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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그리스 문화

그리스가 가난해서 봉지 쌀을 먹는 게 아니에요.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12. 14.

 

 

 

몇 년 전 한참 그리스가 경제위기로 국가신용등급이 바닥을 치면서 그리스 관련 국제뉴스는 온통 이에 관한 기사들로 도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그리스에 여행 왔던 지인들 중에 제게 이런 질문을 던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니, 슈퍼에 쌀이 왜 이렇게 밖에 안 팔까? 여기 사람들이 쌀을 잘 안 먹어서 그런가?

아니면 그리스 경제가 어려워졌다더니, 다들 쌀을 많이 씩 사 먹을 여유가 없는 걸까?"

??

 

그 지인이 이렇게 물어 본 것은 함께 슈퍼마켓을 방문한 때였습니다.

 바로 쌀 코너를 들여다 봤기 때문이었는데요.

 

 

 

 

다양한 종류의 쌀이 있었지만, 도무지 2kg 이상 포장단위의 쌀은 찾아 볼 수도 없고, 그나마 가장 흔한 단위가 1kg, 500g 단위였기 때문입니다.

지인은 두리번거리며, "이렇게 봉지 쌀 밖에 없으면 엄청 불편하겠다." 라며 더 많은 단위로 쌀을 살 수 없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다른 코너를 소개했습니다.

 

쌀을 원하는 만큼 담아 저울에 측정해 가격표를 붙여주는 이곳에서도, 쌀을 한국처럼 10kg, 20kg 단위로 사가는 사람은 보이질 않았기에, 지인은 고개를 내내 갸우뚱했습니다.

나름 지인 입장에서는 '그리스 요리는 다른 서양 요리에 비해 쌀 요리가 많다' 라고 들었던 것에 비해, 한국보다는 적은  단위로 쌀이 유통되는 모습이 생소하게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저는 그 지인에게 이렇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있죠…국제뉴스란 게, 원래 그 나라와 큰 관련 있는 부분이나 세계적인 이슈가 되는 부분만 다루게 되다 보니, 그리스에 관한 현재의 경제 위기 현장에 대한 기사를 주로 접하셔서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되었나 봐요. 그렇지만 이렇게 국가 경제가 바닥을 쳤다고 해서 국민들이 모두 쌀을 대량으로 못 사 먹을 정도로 가난한 것은 아니랍니다. 실제로 인구 수가 한국의 1/3 밖에 안 되어 국가 총생산 GDP가 한국보다 낮은 것이지, 그리스의 1인당 GDP는 한국과 여전히 비슷한 수준이랍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서 국제 뉴스에 나오는 한국의 뉴스는, 한류나 기술력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여전히 북한, 한국 군대, 조선 사업, 특이한 것을 먹는 문화에 대한 뉴스들이 많더라고요. 그리스가 한국과 교류가 많은 나라가 아니라 그런 줄은 알겠는데, 제 입장에선 그런 기사만 계속 보면, 속상하지요."

 보통 그 나라의 개인의 생활 수준을 알기 위해서는 국민 총생산이 아닌 1인당 GDP를 보고 알 수 있다고 하지요? 

 2012년 IMF 기준으로는 대한민국은 GDP 1인당기준 2만3679$, 그리스는 GDP 1인당기준 2만4197$ 이었다고 하는데, 한국은 올해 GDP가 더 올랐다니 2013년 회계가 마무리 되고 나면, 숫자의 변동이 있을 듯 하네요.  

 

"어머? 그런가? 난 여기 이렇게 여행 와보기 전엔 그리스가 정말 가난한 줄 알았어. 하긴 해변에 나가보니 정말 여러 나라 사람들이 여행들을 왔더라. 이 나라가 즐길 거리나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이들 올 수 없겠지. 내가 한국에서만 뉴스를 듣다 보니 생각이 짧았나 봐."

 안습

그렇다면, 그리스에서 이렇게 소량으로 봉지 쌀이 유통되는 진짜 이유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1. 그리스는 주식이 쌀이 아닙니다. 이들의 주식은 다양한 육류와 빵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아무리 쌀 요리가 다른 서양권보다는 많다고 하나, 주식이 아니니 쌀을 그렇게나 대량으로 사다 먹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2. 그리스에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인 이민자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습니다.

