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이민 후 처음 방문했던 한국, 얼마나 먹고 싶은 것이 많았었는지 미리 목록을 적어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만큼 그리웠던 한국음식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3주 동안 그리스의 음식이 먹고 싶을 수 있다라는 것은, 제게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일이었습니다. (* 관련글 2013/05/23 - [세계속의 한국] - 그리스에서 내가 좀처럼 먹기 힘든 한국음식)
한국 음식 마구 마구 먹고 음미하길 일 주일.
갑자기 익숙한 무언가를 먹고 싶어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고, 그게 무엇일까 곰곰이 기억해 내려고 애쓰게 되었습니다.
아!
그건!
바로!
제가 좋아하는 그리스 전통요리 돌마다끼아나 마까로냐(스파게티) 종류들이 아닌!
.
'한국에도 맛있는 샌드위치가 많은데, 왜 그리스 샌드위치가 이렇게나 생각이 나는 건지?'
'그 한입 베어 무는 식감이 왜 이렇게 내 입에서 맴돌며 그리운 마음이 들게 만드는 건지?'
당황스럽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그리스에서 거의 매일, 아침 식사로 먹던 익숙함에서 오는 감각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그리스에서는 아침을 먹고 나갈 시간이 없기 때문에 샌드위치를 만들어 들고 출근을 하거나, 밖에서 사 먹는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리스의 이른 아침 길거리에는 샌드위치를 사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고, 빵 굽는 냄새를 여기 저기에서 맡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그리스 샌드위치가 어떻게 다르길래 그렇게 먹고 싶어 했는지 말씀 드려 볼게요.
빵이 특별해요.
그리스에는 두 종류의 빵집이 있는데요. 식용 빵만 만들어 파는 푸르노φούρνος 라는 빵집과 케이크와 아이스크림 종류를 만들어 파는 자하로플라스티오ζαχαροπλαστείο가 있습니다. 물론 이 두 가지를 함께 하는 가게도 찾아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특화되어 분야가 나뉘어져 있는 것이지요.
저는 그리스에서 처음 이 푸르노에 갔을 때 정말 깜짝 놀랐는데요. 가게 전체가 다 빵! 빵! 이었는데, 그 많은 종류의 빵들이 단맛과 방부제가 가미되지 않은 식사용 빵이기 때문에 그날 아침 신선하게 구워내서 그날 하루만 팔고 남는 것은 전량 폐기처분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집에서 2~3일 정도만 나둬도 곰팡이가 생긴답니다.)
* 우리나라의 경우도 물론 신선한 빵을 파는 빵집은 하루만 팔고 전량 폐기처분하겠지만, 기본적으로 그리스 식사용 빵은 우리나라 빵보다 단맛이 없고 좀 투박한 느낌이 강하며 종류가 다양한데, 다른 요리나 재료와 어우러져 그 맛을 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주식을 쌀로 하는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종류의 신선한 쌀을 찾아보기 쉬운 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바로 어제 저희 집 근처 빵집 푸르노에서 찍은 사진인데 오후라서 빵이 많이 팔렸네요.
제가 사진 찍는다고 빵을 고르는 연출을 하는 직원 언니 때문에 깜짝 놀랐어요.^^
처음엔 이 밋밋한 그리스 식용 빵에 그냥 뭔 맛인가? 싶었는데, 다양한 먹거리를 좋아하는 그리스인들 식탁에서 요리와 곁들여 꼭 빠지지 않는 이 빵들을 먹다 보니, 어느새 저도 그리스 빵의 매력에 푹 빠져 버린 것입니다. (그리스에서는 한국에서 "오늘 저녁은 뭐 먹을 거야, 밥은 해 놓은 거 있어?" 라고 묻듯, "오늘 먹을 새 빵은 사다 놓은 것 있어?" 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스인들의 빵 사랑은 대단해서 서유럽에서 온 손님들이 간혹 그리스인들이 음식 소스나 수프에 빵을 열심히 찍어 먹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이렇게 까지 매 식사마다 꼭 빵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닌데, 그리스 사람들은 정말 빵을 좋아하는구나." 라고 자주 말하곤 합니다.
