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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한국

그리스인 남편이 서울이 좋은 이유 vs 싫은 이유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1. 24.

 

 

 

 

"눈이 그립지 않아?"

요즘 그리스인 남편 매니저 씨가 자주 하는 말입니다.

해마다 겨울만 되면 한국의 겨울을 그리워하는 매니저 씨는 오늘 따라 한국에서 있었던 많은 기억들을 제 앞에 나열하며 추억합니다.

 

추억이 만개하자 이 사람, 서울이 좋은 이유를 가열차게 얘기하기 시작합니다.

 

그리스인 남편이 말하는 서울이 좋은 이유

1. 서울에는 다양하고 맛있는 식당이 많다.

남편은 짬뽕전문점, 숙성된 김치찌개집, 조개구이 식당, 감자탕 가게, 해장국집 등등 다양한 메뉴의 음식들을 24시간 언제나 싸고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서울이 좋다고 말합니다. 집밥과 가족파티를 선호하는 그리스에는 대도시라 하더라도 외식할 수 있는 식당 종류가 한국만큼 다양하지도 않을뿐더러, 더 비싼 외식비를 지출해야 하니까요.

 

"한 마디로 서울은 먹거리의 천국 같은 곳이야!"

사랑해 

라며 황홀한 표정을 짓는 매니저 씨입니다.

 

 

 

 

 

한국에선 직장에서 싫어해서 내내 수염이 별로 없었는데, 지금 보니 완전 딴 사람 같네요.^^

 

 

 

 

 

 

 

2. 서울에는 컴퓨터, 휴대폰 등의 전자기기를 파는 대형 전자 상가들이 여럿 있다.

아테네에서도 생활했을 때도 매니저 씨는 전자기기를 사고 구경하는 게 낙이었고, 로도스에 사는 지금은 전자기기 매장은 물론 수시로 전자기기에 관한 웹서핑을 하는데요.

아무리 그리스의 대도시라 해도 테크놀로지의 나라 한국(현재는 자타공인 '안드로이드 한국'), 그것도 서울의 전자 상가를 따라갈 순 없는 것입니다. (요즘은 도리어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 서울의 전자 상가들의 입지가 약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는 한국의 대단한 문화인듯 합니다. 유럽에서 흔하게 구경할 수 있는 문화는 아니니 말입니다.) 

매니저 씨가 처음 서울의 용산, 강변 등의 전자 상가를 방문했을 때의 반응은 아주 정신이 없었습니다. 눈이 휘둥그래져서 연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와! 우와! 우와!!!! 그리스의 내 친구 바실리스를 데리고 와야 해!

그 친구가 여길 온다면 집에 갈 생각 안 하고 구경만 할 거야!"

슈퍼맨

그 후로도 틈만 나면 전자상가를 구경하고 컴퓨터 매장을 구경하러 다니던, 한국의 여느 손재주 좀 있다고 하는 남자들처럼 컴퓨터를 조립해서 만들고 망가진 것도 잘 고쳐 쓰는 매니저 씨입니다.

 

 

3. 서울에는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밤문화가 존재한다.

그리스는 그나마 관광국이라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서는 늦은 시간 까지 여는 식당이나 카페, 클럽 등이 많은 편이고 24시간 식당도 존재하지만, 어떻든 그리스도 유럽이라 한국의 밤문화에 댈 정도는 아닙니다. (로도스의 클럽 거리는 정말 여름엔 관광객들로 꽉 차 걸어 지나가기가 어려울 만큼 북새통인데요. 올 여름, 자세히 다시 소개할게요.)

특히 서울은 24시간 열려 있는 식당, 카페, 주점뿐만 아니라 동대문의 24시간 옷 가게들, 편의점들, 노래방, 헬스클럽, 찜질방 등 별의 별 종류의 재미있는 즐길 거리가 밤새 열려 있으니 이보다 더 재미있는 도시가 또 있을까 고 말하네요.^^

<BGM : 선미의 24시간이 모자라  24시간~~24시간 / 장기하와 리쌍의 우리 지금 만나!>

 

 

 "그런데 왜 결국 그리스로 돌아오기로 결정했어? 그렇게 좋은 서울에 계속 있지?"

라고, 경제 위기 때문에 시부모님이 사업 운영의 어려움을 겪고 계셨기에 돌아와야 했던 이유를 마치 모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웃으며, 저는 물었습니다. 

