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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그리스에서 공무원을 상대하려면 목소리가 커야 한다.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6. 10.

 

 

 

 

그리스에 살면 공무원들 때문에 열 받을 일이 많다는 것은 이미 여러 글에서 밝힌 바가 있습니다.

어느 나라나 공무원 문제는 갖고 있지만 그리스는 특히 이 부분이 심각한 문제여서, 이들을 대하고 있자면, 상대적으로 한국 공무원들이 얼마나 친절했고 얼마나 일을 잘 했는지 싶은 생각이 절로 들곤 합니다.

 

지난 주에도 저는 세무서 직원에게 목소리를 높여 따질 일이 있었는데, 이런 행동은 평소 따지거나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제 성격과 맞지 않는 일이지만 그리스 관공서에서는 일부러라도 이렇게 따지지 않으면 업무가 진행이 안 될 때도 있기 때문에 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행동입니다.

 

그리스의 모든 공무원이 그렇다고 할 순 없지만 들에겐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재교육 부족, 새 인원 충원 부족으로 고일 대로 고인 인력들은 자신의 업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 콧대가 엄청나게 높아서 민원을 보러 온 국민들에게 "미안하다" "고맙다" 등의 말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3. 업무에서 씨도 안 먹히게 원칙적이지만, 친한 사람의 편의는 또 봐줍니다.

 

이들이 이런 특징을 갖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는데, 아주 긴 세월 동안 그리스 공무원들은 법에 의해 고용권을 보장받아 왔고, 불과 몇 년 전 경제 위기가 닥치기 전까지만해도 국가는 공무원들을 구조조정하지 않아 한번 공무원이 되면 업무를 못 하든 실수를 하든 철밥통이 따로 없었던 것입니다.

경제 위기 이후로 EU와 구제금융의 요구대로 공무원 구조조정과 임금삭감이 이루어졌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이들의 콧대는 이미 그리스의 문화로 자리잡아 버린 듯 여전히 대단해서, 그리스 내의 전 직업군 중에 가장 콧대가 높은 직업군이 공무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입니다. 더 돈을 많이 버는 다른 직업군 종사자들도 그렇게나 무례하게 잘난척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이렇듯 아무리 자신들이 실수를 해도 '미안하다' 라는 말을 하는 법이 없어 민원인들은 속 터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리스인들은 이미 이런 그리스 공무원들의 태도와 시스템에 익숙해져서 열을 내는 사람도 많지 않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게다가 그리스인들은 '모르는 사람에겐 원칙적이고 까다로운데 아는 사람에겐 한 없이 너그러운' 성향 (그래서 모르는 사람에겐 인종차별을 할 수 있고, 지인에겐 인종차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학급 안에 왕따 문화가 없는 이유도 이런 이유 떄문입니다. 다시 말해 내 영역에 들어온 사람에겐 한 없이 너그러운 것입니다.)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공무원들 역시 민원을 보러 온 공무원의 지인인 사람과 아닌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만약 어떤 사람이 공무원 중에 지인이 없다면, 공공업무를 볼 때마다 꼼짝없이 피해를 볼 수 밖에 없어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는 이가 있으면 아주 편해 지는 것이 그리스 공공업무인 것입니다.

(저를 친구로 생각하는 우체국 직원분 덕분에 우체국 업무가 편하다는 글 2013/06/01 - 아무하고나 쉽게 싸우고, 쉽게 친구가 되는 희한한 그리스인들 기억하지시요?) 

  

사진은, 한참 그리스가 경제 위기였을 때 폭동을 일으키는 노동자들을 경찰과 공권력으로 진압하는 그리스의 모습과

여전히 아름답고 유서깊은 관광국이라 많은 관광객이 찾는 그리스의 모습, 이 두 얼굴에 대해 풍자해서 표현한 것으로

한 동안 그리스 인터넷을 달구었던 사진입니다.

 

 

저 역시 이민 초기, 그리스 공무원들의 이런 특징을 전혀 파악하지 못 하고 공공 업무를 보다가 관공서 앞에서 억울해서 눈물을 흘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요.

 

예를 들어 A 라는 직원에 제게 어떤 서류를 준비해 오라고 해서 그 서류를 가져갔는데, 다음에 B 라는 직원이 제가 서류를 잘 못 가져왔다고 다른 서류를 가져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왜 그럼 A는 그렇게 말했냐?" 라고 물어보면, B는 이렇게 말 하곤 합니다. "원래 이 서류가 아닌데 A가 그렇게 말을 했을 리가 없다." 그럼 저는 다시 A 에게 가서 "지난 번에 왜 내게 잘못 알려 준 거냐?" 물어봅니다. 그럼 A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언제 그렇게 말 했냐? 기억에 없다."

