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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한국

한국의 어린이 직업체험 프로그램에 관한 유럽인들의 반응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8. 26.

 

이번 한국 방문 때 딸아이는 말로만 듣던 어린이 직업체험 프로그램이 있는 잠실의 'K'라는 장소에 가고 싶어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두 번 저는 딸아이를 데리고 그곳을 찾아 갔었는데요.

어린이 한 명과 어른 한 명이 입장할 경우 여섯 시간에 48,000원~53,000까지 내고 체험하는 프로그램이이었는데, 국내의 굴지의 기업들이 참여해 간판을 걸고 체험하게 하는 만큼 내실 있게 운영되고 있었고, 경찰서 소방서 등은 크기를 줄였을 뿐 아이들 수준에 맞게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하여, 한눈에도 놀이동산 저리가라 할 만큼의 화려함과 재미를 드러내고 있었기에 딸아이는 놀라고 흥분된 마음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수십 개의 직업들 중에 시간 내에 얼마든지 고를 수 있지만 최소 인원이 한 가지를 체험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하루에 많이 참석해도 6~7개 이상의 직업 체험을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만 통용되는 화폐를 직업체험을 하고 벌어서 그곳의 은행에 저축하거나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까지, 모두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빌리지 않고 하도록 되어 있어서 정말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딸아이는 이곳을 두 번 방문하는 동안 출판사, 휴대폰 디자인, 초컬릿만들기, 샌드아트, 거리화가, 악기체험, 봉사활동, 우유배달 아르바이트, 법원 모의재, 라디오방송게스트, 승무원, 호텔리어 등을 체험했는데요.

 

   

딸아이가 아주 좋아했던 휴대전화 디자인 연구소 체험이었습니다.

 

 

  

 

 

 

사진들을 저는 딸아이 소식을 궁금해할 그리스의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한국에 있는 동안 SNS에 올렸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여러 그리스 친구와 가족들의 답글이 달렸고, 업체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긴 하나 그리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런 체험에 대해 궁금해 하는 딸아이의 학교 엄마들이 제게 개인적인 메세지를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그리스에 돌아온 후엔 그리스인 엄마 아빠들, 독일인 엄마, 스웨덴인 엄마, 노르웨이인 엄마, 오스트리아인 엄마까지 많은 주변의 알고 지내는 자녀 교육에 관심 많은 유럽인 지인들로부터 이 체험 프로그램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이야길 나누고 난 후 엄마들의 반응은 대개가 비슷했는데요.

정리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1. 아이들이 정말 즐거워 할 것 같다! 그렇게 재미있는 체험을 할 수 있다니!!

 

    2. 대단하다! 어떻게 그 많은 기업들이 참여한 그런 공간이 존재하는지! 역시 기술력 있고 자녀 교육에 관심 많은 한국답다! (제 주변 유럽인 친구들은 한국에 대해 다른 유럽인들에 비해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북한핵실험에 관한 질문은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3. 유럽에도 어린이들을 위해 그런 업체가 들어오면 좋겠지만 유럽 실정에서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 업체는 십 여개 국가에 진출해 있지만 유럽과 북미 지역엔 아직 진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3번 반응이 제일 의외였습니다.

자녀 교육에 관심 있다는 유럽인 엄마들 중에 이런 반응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에 대해서, 그리스인 남편 매니저 씨는 이런 부연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유럽은 공부를 잘 하고 못 하고 대학을 가고 안 가고를 떠나서, 아이들이 상당히 일찍부터 파트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버는 게 보편화 되어 있는 곳이잖아. 게다가 부모가 장인(마스터)일 경우나 오랜 사업을 해 온 경우, 어릴 때부터 부모의 가게나 사업을 도와 허드레 일부터 하도록 훈련 받는 곳이거든.

사실 한국이 경우 학생은 공부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고 입시 제도가 또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밤 늦도록 너나 할 것 없이 학교와 학원에 메어 있어야 해서, 중고등학생들을 아르바이트 하도록 허락하는 부모가 흔치는 않잖아. 초등학생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더 그런 프로그램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유럽에서는 초등학생이라고 해도 부모의 일을 돕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 그건 공부를 하고 안 하고 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여기거든.

내 경우에도 고등학교 졸업할 때 까지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는데, 첫 아르바이트가 열 살 때였어. 부모님이 먹고 살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 용돈은 내가 어느 정도 벌어 쓰는 것을 권하는 문화였으니까. 너무 어려 아르바이트 시켜 주는 곳이 없어서 집 근처에 부모님 친구분이 하시는 자전거 가게에서 자전거 바퀴에 바람 넣는 일을 처음 시작했었어. "

실제로 매니저 씨는 딸아이가 학교를 가지 않는 토요일에 가게로 일부러 불러, 가게 바닥을 빗자루로 쓸고 선반을 닦는 일 같은 걸 시킬 때가 있습니다.

한국엄마인 저는 처음엔 굳이 그런 일을 공부하는 어린 애에게 시킬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그렇게 한 두 시간이라도 일하는 시늉을 하고 나면(실상 일에 도움이 되서 시키는 게 아닌데도) 꼭 5유로라도 (7,500원) 손에 쥐어 주는데, 이것은 돈을 버는 것을 가르치고 돈이 귀하다는 것을 알려 주며, 딸아이가 나중에 대학을 가게 되어 다른 직업을 갖더라도 이런 경험들은 여러모로 아이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열두 살이면 성인은 아니지만 신분증(우리나라 주민등록증과 같은)이 나오는 그리스에서는 딱 봐도 어려 보이는 아이들이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는 모습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직업 체험 프로그램을 잘 만드는 기업들이 나올 만큼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은 대한민국이고, 그 미래를 짊어지고 갈 우리 어린이들이지만, 이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알기 위해서 직업 체험을 할 때 조차도, 편향적으로 의료인 법조인 방송국 항공사 등의 체험에는 몇 시간씩 대기열이 길게 서 있고 아르바이트나 봉사활동 등의 체험시설은 한가한 것을 보면서, 같은 부모로서 이해가 가면서도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딸아이의 선택대로 인기 직종 체험도 하도록 시켰지만, 우유배달이나 봉사활동 등을 딸아이가 체했던 것 또한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경로로든 딸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런 저런 다양한 직업들을 경험하면서, 성인이 되어 일을 함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동반되는 스트레스와 갈등상황까지도 기꺼이 감수할 만큼 본인이 좋아하는 그런 일을, 훗날 선택할 수 있길 바라게 됩니다.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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