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데이 선물요?
아빠, 빨리만 들어와 주세요.
이 글의 제목을 보시고, 어떤 아빠길래 아이에게 저런 말을 듣나 궁금하신 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어제 그리스에는 이런 소릴 듣는 아빠들이 많았습니다.
영국 BBC News 보도 (http://www.bbc.co.uk/news/magazine-17155304 원문 주소) 26 February 2012 Last updated at 01:05 GMT (2012년 2월 26일자 보도) 중략
Greeks take less holiday, sickness leave and maternity leave than Germans 중략 (중략된 부분은 독일을 기준으로 그리스의 노동에 대한 비교분석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
OECD 통계 : 근로자 당, 연평균 실제 근로시간 (http://stats.oecd.org/Index.aspx?DatasetCode=ANHRS 원문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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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그리스인들은 보통의 편견과는 달리 많은 시간을 일하면서 보냅니다.
게다가 2월은 그리스인들에게 가장 어려운 달입니다.
성수기인 4월15일부터 10월15일까지만 문을 여는 호텔들, 렌트카회사들, 여행사, 관광업체들이 문을 닫아
많은 가정이 실업급여에 의존하여 소비가 위축된 겨울 기간(11월 12월 1월 2월 3월) 중에서도
12월 1월에 연말연시 명절 선물과 가족모임으로 많은 돈을 소비했고, 3월부터는 호텔이나 렌트카회사들이
여름성수기를 준비하며 국내 소비를 일으키는 시기이기때문에 그 직전인 2월이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달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올해는 작년에 비해 국가의 부채탕감을 위해서 임금삭감, 세금폭탄, 실업급여삭감이라는 무거운 의무때문에
대부분의 그리스인들이 여전히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적은 임금에 그나마 번 돈을 모두 세금에
쏟아붓고 있어 실제 가정으로 들고 올 수 있는 돈은 아주 적은 형편입니다.
이런 이유로, 올해 그리스의 발렌타인데이는 예년에 비해 차갑게 언 분위기였습니다.
누구하나 요란하게 축하하지 않는데다가 연인끼리 가족끼리 축하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선물을 주고받길 원하거나, 안 주고 안 받는 분위기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제 친구부부인 야니스와 까떼리나는 이번 발렌타인데이 선물로 아내의 치과치료 비용 내주기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리스인인 야니스는 언어발달치료 교사이고, 독일인인 까떼리나는 로도스 중학교 교사입니다.
오늘 까떼리나 집에서 차를 마시며 그녀의 치과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데, 그녀는 시종일관 독일보다 의료보험 혜택이 적어 그리스의 치과치료가 비싸다고 푸념을 하면서도, 그래도 벼뤄두었던 충치들을 치료하니까 좋지,라는 남편의 이야기에 행복하게 웃으며 최고의 발렌타인선물이라고 기뻐했습니다.
제 남편, 매니저씨의 경우에도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더 바쁘기도 하지만 직원들과 돌아가며 조금씩 일찍 퇴근하던 1월달과 달리, 이번 달은 특히 일이 몰려서 하루 14시간을 꼬박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버는 돈을 세금에 쏟아 부으며 하는 말은 "오늘도 열심히 일했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입니다.
벌어서 그 돈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 세무서에 내야하는 세금 비율만 오른 게 아니라, 전기료에 부가되는 세금과 같은 공과금에 부가되는 세금까지도 모두 대폭 증가되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어렵다 어렵다 해도 발렌타인데이 때에 작은 선물이라도 주고 받았던 가정들도, 올해는
"아빠, 빨리 퇴근하고 일찍만 집에 들어와 주세요. 같이 시간을 보내게요." 라고 말하는 가정이 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OECD국가 중 최장 근로시간에 가깝게 일한다는 것은 위의 통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미
웬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못지 않게 최장 근로시간을 갖고 있는 그리스는 지금,
어느 옷가게, 어느 제과점, 어느 선물가게 하나 크게 발렌타인데이라고 홍보하지 않는 얼어버린 경제 상황에
가장들의 어깨는 더욱 무겁기만한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경제위기의 가장 큰 원인을 공무원의 부정부패와 비리로 보고 있는 저로서는
좀 잘난척들은 하지만, 흥을 좋아하는 그리스의 아빠, 엄마들이 다시 웃음을 찾고 자녀들과 많은시간을 보내줄 수 있도록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고, 경기가 조금씩이라도 회복되길 바랄 뿐입니다.
발렌타인데이 때, 가족들에게 동료들에게 의무적인 초콜릿만 돌렸다고 낙심하시는 분들
그래도 그 가족과 동료가 있어서
우리가 힘내 일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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