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세 번째로 그리스에 여행을 왔을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리스인들이 얼마나 감자튀김을 좋아하는지 말이지요.
매번 파티마다 큰 볼 하나 가득 감자 튀김을 꼭 메뉴 중 하나로 내 놓는 게 모자라, 그리스 유명 음식 피타 기로스Πίτα γύρος에도 감자 튀김이 들어있었습니다.
이전에 밝혔듯이 한국에서 건강관련 강의를 오래 해왔던 저는, 튀긴 음식을 좋아하는 제 미각을 무시하고 튀김류 먹기를 상당히 절제하고 살았었습니다. 어릴 때 명절에 친가에 내려가면, 큰 채반에 한 가득 담겨 있던 고구마튀김을 덮어 놓은 신문지를 들춰가며 종일 수십 개를 해치워도 또 먹고 싶었던 저로서는, 상당한 결단의 시간들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에서의 감자튀김은 저에게 있어,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특별한 식당을 가지 않는 한, 대개 프렌치프라이 종류의 패스트푸드 감자튀김 이미지가 많아 더 꺼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랬던 제가, 아무리 북미나 유럽에서는 감자튀김을 패스트푸드가 아닌 사이드 디쉬로 먹는다고 들었다 해도, 또 이렇게 감자튀김을 좋아하는 그리스에 여행을 왔다고 해서, 감자튀김이 갑자기 반가울 리가 없었겠지요.
그래서 피타 기로스를 먹을 때에도 감자튀김을 좀 빼 놓고 먹기도 했었고, 여행 중 이런 저런 모임과 파티에 초대를 받았을 때에도 감자튀김은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본 그리스인들은, "세상에 감자튀김을 싫어하는 사람이 다 있네"라며 저를 희한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는데요.
그런 시선들이 모임마다 반복되자, 안 그래도 당시 검은 긴 생머리에 짧은 앞머리, 쌍꺼풀 없는 가는 눈을 가진 전형적인 동양인 얼굴이라 가는 곳마다 이목을 집중해서 불편한 마음이 들었기에, 불편해서 먹는 시늉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감자 튀김을 하나 덥석 집어서 베어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
'이거 뭐지. 왜 이렇게 맛있지? 어떻게 튀긴 걸까?'
그간 그리스에서 파는 감자튀김은 먹어 봤지만, 그 파티에서 처음 맛 본 그리스 가정식 감자튀김은 겉은 바삭하고 고소하며 적당히 짭잘했고, 속은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정말 끝내줬습니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만드는 걸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여행 후 한국에 돌아온 저는, 당시 그리스인 여성들에게 물어보고 들은 레시피 대로 그리스 가정식 감자튀김을 한번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감자를 튀기는 도중에 도대체 뭘 잘못했는지 기름이 파팍거리며 튀어 제 팔에 큰 화상을 입혔고, 맛도 제가 한 것은 눅눅하고 바삭하지 않았습니다. (그 화상은 1년 넘게 흉터가 있었을 만큼 컸었는데요.)
그 후 여러 번 그리스에 여행을 왔지만, 한 번의 큰 실패를 하고 나니 원래 별로 좋아하는 음식도 아닌데 관두자 싶어, 다시는 감자튀김 만들기를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리스로 이민을 왔고, 시부모님과 한마당에 살기에 친척 손님들이 저희 집으로 들이닥치는 현실에 떡 하게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저는 그리스인들이 그토록 반드시 준비하는 파티 메뉴인 감자튀김 만들기를 배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자, 그럼 그리스 가정식 감자튀김을 맛있게 만드는 법을 소개해 볼게요.
(제가 오늘 감자튀김을 만들며 찍은 사진입니다. 이 포스팅을 위해 일부러 감자튀김을 만들었어요.^^)
일단 감자 껍질을 벗겨 이렇게 씻은 후
감자를 1cm정도의 두께로 자릅니다.
자, 이 부분이 그리스 가정식 감자튀김의 핵심인데요.
