, 넌 언제나 나와 거리를 두었지.
네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네 엄마가 죽고
1년쯤 후에 마브로가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지고
네가 내 옆에 남아 주었어.
다른 고양이들도 정말 사랑스럽고
말라꼬처럼 붙임성 좋은 녀석들도 있는데
내가 쓰다듬을 수 없게 늘 도도한 네가
난 늘 제일 좋았어.
너와 마브로는 나의 첫 번째 고양이였으니까.
그런데 뭐니.
4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속 시원하게 만지지 못 하게 하더니
그렇게 몸이 쇠약해져 있을 때
가슴팍에 크게 다친 상처가 생겨서야
도망갈 기운이 없어서 내가 널 쓰다듬을 수 있도록 내버려뒀어.
정말 널 만질 수 있는데도
하나도 기쁘지 않더라.
힘차게 뿌리치고
너의 그 우아한 꼬리를 흔들며 도망가주었으면 싶더라.
가족들 눈치 봐가며 너를 며칠을 집안에서 돌보았는데
잘게 찢어 준 닭가슴살을 먹다 말고 토해내고 사료를 또 토해내던 네 모습을
나는 아마 오랫동안 잊지 못 할 것 같아.
이웃들이 병원에서 다친 부분을 잘 치료하도록 도와주었지만
넌 끝내
맘 좋은 술라 아줌마 집의 해가 잘 드는 정원 의자에 앉아
그렇게 자는 듯 눈을 감았어.
네가 새로온 막스 때문에
몇 년을 잘 지내던 마당에도 편히 못 있었던 것 같아
많이 미안했어.
난 말이지 아스프로.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너무 이기적이다 싶어.
넌 나에게 참 많은 순간 위로가 되어 주었는데
내가 변변히 고맙다고 표현한 적도 없었더라.
나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저 만치 앉아있던 너에게
아니, 어쩜 햇볕 아래 졸고 있던 너에게
난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누구도 들어 주지 않았던
아니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속마음을
한국말로 떠들 수 있었지.
사람의 고민이.
입밖으로 나와 말이란 게 되기만 해도
백 배는 가벼워진다는 것을
너를 통해 처음으로 알았어.
한국인이 없는 이 곳에서,
지금 보다 좀 더 외로웠던 시절에
넌 하나님이 나에게 준 참 고마운 선물이었어.
어쩌면
너와의 시간들을 반추하는 것도
나를 위로하는 이기적인 행위인 것 같아
계속 미안하기만 해.
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짧은 몇 년 동안
행복하고 좋았던 순간도 있었겠지만
바깥에서의 삶이 녹록하지 않았을 것이고
어쩌면 비로소 그 시간이 끝이 난 것일 텐데 말이지.
더 이상은 춥거나 뜨겁지도 않으며
사냥을 다니거나 잠자리를 찾으려고 지붕을 타지 않아도 될 텐데.
내가 널 정말 좋아하면서도
여건상 너를 집안에 끼고 키우진 못 했고
어쩌면 그래서 그리 크게 다쳐버렸을까 싶어
미안한 마음에 난 여태 울지 못 한 걸까.
넌 정말 고맙고 특별한 친구였어.
앞으로 어떤 고양이에게도
널 대했듯 마음을 줄 순 없을 거야.
여태 살면서 그렇게 많고 아픈 이별을 했었는데
어쩜 매번 이렇게 익숙할 수 없는지
어쩜 매번 이렇게 속수무책인지
아직 10년 전, 7년 전, 4년 전 이별들로도
토할 것처럼 울렁이고 현기증이 날 때가 있는데
난 왜 이렇게 생겨먹은 인간인지 모르겠다. 친구야.
널 보내기 싫어서 자꾸만 말이 길어진다.
그래도……
이젠 인사를 해야겠지?
안녕, 아스프로.
잘 가.
어라? 이제야 눈물이 흐르네.
* 아스프로는 크게 다쳐 치료 과정에서 고통스러워하긴 했지만, 퇴원 후 햇볕 좋은 날 자는 듯 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다른 고양이들은 강아지 막스와 친구가 되어 함께 서로 쓰다듬어 가며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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