 "서울이 싫어서 그리스에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싫은 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야."

 

그리스인 남편이 서울이 싫은 이유

1. 서울은 길을 모르면 다니기가 힘들고 웬만한 곳은 다 멀다.

매니저 씨가 서울에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서울 동쪽에 있던 매니저 씨의 집과 서울 서쪽에 있던 어학당은 좀 거리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출퇴근 시간에 걸리게 되면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도 인파에 밀려서 성격 급한 매니저 씨라도 속수무책으로 엉뚱한 곳에 내려야 하거나 엉뚱한 곳에서 갈아타게 된 적도 많았던 것입니다.

콩나물 시루 같은 지하철이나 출퇴근 시간의 버스를 타며 어릴 때부터 수년간 단련된 한국인들의 노하우를, 성인이 되어 이민 온 외국인이 습득하기엔 무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테네의 지하철이나 버스 역시 복잡하긴 하지만, 인구 수가 서울의 30%밖에 되지 않는 아테네의 복잡함이 서울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한국 생활 초기, 한번은 매니저 씨가 친구 차를 빌려 타고 처음으로 운전을 해서 어학당을 갔던 적이 있었는데, 늦은 저녁 제게 전화를 한 매니저 씨의 말은 이랬습니다.

"올리브나무...내가 네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잘 운전해서 학교에 갔다가 제임스가 집에 좀 바래다 달래서 건대 입구를 목적지로 하고 달렸거든. 그런데 여기가 지금 어딘지 모르겠어...나...어떻게 하지?"

"그러게 길도 모르면서 왜 아무데나 가고 그래? 네비게이션에 다시 너네 집을 목적지로 설정해봐. 그럼 길을 알려 줄거야."

다시 한 시간 후 전화가 와서 매니저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습"여기가....표지판에 조옹~로오~(종로)라고 되어 있는데, 어디인 거야? 나?"

 

알고 보니 내부 순환로와 동부간선도로의 진입로를 잘못 타서, 완전 엉뚱한 곳에 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에서도 운전 꽤나 했다는 탱크운전병 출신의 매니저 씨의 마지막 말은 이랬습니다.

 

"서울은 아무리 네비게이션이 있어도 어느 정도는 길을 알아야 다닐 수 있고,

자주 막히니 무조건 약속 시간 보다 일찍 준비해서 나가야 하는 곳이구나. 정말 무서운 곳이야."

멍2 

 

2. 서울은 그리스인에게 외롭다.

매니저 씨가 한국에 살던 당시, 서울과 서울 근교에 거주하는 그리스인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그 중 5명이상은 대사관에 근무하는 나이 지긋한 그리스 공무원들이었고, 나머지 분들을 만나보려 했지만 대사관에서 그런 개인 정보를 쉽게 유출해주진 않아서 그리스 식당이나 여기 저기로 찾아 다녀봤어도, 별다른 만남을 가지기가 어려웠습니다. 대부분의 한국 거주 그리스인들은 조선사업이 활발한 부산 등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들을 어쩌다 서울에서 만나게 되어도 계속 만남을 이어가기엔 무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어학원 등에서 알게 된 다른 외국인 친구들도 있었고, 제 지인들인 한국인 친구들도 있었지만, 내 나라 말이 그립고, 내 나라 사람이 그립고, 내 나라 음식이 그리웠던 매니저 씨에게, 서울은 가끔 말 못할 외로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스에 다시 돌아오기 직전 한국생활을 정리하던 때의 매니저 씨.

젓가락질이 익숙할 정도로 오랜 타국 생활에, 어쩐지 참 쓸쓸해 보이는 얼굴입니다.

그땐 제가 그리스에서 이민 생활의 어려움을 겪을 줄 모르고, 더 헤아려 주지 못했던 것이 못내 미안하기만 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좋고 서울이 좋다고 말하는 매니저 씨.

평소 공기가 좋지 못한 서울이지만 겨울이면 쌩 하고 건조해서 상쾌한, 그런 좋은 냄새가 나는 재미있고 아름다운 도시라서 그립다고 말하는 매니저 씨는, 다음에 서울에 간다면 꼭 겨울에 가고 싶다며 그날을 오늘도 꿈꿔 봅니다.

 

 

여러분 따뜻한 금요일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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