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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한국

뭐? 그리스 아이들이 그것 때문에 한국에 가겠다고?!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3. 29.

 

 

 

"엄마! 친구들과 함께 한국에 가기로 했어! 우리끼리만!"

마리아나가 얼마 전 학교에 다녀와 한 말은 참 기가 막혔습니다.

아니, 이제 만 나이 8-9세(한국 나이 10세)인 아이들이 어딜 간다는 것인지, 그것도 자기들끼리만 간다니 무슨 소린가 싶었습니다.

그냥 장난으로 하는 소린가 싶어 무시하려 했지만 그 다음 이어지는 말은 제법 구체적이었습니다.

 

 

"우리가 계획을 세워봤는데, 열 두 살이면 신분증이 나오고 우리끼리 다닐 수 있는 나이가 되니까, 오! 엄마 신분증 나오면 정말 좋겠다! 그치? 어른 같잖아요! 하하! 아무튼 열 네 살이나 열 다섯 살 쯤엔 우리끼리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엄마들 없이! 하하. 생각만 해도 정말 좋아요!"

꺅

 

 

저는 하던 일을 멈추고 녀석의 얼굴을 쳐다보며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너 진심이야? 정말 가려고? 근데 네 친구들은 왜 함께 가겠다는 거야?

누구누구가 그렇게 말을 했는데?"

 

"응. 엄마. 우선 알리끼랑 바실리끼, 그리고 조이가 같이 가기로 했어요.

그 애들도 한국이 정말 가고 싶댔어요."

 

"왜? 네 친구들은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

 

"아냐~~ 내가 한국 얘길 얼마나 했는데 몰라요. 하하.. 아흐 신나!! 엄마! 진짜 신나요!"

하트3

 

 

얘긴 이랬습니다.

마리아나는 한국에 대한 많은 이야길 그 동안 친구들에게 쏟아낸 것 같습니다.

1학년 때부터 친구였던 아이들이니 거의 2년 반 이상을, 그 아이들은 한국 이야길 들어온 것입니다.

 

어떤 얘길 했길래 애들이 한국에 가고 싶어 하냐고 묻자, 마리아나는 자기가 한 말들을 그대로 제게 해 보였습니다.

 

"한국엔 눈이 많이 와! 물론 그리스에도 눈이 많이 오는 곳도 있지만 그래도 한국은 눈이 오는 곳이 많아! 스케이트나 눈썰매도 탈 수 있어!"

 

"한국엔 재미있는 장소가 많아. 수족관도 멋지고 놀이공원도 좋아. 물론 그리스에도 그리스에만 있는 뮤시오(박물관)가 있지만, 한국엔 또 다른 재미있는 곳이 많아. 한국엔 맛있는 것도 많아!!"

 

작년 여름 한국에서의 사진들입니다.

 

 

 

 

 

 

"한국엔 예쁜 학용품이 많아. 여기도 예쁜 게 많지만, 한국 학용품은 귀여운 캐릭터가 얼마나 많이 그려져 있는데!"

그러며 자기가 갖고 있는 한국 학용품들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그리스에도 정말 예쁘고 실용적인 학용품이 많은데, 한국보다는 귀여운 캐릭터 상품들이 적은 듯 합니다.)

그리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학용품들

 

 

 

저는 사실 마리아나에게 학교에서 지나치게 한국 이야길 하지 말라고 타이를 때도 있었습니다.

자칫 마리아나의 태도가 한국은 이렇게 좋아! 그리스는 아니지? 라는 식의 잘난 척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 자랑을 하는 것은 좋지만, 절대 그리스나 알바니아, 폴란드 등 학급 아이들의 다른 나라를 비하하지 않으며 한국에 대해 자랑을 해야 한다고 누누이 타일렀습니다.

 

다행히 한국에 대해 들었던 아이들 성격이 다들 좋아서인지 마리아나의 줄기찬 한국 이야길 고깝게 듣는 아이는 없었고, 이런 줄기찬 한국 이야기는 결국 아이들로 하여금 '한국에 한번 놀러 가야겠다' 라는 결론에 이르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얘길 서로 구체적으로 나누다 보니 자기들끼리 여행 가능한 시기도 모색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때 가서 이 일이 실현될 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허락할지도 미지수이고요.

하지만 그렇게 한국에 가겠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 하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돈이 얼마나 드는지에 대해서까지 고민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저는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한국에 가면 사용하겠다며 한국어도 한 두 마디 배우기 시작했다는 게 아니겠어요?

하루는 방과 후에 아이를 찾으러 학교에 갔는데, 마리아나 친구들이 단체로 한국말로 "엄마!" "엄마!" "엄마!" 막 저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 가겠다는 딸아이의 친구들입니다.