헐기억에 없다니... 모든 그리스 공무원들 머릿속엔 지우개가 있는 걸까요???

 

 

이민 초기엔 말도 잘 안 통할 때였는데, 한 가지 일을 하려고 다시 가서 다른 서류를 찾아 오고, 또 다른 서류를 찾아오는 이런 반복적인 일을 해야 했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제가 힘도 없는 이민자이고 그리스인들 조차도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뭘 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마치 제가 훈련견이라도 된 듯 번번히 빙빙 돌아서 업무를 처리했었고, 결국 한 번에 끝날 일이 몇 주가 소요되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헷갈려서 일이 그렇게 된 것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잘난 척들을 하며 "업무를 제대로 보려면, 말을 똑바로 할 줄 하는 그리스인을 데리고 오세요! 당신이 우리 말을 못 알아 들으니 그렇지. 말을 못 하면 관공서에 오지 말던가!" 라는 식으로 소리를 질러대서 억울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결국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스에서 공무원을 상대하려면 목소리가 커야 하고, 논리적으로 잘 따져야 한다.

따지다 안 되면 더 높은 직책의 책임자를 찾아가서 해결을 본다.

 

업무적인 이유로 일 주일에도 몇 번은 그리스 관공서를 다니다 보니, 저는 보통 그리스인들보다 더 공무원을 상대할 일이 많을 수 밖에 없었고 이런 일을 몇 년을 하다보니 더 이상은 공무원을 상대로 울거나 억울해 하거나 하는 등 감정 소모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이 끝까지 잘못 알려준 적 없다고 우기면, 저도 큰 소리로 논리정연하게 같이 따지게 된 것입니다.

서류 한 장 떼는데 정보를 잘 못 줘서 세 번을 왔다 갔다 하게 만들어 놓고, 자신들 잘못이 아니라고 명품을 몸에 휘감고 저를 노려보는 것을 더 이상은 참아 줄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그리스 공무원 여성들은 이상하게 명품에 집착하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라면 퇴근 후에 명품을 휘감고 있을 지언정, 국민 정서를 고려해서라도 그런 차림으로 업무를 보진 않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또한 계속 뻔뻔하게 나오는 경우엔 저도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하며 말발을 세우거나, 그래도 내 바 아니란 식으로 일관할 경우 무조건 그 부서의 상사를 찾아갑니다.

물론 상사도 공무원이니, 민원인 앞에서 공무원 부하직원을 야단치거나 실수했으니 죄송하다고 말 하라고 시키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지만 업무가 잘못되었다 싶고 일이 커지겠다 싶으면 상사 선에서 제 업무에 대한 수습은 제대로 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최근 관공서에 가서 억울한 일을 당했던 그리스인 친구들에게도 이 노하우를 전수하며 일을 해결하도록 도운 적이 있었는데, 이런 이야길 친구들에게 하면서도 외국인인 제가 그리스인들에게 이런 얘길 한다는 것이 어이없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에도 세무서에서 서류 한 장 때문에 정보를 잘 못 준 직원과 논쟁을 벌인 뒤 결국 또 그 부서의 팀장을 찾아가 일을 처리했던 일이 생겼는데, 그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스어 실력의 8할은 그리스 공무원들이 키워준 셈이구나 !

대박

 

매번 관공서를 갈 때마다 혹시라도 또 상대가 이상하게 나올 때를 대비해 제가 해야 할 말에 대해 머릿속으로 논리를 미리 꼼꼼하게 세우고 가게 되곤 하니까요.

 

결론적으로, 이런 공무원들의 특징 그리스 경찰이나 이민국 등에 근무하는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로 갖고 있기 때문에, 혹시라도 그리스를 여행하게 되는 분들 중 그리스 관공서를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를 취하되 그리스어를 잘 하는 사람을 대동하거나 영어로라도 논리를 잘 구사할 수 있도록 준비해서 방문하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또한 부디 그리스 정부가 그리스 공무원 재교육과 신규 인재 충원 등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해서, 지금보다 더 능력있는 공무원들을 통해 그리스의 묵은 문제들이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 여러분! 이 지구 어느 지역에서나 억울한 일은 있을 수 있지만,

오늘도 기죽지 마시고 파이팅입니다!!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 BGM 카라의 프리티 걸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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