토마토, 치즈, 햄, 상추가 신선해요.
언젠가 그리스에서는 치즈와 햄을 종류를 골라 무게로 사곤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관련글 2013/01/26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치즈, 치즈, 또 치즈. 그리스 치즈 맛이 끝내주네!)
신선한 빵 다음으로 그리스인의 가정에서 절대 떨어뜨리면 안 되는 것이 이 신선한 치즈와 햄과 야채인데요.
돼지고기 햄이나 터키햄 종류가 워낙 다양하고 며칠 이상 보관하면 기름이 끼며 상해버릴 정도로 신선하기 때문에 (저는 그리스에 와서 햄이 상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저는 일 주일에 두 번 이상 치즈와 햄, 야채, 과일을 사게 됩니다.
마트에 가면 종류가 백여 가지는 될 만큼 많으니, 구입하려는 치즈와 햄 종류를 꼭 잘 외워 두어야 하는데요.
이를 테면 제가 햄과 치즈를 구입할 때, 무게를 재고 잘라주는(우리나라 정육 코너 같은) 분께 하는 대사는 이렇습니다.
"치즈는 에멘탈 치즈로 누누 (상표 이름) 것으로 1/4 kg을 잘라 주시고요, 터키 햄은 데친 것이 아닌 훈제한 니카스 것으로 1/4kg 잘라 주세요."
지금이야 익숙해진 대사이지만, 처음에 뭐가 뭔지 몰라 엉뚱한 것을 사거나, 더 많이 사버리는 등의 실수 등으로 창피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또한 그리스 토마토나 상추 등은 햇볕을 많이 받고 자라, 정말 당도가 높고 아삭아삭 맛있답니다.
이 재료를 원하는 대로 고를 수 있어요.
집에서 내가 샌드위치를 만들 때야 골라서 만드는 것이야 당연한 얘기지만 밖에서 샌드위치를 구입할 경우에도, 빵을 먼저 원하는 것으로 고르고 샌드위치에 넣을 재료를 진열장을 보며 하나씩 골라서 먹을 수가 있는 것이지요. 물론 바쁜 아침 시간엔 미리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여러 종류의 샌드위치를 만들어 둔 경우도 있어 물어보고 그냥 사서 갈 수도 있습니다.
샌드위치를 속에 넣을 재료는 이렇게 들여다 보고 고를 수 있고요. 이렇게 추가되는 재료에 따른 가격표가 붙은 곳도 있습니다.
작년 여름, 샌드위치 진열장을 들여다보며 샌드위치를 고르고 있는 매니저 씨와 딸아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을 구워서 먹을 것인지 그냥 먹을 것인지 고를 수 있는데요.
그런 이유로 보통 미국이나 다른 유럽지역에서도 사용하는 이 샌드위치를 굽는 기계는, 그리스인 가정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샌드위치를 구울 때, 신선한 치즈가 녹아 들며 빵이 바삭해지는 그 맛은 정말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맛있기 때문이겠지요?
결론으로 돌아가서, 이 그릭 샌드위치가 한국에서 많이 먹고 싶었지만, 한국 음식 먹을 것도 많아 그냥 참고 넘어 갔는데요.
그리고…
라마단 기간이라 맛 없는 음식만 엄청 팔던 카타르 도하를 지나…(아마 맛을 안 보고 만드는 게 아닐까 추측해보았어요.--;)
아테네에 도착했을 때, 저는 진열장 가득한 신선한 샌드위치부터 냉큼 사서 입안에서 터지는 붉은 토마토의 단맛과 잘 조화된 신선한 치즈의 맛을 느끼며 오물오물 맛있게 먹었답니다.
이런 저의 못 말리는 식탐을 볼 때, 입맛 예민한 매니저 씨나 딸아이를 탓할 것도 아니다 싶네요.^^
여러분, 그리스를 여행할 기회가 있으시다면 신선하고 가격 저렴한 그릭 샌드위치를 꼭 놓치지 마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
제가 방금 전 오늘 아침으로 먹은 샌드위치입니다. 사진이지만 한 입 나눠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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