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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한국

한국 여성 지인들이 그리스인 남편에게 부러워한 한 가지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11. 28.

 

매니저 씨는 한국에 있을 땐, 지금처럼 수염을 길도록 놔둘 수 없었습니다.

날씨가 뜨거운 그리스인들은 대개 날씨가 추운 북유럽인들 보다는 머리숱이 많고 수염도 빨리 자라, 면도를 하더라도 금새 자라버려 그리스에는 그냥 그대로 수염을 놔두고 다듬기만 하며 수염을 유지하는 남자들이 많습니다.

몇 년 전, 그리스에서의 매니저 씨

 

(저와 딸아이도 그리스에 온 후, 날씨와 단백질 섭취량 덕에 머리숱이 늘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지요?)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수염을 이렇게 내버려 두면, 자칫 지저분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매니저 씨도 되도록 면도를 하고 다니려고 애썼는데요.

언젠가 소개한, 한국에 살 때 L월드에서 찍은 매니저 씨의  사진을 기억하시나요?

확실히 위의 사진과 비교해 수염이 짧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인 남편 매니저 씨의 경우 면도를 하면, 이웃 블로거이신 이방인 님의 말을 빌어 '떡볶이를 얹은 듯한 쌍꺼풀'의 큰 눈이 더 커 보이고, 그제야 시어머님을 닮은 핑크 빛이 도는 흰 피부가 눈에 띄게 됩니다. (수염이 있을 때는 얼굴의 반 이상이 수염이니 피부색이 보일 리가 없지요.)

이렇게 조금만 수염을 짧게 잘라도 피부색이 아주 다르게 보이는데요.

 

남매라도 시누이는 아버님을 닮아 피부가 매니저 씨 보다는 좀 더 건강하게 짙은 편인데, 그리스인들은 적당히 햇볕에 구리 빛으로 탄 이런 색 피부를(그리스어로 이런 피부의 사람들을 Μελαχρινή멜라흐리니 라고 부릅니다.) 지나치게 하얀 피부보다 더 멋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여름엔 하얗게만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바다에서 태닝도 못하는 불쌍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여기서 잠깐!

 그리스에서의 Μελαχρινή멜라흐리니 라는 표현은, 영어권 brunette 이라고 표현되는 스타일과 비슷한데, 그리스에서는 머리색이 갈색이 아닌 금발이어도 피부가 태닝한 듯 갈색을 띄고 있으면 멜라흐리니 피부(Μελαχρινή δέρμα)라고 불리울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스타일들이지요.

  

 

그런데 매니저 씨가 한국에 살 땐, 이렇게 해가 뜨거운 그리스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더 하얀 피부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한국의 제 친구들, 그러니까 여성인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수염을 자주 깎았던 매니저 씨의 얼굴을 보고 부러워 한 것은 정작 이런 하얀 피부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흰 피부를 선호하는 한국 여성인 제 친구나 지인들도 대부분 얼굴이 흰 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제 한국 친구, 지인들이 매니저 씨에게 부러워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매니저 씨의 속눈썹이었습니다.

참 어찌 보면 남자의 속눈썹을 부러워한다는 것이 좀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그리스인 중에서도 매니저 씨는 아주 길고 전혀 관리하지 않아도 스스로 싹 위로 말려 올라가는 속눈썹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떡볶이를 얹은 듯한 쌍꺼풀과 함께 시어머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인데요.

매니저 씨의 속눈썹은 제 속눈썹 보다 긴 것은 물론이고, 제 주변 웬만한 한국 여성 지인들의 속눈썹보다도 길어서, 메이크업에 관심이 많아 마스카라를 바르지 않아도 길고 풍성한 속눈썹을 갖고 싶어하는 한국 여성들의 부러움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 주변 여성 지인들뿐 만 아니라, 낯선 한국 여성들 (특히 연세 많은 아주머님들)까지도 이 매니저 씨의 속눈썹을 가까이서 보게 되면, 이상하게도 그렇게 만져보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제 친구 하나는 유난히 짧은 속눈썹을 갖고 있는데, 매니저 씨를 볼 때마다 속눈썹을 떼어 자기 눈에 붙이는 시늉을 하면서 좀 떼달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일면식이 있는 사람이 이러는 거야 그럴 수 있겠거니 농담으로 여기고 웃을 수 있는 일이지만, 정말 처음 보는 사람이 속눈썹에 손을 댈 때면 매니저 씨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대체 자기한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떡볶이 쌍꺼풀 눈이 더 커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날의 사건도 그래서 생긴 일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매니저 씨가 마트에 장을 보러 갔는데, 저는 멀찌감치 뒤에서 다른 것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육십 대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님께서 갑자기 매니저 씨를 뚫어져라 쳐다보시더니 한 발 한 발 매니저 씨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는 그냥 저 아주머님이 외국인이니까 신기해서 쳐다보시나? 그러며 아주머님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는데요.