그리스는 비자발급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즉, 유학이나 주재원, 확실한 취업 등의 이유로 이민을 오는 경우에나 비자 발급이 그나마 순조롭고, 국제결혼 배우자 조차도 비자발급 과정에서 몇 번은 혈압이 오를 만큼 복잡하고 까다롭고 비합리적인 비자발급 과정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민자의 대부분은 확실한 신분과 이민 이유를 갖고 있거나, 혹은 그리스 주변 경제 약소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내려온 불법체류자들인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아시아에서 확실한 이유가 없이 이곳으로 이민을 선택하기엔 이주과정이 상당히 어려운 것입니다.

실제 그리스 전국의 한국인 이민자는 250명에서 350명 사이에 불과한데, 숫자의 변동 폭이 큰 것은 영구 거주자가 아닌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3. 건조하고 뜨거운 여름이 긴 그리스에서는 적은 단위로 포장된 쌀이 관리가 편합니다.

이렇게 적은 양으로 잘 포장된 쌀들은 포장을 뜯기 전엔 벌레가 생기거나 쌀이 맛이 없어지거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날씨에서 신선하게 쌀을 보관하려면, 수납공간이 크더라도 대량으로 사다가 보관하는 것은 쌀맛을 텁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저도 한국에서는 최소 10kg 단위로 쌀을 사다가 먹었었는데, 그리스에 와서 갑자기 1kg, 500g 단위로 쌀을 사서 먹으려니 불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생활이 적응이 되고 나니, 이렇게 소량으로 포장된 쌀을 저장하는 것이 의외로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저희 집은 저와 딸아이 외에는 한국식 쌀밥을 먹는 사람이 없기에, 한번 밥을 할 때 500g 포장 하나를 뜯어 씻어서 밥을 해 놓으면, 그리스 음식과 함께 먹다 보니 이틀은 먹게 됩니다.

즉, 한번 밥을 할 때 포장 하나씩 뜯어 사용하니, 쌀 맛도 깔끔하고 그리스의 날씨에서도 보관이 정말 쉽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1주일에 한 번씩 5~6 봉지의 쌀을 사서 보관해 두는데, 어차피 집밥을 중요하게 여기며 자주 장을 보는 문화에 살고 있기 때문에 크게 불편하게 느끼진 않습니다.

 

저희 집 부엌 싱크대 서랍 안의 쌀들입니다.

 

물론 그리스에서도 까르푸와 같은 대형마트에 가보면 드물게 식당 업소용으로 10kg 이상 단위의 쌀을 판매하기도 하는데, 샘플로 판매하는 이 쌀을 먹어본 결과 식감과 맛이 확실히 '소량 포장되어 대중화된 쌀들' 보다는 좋지 않아, 개인이 이렇게 대량으로 쌀을 사다 놓고 먹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봅니다.

 

 

      여기서 잠깐!  그리스에서 쌀을 고르는 요령은 이렇습니다.

 

 아시아인이 비교적 모여있는 편인 아테네의 경우, 아시안 마켓에서 쌀을 구입해서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쉽게 일반 그리스 마트에서 한국 쌀과 비슷한 쌀을 구입하려면 '카롤리나' 라는 종류의 쌀을 찾으면 됩니다.

 또한 '원하는 만큼 담아서 살 수 있는 쌀'이 '소량 포장되어 상품화된 쌀'보다는 싸지만, 맛에서 후자가 월등히 나으므로 한국식 쌀밥을 할 때는 오른쪽과 같은 쌀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1kg 1.54유로(약2,300원)                           1kg 2.95유로(약4,300원)

 사진처럼 오른쪽 '소량 포장 쌀'을 선택하면 10kg 43,000원이니, 한국 현 시세의 거의 두 배 가격이긴 합니다만, 소스가 섞인 그리스식 요리에 들어가는 쌀의 식감과 한국식 쌀밥의 식감은 완전히 차이가 있기 때문에, 오른쪽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한국쌀과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물론 소량 포장 쌀이라해도 한국의 쌀보다, 특히 햅쌀보다는 맛있지 않습니다.

 

                                                                    

'이천 쌀, 여주 쌀, 김포 쌀, 나주 쌀 등등의 지역 명이 붙어 있어 골라먹는 재미를 주고 윤기가 자르르 돌아 맛있는, 한국의 햅쌀'이 그리워지는 오늘입니다.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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