자른 감자를 한 조각씩 들어서 왼손에 쥐고, 작은 칼로 이렇게 감자를 조금씩 비슷한 두께로 잘라냅니다.
저는 처음에 이 점이 몹시 이상했는데요. 그냥 도마에 놓고 채를 썰지, 왜 위험하게 손에 칼을 들고 그렇게 감자를 잘라내나 싶어서요.
그런데 알고 보니, 이렇게 감자를 잘라내면 자른 면이 균일하지 않아 도리어 더 바삭거린다고 하네요.
실제로 '도마에 대고 채 썰 듯 썰어 낸 감자'와 '칼을 이렇게 들고 직접 조금씩 잘라낸 감자'를 각각 튀겨 맛을 비교해 보았는데 후자가 훨씬 식감이 좋고 바삭거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살림을 오래한 그리스 여성들을 보면,
칼을 쥔 손으로 다른 손에 든 감자를 길게 잘라내는 속도가 정말 빠릅니다!
어떻게 저럴까 싶도록 말이지요.
이렇게 자른 감자를 물에 30분~1시간 정도 담가 둡니다.
감자의 전분을 빼기 위해서인데요. 역시 이 과정을 거친 감자가 훨씬 바삭하게 튀겨지더라고요.
전분이 좀 빠진 감자를 채에 걸러 30분이상 그냥 두면 저절로 물기가 날아가는데요.
제가 한국에서 실수 한 것이 이 부분인데, 이렇게 감자의 물기를 완전히 빼지 않고 적당히 제거한 상태에서 튀겼기 때문에 감자에 묻은 물과 끓는 기름이 부딪치며 제 팔에 화상을 입힌 것이었습니다.
미리 기름을 좀 끓이다가, 물기가 완전히 빠진 감자를 넣어 주면 됩니다.
적당히 한 쪽이 노릇해지면 감자를 좀 뒤집어 줍니다.
보통 그리스인들은 제가 넣은 것보다 더 많은 기름을 사용하는데, 저는 기름 양을 적게 하고 끓는 점이 낮은 올리브유를 사용해 튀기기 때문에(일반 식용유로 튀기면 더 바삭하긴 하지요.) 좀 더 빨리 감자를 뒤집는답니다.
물론 강렬한 햇볕으로 모든 과일과 야채가 맛이 진한 그리스이니 감자 맛도 다른 지역보다 더 고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의 감자로 해 보았을 때도 이렇게 감자를 도마에 채썰지 않고 손에 작은 칼을 들고 잘라서 불규칙한 모양으로 만들어 전분을 잘 빼고 튀기니 맛이 더 좋고, 올리브유를 사용해 적은 기름으로 튀기니 동량의 감자전을 부칠 때보다 적은 기름으로도 바삭하게 튀길 수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 가정식 감자튀김, 입맛 없을 때 여러분도 한번 시도해보세요.
칼질은 큰 칼은 손을 베일 수 있으니 작은 과도를 사용하면 더 좋답니다.
아! 물론 그리스인들도 시간은 없는데 일손이 부족한 바쁜 파티를 하는 경우, 그냥 썰어진 냉동 감자를 사다 튀기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밝힙니다.^^
마지막으로 제 딸아이와 제가 좋아해서 함께 합창을 하는 그리스 동요 중 하나인
"감자를 위하여 - 감자 통통이 Για τα πα τα τα - πατάτα χοντρούλα " 라는 멜로디가 재미있는 노래를 소개합니다.
(빠따따Πατάτα는 감자라는 뜻인데, 영어 해석이 함께 있어 '맛있고 하얗고 통통한 감자'에 대한 가사를 이해하실 수 있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여러분, 기분 좋은 하루 되세요!
* 그리스식 감자튀김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푸른'님으로 부터 받은 지 6개월이나 지났는데, 이제 포스팅을 해서 속이 다 시원하네요!
* 그리스인들은 감자튀김에 레몬, 소금을 뿌려 먹거나, 마요네즈 혹은 특별한 소스를 만들어서 함께 곁들이는데, 이 소스에 대한 포스팅은 다음에 자세히 다시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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