열심히 야채를 고르고 있는 매니저 씨에게 아주 바짝 다가간 이 아주머님은, 미처 매니저 씨가 아주머님의 행동을 눈치채기도 전에 매니저 씨 얼굴 쪽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마치 무언가 중요한 작업이라도 하듯 손을 뻗는 모습이 얼마나 집중하는 듯 보였는지, 저도 순간적으로 도대체 저 아주머님이 뭘 하시려나 숨죽이고 쳐다볼 수 밖에 없었는데요.

그 아주머님은...결국 매니저 씨의 속눈썹에 그녀의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갖다 댔고, 그 검지 손가락 전체로 아주 신속하게 속눈썹을 아래 위로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게 아니겠어요?!!

헉

저는 너무 놀라, 혹시라도 매니저 씨가 화를 낼까 봐 황급히 그 쪽으로 걸어갔는데요.

멍하게 물건을 고르다 갑자기 당한 일이라, 저보다도 더 놀라서 흠칫한 매니저 씨는 몸을 뒤로 빼며 아주머님을 어이없고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아…저러다 매니저 씨 화내면 안 되는데.' 싶어 급한 마음에 성큼성큼 다가가 아주머님께 "아..이 친구가 이러는 거 싫어할 수 있는데요.." 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아주머님 입이 먼저 열렸고, 그 입에서 나온 말 때문에 저희 둘 다 말문이 막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이구…어디서 온 거여? 미국에서 온 거여? 속눈썹이 음~~~청 기내 그려.

쎄상에나아아아~! 총각! 눈썹 좀 나랑 바꾸장께~~~~ 나 좀 떼 줘 봐잉~~응? 총각!

내가 평~~~생을 이 짧은 속눈썹 마스카라로 올리느라 애쓰다가 이제 시상이 좋아져서,

부분눈썹인가 그걸 심기 시작혔는데, 총각은 허벌나게 좋겠다~~~~~!

옴마야. 날 때부터 이랬껐재???"

 

옷만 더 멋있게 입으셨지, 대략 이런 느낌이었어요...ㅎㅎ

 

 

어머나..

멋을 엄청 부리신 엄마 뻘의 아주머님 입에서 구수한 사투리가 흘러나왔고, 아주머님의 정겨운 말투와 그 진심으로 긴 속눈썹을 부러워하시는 모습에, 저는 팍 하고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ㅎㅎㅎ

매니저 씨 역시 아주머님의 사투리를 이해하진 못했지만, 분명 속눈썹이 부러워서 만지신 것이란 걸 눈치로 이해했기에 그냥 너털웃음을 웃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서로 일하느라 바빠, 매니저 씨가 속눈썹이 긴지 어떤지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본 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네요.

사실은 개콘의 로비스트에서의 아줌마 '미란다 커' 라는 별명이 차라리 어울릴 저에게, 요즘 '달팽아끼'(달팽이+ㅏ끼= 작은 달팽이 라는 뜻/그리스인들이 작은 사물의 단어 뒤에 –ㅏ끼, -ㄹ라 등의 어미를 붙여서 사용할 때가 많다는 얘길 드린 적이 있지요? 딸아이 별명이 예쁘나끼,인것에 대해서요^^)라고, 나름 귀엽게 불러주는 매니저 씨에게, 저도 바빠도 관심을 좀 가져줘야 할 것 같습니다.

참 매니저 씨는 안녕,하세요 놀이를 졸업하고 안녕,하십시오. 놀이로 갈아탔답니다. 저는 이게 더 웃기게 들리네요.^^

 ㅋㅋㅋ

여러분 즐거운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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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혹 글의 맥락을 이해 못 하시는 분들을 위해 밝히자면, 이 글은 백인의 외모가 한국인보다 더 낫다고 쓴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저는 단 한번도 그런 글을 쓴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처음 보는 독자가 "당신 남편은 분명 아랍인의 피가 많이 섞인 외모이다, 백인이라고 좋아하지 마라." 라는 내용의 반말 댓글을 남겨 차단시킨 적이 있습니다. 백인이라 좋아한 적도 없고, 매니저 씨의 조상에 어떤 피가 섞여 있는지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런 것이 도대체 무슨 상관인지 조차 모르겠고요. 글과 글쓴이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시각이 없는 사람이 참 많은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