 

 

 

 

얼마나 놀랐던지요! 갑자기 듣는 한국말 '엄마'를 한 명도 아닌 여러 명에게 들으려니 얼마나 정신이 없고 이상하던지요.

그런데 또 몇 명이 "안녕하세요!" "안녕해요?" "아안 니엉!" 등 좀 서툰 한국말 인사를 제게 건네 와서, 이 아이들이 한국말을 익히고 있긴 하구나 싶어 혼자 크게 웃었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다른 엄마들은 제가 왜 그렇게 웃는지 이해하지 못 하는 표정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가장 폭소하게 만든 것은, 아이들이 한국행을 맘 먹은 결정적 이유 때문인데요.

마리아나의 친구들은 한국에서 연필을 사용하는 방식이 진짜 끝내준다며, 그것 때문에 결정적으로 한국에 더 가고 싶다 했다고 합니다.

 

 

제가 웃은 건, 그 한국식 연필 사용법이란 게 바로 제가 만들어 준 이 것을 보고 한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푸하하하..

 

 

 

숙제가 많아서인지 마리아나의 연필은 워낙 빨리 닳아 못 쓰게 되어 버렸고, 새로 연필들을 사 준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금새 몽당연필이 되어 버렸습니다. 매번 샤프나 심을 갈아 끼우는 형태의 연필만 쓰게 할 수는 없어서, 하루는 몽당연필을 낑낑거리며 쓰고 있는 마리아나의 연필 뒤에 제가 쓰다가 못 쓰게 된 볼펜 자루를 꽂아 주었던 것입니다.

 

참 추억 돋는 방식이지만 저는 어릴 때 이렇게 썼었고, 공책 필기용 색연필을 뭉텅이로 들고 다녔던 고등학교 때는 유난히 몽당색연필도 많아서 이런 볼펜 자루를 자주 이용해주곤 했었습니다.

 

처음 마리아나에게 볼펜 자루를 몽당연필에 꽂아서 건네니, 손 아프지 않고 쓰기 편하다며 얼마나 기뻐하며 신기해하던지 그게 그렇게 신기한가? 싶었는데, 신기한 건 다른 그리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입니다.

심지어 그리스 아이들은 이런 방식으로 몽당연필을 사용하는 경우를 부모들에게서도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혹시 학용품이 풍족한 요즘 애들이라런가 싶어, 동수 씨에게 보여주니 동수 씨 역시 이렇게 연필을 쓰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 역시 어려운 시절을 보냈던 근,현대사가 있는 나라인데, 연필을 이렇게 쓰는 아이디어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못 쓰는 볼펜 자루를 연필 뒤에 꽂아 쓰는 방식은, 오랫동안 국민 볼펜인 M사의 153 흰 볼펜 자루가 공교롭게도 몽당연필에 끼우면 딱 맞아 떨어져서 발견된 한국인들의 지혜였던 걸까요?!

 

 

 

작년에 한국에 갔을 때 보니, 요즘 한국에서는 아예 몽당연필 끼우개가 따로 예쁘게 상품화되어 팔아 참 신기하구나 했었는데, 이렇게나 그리스 아이들에게 인기있는 방식으로 꼽힐 줄 알았다면 그 때 몇 개 사 올 걸 그랬나 싶기도 합니다.^^

 

물론 그리스에서는 흔한 스테들러 브랜드에서 연필 홀더가 따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것은 한국에서도 정가 3만원 정도에 파는 기능성 홀더여서 초등학생들을 위한 제품이 아닌데다, 그리스 문구점에서는 본 적도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못 쓰는 볼펜 자루를 몽당연필에 꽂아 쓰는 게 신기하고, 그게 한국 방식이라고 하니 그렇게나 좋아하며 따라 해 보던 딸아이 친구들은, 그 이유 때문에 한국에 더 가고 싶어졌다고 하네요.

"이야! 신기하다! 진짜 손 안 아프고 편하다!" 이러면서 말이지요.

 

그리스에서도 요즘 아이들은 학용품이 차고 넘치도록 많은데, 이런 몽당연필을 끝까지 편하게 쓰는 방식을 신기해 하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그들의 희망대로 몇 년 후라도 좋으니 한국에 꼭 함께 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얘들아, 그 때까지 한국을 좋아하는 마음 변하면 안 돼~

그리고 마리아나에게 한국어 단어 배워서 나를 연습 대상으로 삼는 것은 좋은데,

제발 단체로 한국말로 나한테 엄마라고 좀 부르지 마~~ 진짜 정신이 없단다^^

그리고 너네 엄마들이 알면 얼마나 서운하겠니.

참, 조이! 오빠라는 단어는 네 오빠한테 연습해 보렴. 날 오빠라고 부르지 말고. 하하." 

 

 

마리아나 친구들에게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아이들이 한국어 단어를 사용해 줘서, 저는 정말 기쁩니다.^^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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