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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한국

가끔 한국이름 ‘동수’로 불리고픈 그리스인 남편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12. 27.

 

 

 

지난 24일 저녁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파티는, 제가 그리스로 이민 온 후 처음으로 저희 집이 아닌 셋째 고모님 댁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빵빠라빵~~~~! 이 얼마 만에 가족파티 가사 노동에서 해방되어 남이 해주는 음식을 먹으러

우아하게 파티에 참석하러 가는 건가요! 제 생일보다 기분이 더 좋네요!"

happy-birthday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고모님의 이름 날이 크리스마스와 겹치기 때문에 이번엔 고모님께서 파티를 주최하시기로 한 것입니다.

 

파티에 참석할 가족 친척 명단을 미리 전해 들은 저는, 24일 오전까지도 선물을 사러 돌아다니느라 바빴습니다.

드디어 고모님 댁에 도착해 다양한 와인과 이에 잘 어울리는 음식들로 가득한 식탁을 보니 무척 기분이 좋았는데요.

   

 

 

  

파티가 무르익자, 음악에 맞춰 그리스 전통춤을 추기 시작하는 가족들입니다.

 

앉아서 음식을 먹으며 선물을 함께 나누고 두런두런 한참 대화가 무르익을 쯤에, 미국의 동생으로부터 크리스마스라고 안부를 전하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전화를 받으며 한국어로 말을 하자, 옆에 앉아 있던 매니저 씨는 주변 그리스인 친척들에게 저의 한국어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한참을 얘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어의 '네' 라는 말은 그리스어의 네Ναι(Yes)와 뜻과 발음이 똑같은데, 친한 사이엔 '응'이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올리브나무는 동생이나 친구와 통화를 할 때, 응~응...응..그랬구나. 응~ 어...그래. 그랬구나. 응...

이렇게 말을 해서, 어떤 땐 응. 응. 응. 응. 응. 이런 소리밖에 안 들리는 것 같다니까요.아하하하.."

ㅋㅋㅋ

 

통화를 하면서도 매니저 씨의 이야길 다 듣고 있었던 저는, 전화를 끊자마자,

 

 "뭐야, 지금 내 흉 본 거야? ....상대 얘기를 들을 땐 대답을 잘 해줘야 상대가 자신의 얘길 재미있게 하잖아.

그러니까 대답을 계속 하는 거야~ 그게 뭐 이상하다고 그래?"

멍2

라고 말을 했는데요.

 

매니저 씨는 엉뚱하게도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니야. 올리브나무~ 널 놀리려고 그렇게 말을 한 게 아니라, 솔직히 한국의 크리스마스가 그리워서 그래.

눈이 펑펑 오기도 하고, 한국의 겨울은 참 멋지잖아. 쌩하게 추워도 건조한 그 날씨가 난 참 좋아.

게다가 언젠가 크리스마스 때 너네 집에서 파티 했던 거 생각나? 나 한국에 이사하고 첫 겨울이었을 땐데...

네 동료들, 친구들이 음식 한 가지씩 해 와서 함께 먹고 얘기하고 그랬잖아.

그 때 바비스가 내게 한국이름 지어줬던 거 알지. 'O동수' 라고.

난 이상하게 그 이름이 정말 좋아. 그리고 네 한국 성을 붙여 준 것도 좋고. 가끔 바비스는 나에게 동수! 라고

불러주곤 했는데…그리스에 오니 날 O동수! 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가끔은 한국이름으로 불리던 때가 그립기도 해."

 

바비스는 제 친구의 남편인데, 매니저 씨는 한국인인 그에게 그리스이름을 바비스Μπάμπης 라고 지어주고, 그는 매니저 씨에게 'O동수' 라고 한국이름 지어주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그리우면 내가 가끔 동수 씨, 라고 불러줄게. 이것 먹어봐. 동수 씨!" 라며, 음식 접시를 건넸습니다.

 

 

기분이 좋은 동수 씨

 

 

그런데 희한한이 있습니다.

그리스에서는 다른 서양국가와 달리, 결혼 후에도 아내의 성(姓)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여성들은 결혼 후에도 남편 성으로 바꾸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 시댁 고모님들도 오스트리아 고모님만 빼고 모두 자신의 결혼 전 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요. (다만 가족 전체에게 청첩장 등의 초대장을 보낼 때는 남편의 성으로 '누구네 가족'이라고 통칭될 수 있습니다.)

이런 그리스 문화대로 저 역시 현재까지도 한국 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와 반대로 남편 매니저 씨는 한국이름으로 불릴 때는 꼭 제 성으로 불리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그리스 성이 한국적이지 않아서, 한국이름 '동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재미있는 것은 제 유일한 친가 쪽 사촌 오빠가 '동'으로 시작되는 이름을 갖고 있어, 'O동수'라는 이름은 사촌 오빠와 단 한 글자만 다른 이름이라, 어쩐지 저희 집안 항렬을 쓰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드는 이름인 것입니다. (실은 다른 항렬로 육까지 쓰고 있는데, 사촌 오빠는 어릴 때 어떤 이유로 항렬을 따르지 않는 이름을 혼자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매니저 씨가 이 한국이름이 좋다고 말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이름의 뜻을 들은 후였는데요.

친구 바비스가 한자를 정하지 않고 준 '동수'라는 이름에, 제가 대충 '움직일 동動''물 수水' 자를 붙여 주었는데, 저는 성명학엔 문외한이지만 늘 상당히 활동적인 매니저 씨와 '움직일 동'자가 어울리는 것 같았고, 그러나 열정이 과해 불같이 화낼 때가 있으니 좀 자중하라는 의미에서 '물 수'자를 붙여 준 것입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매니저 씨에겐 이 이름 뜻에 대해 '물처럼 부지런히 움직이며 흐르는 멋진 남자'라는 뜻이라고 알려주었더니 엄청나게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슈퍼맨  "난 'O동수'라고! 음하하!" 라고 말하는 매니저 씨 모습에서,

매번 이상하게 강호동 씨의 이름이 떠오르는 "호동이가요~"라고 자신을 지칭하는 이미지 때문인 걸까요? 

아니면 덩치가 비슷해서 일까요?^^ 

ㅎㅎㅎ

 

여러분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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