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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그리스 문화

고기 구워 먹는 국경일, 그리스인들의 시름을 덜어주네!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2. 22.

 

 

 

드디어! 그리스의 먹는 국경일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빵빠라방~~

 

지난 목요일(20일)이었던 치크노뺌디를 기점으로 앞으로 줄줄이 먹는 국경일들이 당분간 이어질 예정인데요.

 

 

 Τσικνόπέμπτη 치크노

'고기 굽는 연기가 나는 목요일' 이란 의미의 치크노뺌디는 그리스의 국교인 정교회의 절기에 맞추어 정해진 날로, 그리스 최대 명절 중 하나인 빠스하(부활절) 40일 전부터 음식에 대해 절제하는 전통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음식을 절제하기 전에 고기를 실컷 구워 먹으며 명절을 즐겁게 기다리는 국경일입니다.

이 시기엔 전국적으로 할로윈과 비슷한 가장무도회(απόκριες πάρτι 아뽀끄리에스 파티)를 하며 즐기고, 그 가장무도회가 있는 주 목요일이 전 국민이 고기를 구워먹는 날인 것입니다. 부활절이 해마다 날짜가 바뀌듯, 이 치크노뺌디도 해마다 날짜가 바뀝니다.

 

 

올해의 치크노뺌디는 작년에 비해 거의 20일 정도가 빨랐고, 작년처럼 터키로부터의 독립기념일과 겹친 것도 아니어서 공휴일은 아니었습니다.

(작년 치크노뺌디와 독립기념일 행사 관련글 ☞ 전 국민이 고기를 구워먹는 그리스의 특이한 국경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전국민 대부분은 조금 일찍 퇴근들을 했고, 아이들 학원은 모두 저녁 수업이 없었으며, 일찍 집으로 돌아온 가족과 친척들은 모여 고기를 구워먹고 파티를 했습니다.

라디오와 TV에선 이 치크노뺌디를 즐기는 사람들의 풍경이 그려졌고, 신나는 음악들을 틀어 주었는데요.

 

 

 

 

 

 

언론에서 소개한 그리스 전국의 이날풍경들입니다. 마치 축제같이 즐거워보입니다.

(사진 출처 - google image.gr)

 

 

의미는 다르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마치 우리나라 대보름이나 동지 같이 특정 음식을 먹는 날 저녁에, 야근도 없고 아이들 학원도 모두 쉬며 전국민이 예외 없이 그 풍습을 지킨다면 좀 특이하다 싶을 것 같은데요.

물론 국교가 정교회인 그리스에서는 이 날이 중요한 날이기 때문에 더 제대로 풍습을 지키려 할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가는 곳 마다 고기 연기가 자욱한 것을 해마다 보며 그리스인들은 진짜 먹는 것에 목숨들을 거나 싶을 만큼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저희 시댁 가족들은 올해는 다들 여러 사정이 있어 함께 모이지 못했고, 각자 가정에서 고기를 구워먹거나 바비큐를 구워주는 식당을 찾은 경우도 있었는데요.

매번 많게는 수십 명씩, 적게는 스무 명씩 모였던 시댁가족들인데, 이번에 이렇게 간소하게 열 명 정도가 모여 고기를 구워 먹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굽기 전에 향채와 소금 후추 간을 해 재둔 고기와 소시지들

 

그런데 최근 저희 가족들 중에도 그리스 경제위기 후폭풍으로 갑자기 정리해고 되어 새 직장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이번 주말 전국적으로 있을 가면 무도회 소품들을 이날 조금씩 미리 들고 와 재미있게 파티를 하려고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인지 가족들의 표정은 그렇게 밝지 않았습니다.

다들 좀 지친 표정들이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상황을 지켜보던 고모님께서 무슨 결심이라도 하신 듯 벌떡 일어나셨습니다!

사실 이날은 아직 밤에 밖에서 바비큐를 하기엔 좀 추운 날씨였는데, 고모님은 시댁 부엌에 세팅이 다 되어 있는 식탁을 박차고 가족들은 데리고 바비큐가 구워지고 있던 정원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저는 고모님들이나 시누, 사촌들이 도대체 추운데 왜들 저러나 싶었지만, 저보다 더 당황하신 것은 시어머님이셨습니다.

비가 자주 오는 그리스 겨울엔 정원에 앉을 일이 없기 때문에, 어머님은 여기저기 물건을 비 맞지 않게 비닐을 씌워 놓은 상태였고, 테이블 세팅도 전혀 되어 있지 않아 정원은 파티를 할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고모님은 부랴부랴 물건을 정리하려는 어머님 팔을 턱 잡으시더니, "우리, 오늘은 그냥 고기 구워지는 대로 그냥 대충 먹기로 해요. 접시 한 두 개에 같이 얹어 놓고 먹자고요~~ 라디오 틀고 노래도 하고, 그렇게 스트레스를 날려 보자고요!"

 

그리고는 정말로 신나게 먹고, 노래하고, 즐기기 시작했는데요.

저는 추워서 내내 바비큐 불 옆에 붙어 있었는데, 고모님들과 친척들은 그렇지도 않은 듯 갑작스런 준비 안 된 정원 파티를 신나게 즐겼습니다.

 

 

 

 

 

 

 

코스프레중인 두 사람

 

 

매니저 씨와 마이크를 번갈아 들어가며 노래하는 중인 마리아나

 

 

서로 심하게 춤추고 노래하다가 손이 모자에 엉키고

 

모자와 머리카락이 또 엉켜 비명을 지르고..ㅎㅎㅎ

ㅋㅋㅋ

 

격렬한 춤사위에 사진도 흔들 흔들

ㅎㅎㅎ

 

 

 

 

 

이렇게 디저트까지 먹고, 결국 추워서 모두 안에 들어와 또 2차로 파티를 이어갔고,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모임은 끝이 났습니다.

저는 중간에 몰래 빠져 나와 블로그에 어제 글을 발행하고 다시 모임으로 복귀했다가 아주 늦은 시간에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참 쉽지 않아서 끄으응~~이상한 소리를 내며 일어나 딸아이를 학교에 겨우 데려다 주고 출근을 했는데요.

학교에 데려다 주고 나오는데 보니, 평소보다 지각한 아이들과 부모들 다수가 학교로 막 뛰어 들어가는 모습이 보여서 어제의 파티들이 각 가정마다 얼마나 늦게들 끝났는지 알만 했습니다.^^

 

오후에 다시 아이를 데리러 가서 교실 앞에서 기다리는데, 작년 딸아이 담임이었던 베티 선생님과 반갑게 인사를 하며 어제 고기를 얼마나, 누구와, 어떻게 구워먹었는지 서로 이야기 꽃을 피웠는데, 저는 그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그제서야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한국 못지 않게 많은 노동시간을 갖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그리스인들의 요즘 처한 어려운 국가 경제 상황에서, 어제의 국경일 파티는 잠시나마 그들의 큰 시름을 덜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더 이상 그들이 국경일이라고 먹는 것에 목숨 건다는 말은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오늘은 또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 일터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요.

그리스인들이 이번 주말 전국적으로 있을 크고 작은 가면 무도회 파티를 통해서도 이런 현실들을 내려 놓고 좀 쉴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매니저 씨가 저를 부르는 "아주마니!" 동영상 소개합니다.~^^ 

 

 
저는 이 동영상을 찍은 후에 '한 살'이라고 대답해 빈축을 샀습니다.ㅎㅎㅎ
 

 

여러분도 편안한 주말, 잘 드시고 잘 쉬시는 시간 되시길 바랄게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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