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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한국

그리스인 남편의 한국어 외래어 발음법, 진짜 특이해!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2. 14.

 

 

 

"컴.퓨.!"

그리스인 남편 동수 씨는 한국에서 이 단어를 말을 할 때에는 '터'를 유난히 강조해서 말하곤 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웨.이.터!"    "샌.드.위.치!"

한국에 살면서 한국어 외래어를 말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마지막 음절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도대체 왜 이렇게 발음하는지 정말 의아해서 물어 보았습니다.

 

"왜 그렇게 이상하게 발음을 하는 거야?"

"그건 말이지. 한국어 외래어가 발음이 어려워서 그래."

"응? 잘 발음이 안 되면 그냥 영어 식으로 발음해도 될 텐데??"

"내가 그렇게도 해 봤지만, 그렇게 하면 잘 못 알아 듣는 사람이 많아. 게다가 내 발음이 영국식 영어 발음이라 한국 사람들은 더 못 알아 듣는다고!!  특히 동네 가게 주인 아줌마 아저씨들은 정말 못 알아 들어서 물건을 살 수가 없더라고.  근데 이렇게 마지막 음절을 크게 발음해 주니까 그래도 이해하고 물건을 찾아 주던걸?"

 

사실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배울 때 가장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한국어의 외래어를 배우는 부분이라고 하는데요.

한국에 있던 원어민 교사 친구들 역시 이에 대해 동수 씨와 비슷하게 제게 하소연하곤 했었습니다. 

이미 영어로 알고 있는 단어를 다시 외래어 방식으로 발음해야 한국인들이 알아 듣기도 하고, 아무리 외국인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에 오래 산 외국인이 지나치게 영어 식으로 이 외래어를 발음하면 "뭐 아직까지 그렇게 발음하고 그래?" 라며 살짝 싫어하는 한국인 친구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까지 쓰다가 한국의 원어민교사 친구들 소식이 궁금해, 갑자기 안부 메일을 보내고 돌아온 올리브나무 씨입니다.^^;;)

 

그런데 '외래어를 현지인처럼 발음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한국어에 국한된 부분은 아닌 듯 합니다.

그리스어에도 영어, 프랑스, 이탈리아어, 독일어 등에서 유래한 외래어들이 존재하는데, 이 중 특히 영어에서 온 외래어를 발음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에 저 역시 처음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외래어인줄 모르고 그저 "그리스인들은 저 영어를 참 이상하게 발음하네?" 라고 생각하며 절.대. 그 발음을 따라 하지 않으려고 했던 제 생각부터가 문제였는데요.

 

외래어라는 것이 그 나라에 어떤 외국어 단어가 들어와서 오랫동안 사용되다 보니, 그 나라 사람들이 그 단어를 현지어와 가깝게 발음하게 되었고 그런 편리함과 익숙함에 의해 그 나라 표기법에 맞추어 정착된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리스어에도 한국어처럼 그런 영어 외래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그리스인들의 영어 발음만 탓했던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에 오래 산 외국인이 영어 외래어를 진짜 영어식으로 필요 이상 굴려서 발음하면 "아직도 이 사람 한국에 적응을 못 했네" 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스인들 역시 그리스에 몇 년을 살아온 제가 그리스인들과 그리스어로만 몇 시간을 나누는 대화 속에 섞는 외래어를 발음할 때, 외래어 발음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영어식으로 지나치게 굴려 발음할 경우 '넌, 아직 그리스에 적응을 못 했구나.'라는 표정으로 쳐다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산두이츠"σάντουιτς영어 sandwich 그리스어 외래어로, 그리스어 표기가 정확하게 존재하는 단어입니다. "수페르 마르켓"σουπερμάρκετ 역시 영어 supermarket그리스어 외래어입니다.

사실 샌드위치 라고 한글로 쓰면 이것은 다들 알고 있듯 한국어의 외래어입니다. 실제 영어 발음에서는 아주 작게 들리는데 한국어 외래어로는 정직하게 샌.드.위.치.라고 발음하고 있지요.

슈퍼마켓슈퍼 또한 영어로 발음한다면 사실 '수퍼'에 더 가까운 발음이지만 한국의 외래어 표기법으로 슈.퍼.마.켓.이 된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지금은 그리스어 외래어 표기와 발음을 잘 익혀 두었다가 그리스인들과 얘기할 때에는 그들처럼 발음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인 동수 씨가 발음했던 이 뒷음절을 강조했던 한국어 외래어 발음법은 한국에 살며 그럭저럭 가는 곳마다 통했는데, 문제는 그 부작용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동수 씨는 외래어한국어가 함께 붙어 사용되는 단어까지 모두 이 외래어 발음법으로 발음했던 것입니다!!!!

 

어느 날, 동수 씨는 한국의 동네 슈퍼에서 나오며 계산대의 맘 좋게 생긴 아주머님께 비닐봉투를 구매하려 했습니다. 

"아주마니,

(그리스어에는 '어' 발음이 없어서 어 발음이 들어가는 한국어를 이상하게 발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닐봉! 주세요!"

 

 

 

동네 슈퍼마켓에서 '플라스틱 백' plastic bag 만 찾다가 한참을 슈퍼 아주머님이 못 알아 들으셔서 씨름했던 동수 씨에게, 한국에서는 이런 플라스틱 백은 '비닐'이라는 외래어 한국어 '봉투'라는 단어를 붙여서 비닐봉투라고 사용한다고 알려준 이후로, 동수 씨는 '봉투' 라는 단어도 외래어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외래어 발음법 대로 투!를 얼마나 강조해서 말을 했던지, 아주머님께서는 "아니, 이 총각 좀 보게나. 침 튀겠네. 알아 들었다고. 비닐봉투. 그렇게 세게 안 말해도 돼. 여깄어. 여기!" 라고 말을 해서 슈퍼의 다른 손님들까지 깔깔대고 웃는 풍경이 만들어지고 말았지요.

우하하ㅋㅋㅋㅎㅎㅎ

 

하지만 한번 만들어진 이 습관은 '봉투'가 외래어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고쳐지지 않아서, 그리스에 사는 지금도 가끔 한국어로 "올리브나무! 비닐봉! 하나 주세요!" 라고 말해 제 얼굴에 침을 막 튀기는 동수 씨입니다.^^;;

 

 

여러분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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