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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그리스 결혼식에 당황했던 내 한국인 친구의 결정적 한 마디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5. 27.

 

 

 

제 결혼식은 몹시 더운 날이었습니다.

예식이 치러지는 곳에는 에어컨이 나오고 있었지만, 모든 하객들은 언제 결혼식이 끝이 나나 다들 부채질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들러리로 참석했던 친구들도 처음 보는 그리스 결혼식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리스 결혼식은 보편적인 서양식 혼례처럼 신랑이 입장하고 신부가 입장하는 형태가 아닌, 시작 전부터 신랑 부모님, 신랑 신부, 신부 부모님이 나란히 첫 줄에 서고, 신랑 신부 뒤에 그들의 들러리들이 선 상태에서 시작을 하는데, 이렇게 식이 끝날 때까지 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의 결혼식 종류

동방정교가 국교나 다름 없는 그리스에서는 정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지 않으면 법적인 불이익이 있기 때문에(혼인 신고, 훗날 자녀 출생신고 등 모든 부분에서 곤란을 겪게 됩니다.) 이곳에 사는 외국인 커플이 아닌 그리스인들의 경우 대부분 정교회 결혼식으로 치르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시청 결혼식으로 치르게 되는 등 두 종류의 결혼식으로만 치르곤 합니다. 따라서 그리스에는 호텔 등 다양한 피로연 장소가 존재하지만, 웨딩홀의 개념이 없습니다. 물론 그리스에 거주하는 외국인 커플을 위해 결혼식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대여하는 호텔이나 휴양지 등은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그리스인들이 형식이 많은 정교회 결혼식을 오래 전부터 친근하게 여겨왔기 때문에, 신앙이 있든 없든 전통과 정서적인 부분에서 그리스인들에게 이 결혼식은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꿋꿋한올리브나무

 

 

문제는 그리스 결혼식이 무~~척 길다는 것인데요.

사제분이 무언가를 읽고 또 읽고, 정교회에 있는 남성 성가대분들이 노래로 낭독을 하고, 또 다시 사제분이 무언가를 읽고...이런 형식들이 계속 반복됩니다.

 

 
youtube에 올라와 있는 그리스 결혼식 비디오인데요.
 
그리스 결혼식에서 남성 성가대의 역할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 정교회는 많은 부분에서 비잔틴 시대의 형태를 갖고 있기에,
 
 남성성가대 역시 비잔틴 시대의 수도원 성가대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인들이 느끼기에도 이 예식은 무척 긴데, 한국에서 온 부모님이나 친구들 입장에서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진행되는 이 예식이 정말 길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안 그래도 날씨가 더운데 계속 서 있으려니 다리도 아팠을 텐데 말이지요.

 

게다가 원래 땀을 많이 흘리는 동수 씨는 이마에 계속 송글송글 땀이 맺혔고, 한 켠에 서 계시던 고모님께서 땀 닦으라고 휴지를 건네 주셔야 했습니다.

저희 앞에 서 있던 나이가 지긋했던 사제분도 그걸 눈치 채셨는지, 자신의 낭독 차례가 끝이 나고 저 편에서 성가대 분이 노래를 부를 때면 얼른 저희를 돌아보시고는 이렇게 말하곤 하셨습니다.

"이제 곧 끝날 거에요. 조금만 참아요!. 오늘 진짜 덥네요!"

ㅎㅎㅎ

 

그러더니 다음 부분부터는 책상을 빨리 넘겨 가며 읽는 데에 가속을 부쳤고, 정말 그렇게 빨리 읽을 수가 있을까 싶은 속도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제 뒤에 있는 한국 친구들은 몹시 긴장한 눈치였는데, 그 이유는 이 결혼식의 후반부에서 본인들이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멀리서 와준 고마운 한국 친구들

 

그리스 결혼식에서는 스테파나(Στέφανα) 라는 두 개의 링 모양의 머리 장식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데, 이 스테파나도 금, 은, 쇠, 등 다양한 가격과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준비할 때 적게는 100유로(15만원)부터 다양한 종류 중 골라야 합니다.

 

 

 

 

이 스테파나가 필요한 이유는  두 개의 서로 연결된 스테파나를 신랑 신부 뒤에서 들러리들이 신랑과 신부의 머리에 씌웠다가, 엇갈려서 신부 머리에 씌웠던 것을 신랑에게, 신랑 머리에 씌웠던 것을 신부에게 번갈아 씌움으로 인해, 두 사람이 이제 가정이란 테두리 안에서 하나로 묶인다는 의미로 예식에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작년에 참석했던 결혼식에서 스테파나를 신랑신부에게 씌우는 들러리의 모습입니다. 

 

 

 

 

 

 

제 결혼식에서는 들러리 4명이 차례로 이 형식대로 하게 되어 있었는데, 먼저 차례가 끝난 동수 씨의 들러리 두 친구 다음으로 제 한국인 친구 한 명까지 무사히 이 과정을 잘 마쳤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차례였던 제 또 다른 한국인 친구는, 결혼식 시작 전부터 이 스테파나를 씌우는 것에 대해 순서가 헷갈려서 정신이 없는 듯 했었는데요.

그렇게 얼떨결에 자기 차례가 되자 순서 때문인지 빨리 진행하지 못 하고 머뭇거리는 눈치였습니다.

중간에 뒤를 돌아보기도 뭐해서 저와 동수 씨는 앞만 보면서 둘 다 그저 친구가 얼른 이 스테파나 씌우기를 끝내서, 결혼식이 끝이 나길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친구는 한참을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느낌이 들었고, 지켜보던 하객들의 수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당황하던 제 친구는, 자신의 소임을 다 하기 위해 저희에게 결정적인 한 마디를 던지고야 말았습니다.

 

"저기...두분 좀 앉아주세요...ㅠㅠ "

 

친구의 그 한 마디에 저는 상황 파악이 되었고, 얼른 다리를 굽혀 몸을 숙였고 동수 씨 팔을 잡아 끌어서 다리를 좀 구부리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랬던 것입니다.

언젠가도 소개했던 제 친구는 저와 키 차이가 많이 나서, 그 스테파나들을 저희 부부 머리 위에 얹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것입니다...

슬퍼2크헉. 미안해라...ㅠㅠ 

 

저희가 다리를 구부려 기마자세로 앉았고 그 친구가 스테파나 씌우기를 무사히 마치자, 하객들도 안도한 듯 큰 소리로 웃으며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ㅎㅎㅎ

재미있는 것은 세월이 많이 흐른 현재까지도 그리스의 가족 친구들은, 마지막으로 스테파나를 애 먹으며 씌웠던 제 한국인 친구를 모두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어쩌다 한국어로 전화 통화를 할 때, 시아버님은 이렇게 물어보시곤 하십니다.

"그 키 작은데 귀여운 친구랑 통화하는 거야??"

 

그렇게 제 친구는 이곳 그리스 지인들 사이에서 '키 작은 귀여운 한국인 친구' 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물론 키가 작다고 놀리는 뜻으로 부르는 것이 절대 아니고, 당시 스테파나를 씌우려고 까치발을 들고 애쓰던 모습이 귀여워 보여서 붙여진 저는 가질 수 없는 진정 좋은 의미의 별명이랍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 어린이 합창단이 부르는 그리스 결혼식 축하곡(신랑 신부의 미래를 축복하는 가사입니다.)을 소개하며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행복한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저는 어제도 퇴근 후에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잤는데요. 그러고 나니 이제 좀 가뿐해졌습니다. 걱정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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