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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한국

남대문 모양 자석이 내 그리스인 친구에게 미친 영향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9. 28.

 

 

 

한국 방문 중에 제가 SNS에 올린 한국에서의 사진들을 보며, 몇몇 그리스인 친구들이 메시지를 보내왔었다는 이야길 드린 적이 있습니다. (관련글 : 2013/08/26 - [세계속의 한국] - 한국의 어린이 직업체험 프로그램에 관한 유럽인들의 반응)

그 중 딸아이 반 친구 니코스Νίκος 의 엄마 마리아는 제게 한가지 부탁 메시지를 보내왔는데요.

 

"올리브나무, 잘 지내고 있는 거야? 사진 봤는데 좋아 보이더라.

혹시 나를 위해 한국의 전통 모양이 있는 냉장고 자석을 하나 사다줄 수 있을까?"

샤방3  

 저는 이 메시지에 대한 답장을 보내기 전, 그녀의 부탁을 들어 주어야 할지 아주 잠시 망설였는데요.

이유는 그녀와 제가 그렇게 많이 친한 사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학교에서 아이들 하교 때 2년 넘게 보아온 사이이니 친근하긴 하지만, 작년 여름 그녀가 제게 전화해 아이들 데리고 커피 한잔 하자는 질문도 핑계를 대며 거절해야 했을 만큼, 남자아이인 그녀의 아들 니코스와 제 딸아이 마리아나와의 관계가 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니코스는 반에서도 키가 작은 편이라 키가 큰 딸아이 보다 머리 하나는 작지만 아주 귀엽고 명랑한 아이입니다.

 

<귀여운 니코스^^>

 

하지만 1학년 입학 때부터 수줍음이 많은 딸아이에게 다가와 "마리아나~ 마리아나~" 라며 쫓아다녀서, 그날 이후 그 장면을 하교 길에 몇 번 본 시아버님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여태까지 딸아이를 놀릴만한 계기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니코스는 마리아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마리아나~마리아나~ 이러며 어찌나 쫓아다니나 몰라~~~"

오케이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남자아이가, 그것도 딸아이에겐 멋지게 느껴지지 않는 작은 아이가(쉿! 제 딸아이가 런닝맨의 김종국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것은 여러분과 저만 아는 비밀이에요.^^) 쫓아다닌다는 게 안 그래도 수줍은데, 가족들까지 막 놀려대니 딸아이는 니코스와 영영 친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엉엉날 그만 놀리라고! 난 니코스와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라고 외치며 울먹이기까지 하는 것이지요.^^

 ㅎㅎㅎ

하지만 늘 저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마리아의 부탁이라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저는 인사동에 갔을 때 그녀를 위해 남대문 모양을 한 KOREA라고 쓰여있는 냉장고 자석을 샀습니다.

한국에서 돌아온 지는 한참 되었는데 학교가 시작된 얼마 전까지도 그녀를 볼 기회가 없었던 저는, 그간 이 남대문 자석을 가방 안에 들고 다니다가 어제서야 그녀에게 이 자석을 건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른 아침 아이를 등교 시키고 학교 운동장 한 가운데에서 마주친 그녀에게 남대문 자석을 건넨 후 그녀의 반응에, 저는 정말 뒷걸음질 칠만큼 놀랐는데요.

니코스의 어린 동생 손을 잡고 있던 그녀는 제가 가방에서 남대문 자석을 꺼내 건네며 "아, 마리아. 약속했던 남대문 자석이야. 널 볼 기회가 없어서 이제야 건네게 되네." 라고 말하자마자, 잡고 있던 딸아이의 손을 팽개치며 두 손으로 남대문 자석을 받아 들더니 "아하하하, 아하하하…정말 좋아. 올리브나무. 정말 좋아!" 라며, 예상보다 엄청나게 웃으며 좋아하는 게 아니겠어요!

 

흠칫 놀란 저는 제 작은 선물을 기뻐해주는 반응에 고마운 마음이 들어, "그렇게 좋아하다니 내가 더 기쁜걸."이라고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겨우 대답을 했는데요.

그러나 그 다음 그녀의 반응에 저는 또 한번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헉

아무리 원래 명랑한 그녀라지만…

갑자기 남대문 모양 자석을 들고 운동장 한가운데서 알 수 없는 춤을 추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음악이 없는데도 그녀의 춤 사위는 노홍철도 울고 갈 만큼 화려했는데요.

 

"마, 마리아…그, 그렇게 좋은 거야?"

저는 겨우 그녀의 팔을 붙잡으며 그녀의 춤을 진정시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 저기 운동장을 빠져나가던 다른 시크한 차림의 엄마 아빠들이 우리를 일제히 쳐다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관심을 딴데로 돌려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급하게 자석을 든 그녀의 손을 붙잡고 "남대문이란 말이지 뭐냐면...."이라고 설명하는 제게, 답해오는 그녀의 마지막 말이, 저를 뭉클하게 했습니다.

 

"올리브나무. 난 정말 이런 모양이 갖고 싶었어. 왜인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정말 좋다…이거.

당장 집에 가서 냉장고에 붙여 둘 거야. 한국에서 온 친구가 사줬다고 자랑해야지!!"

HAAA

 

그녀와 헤어져 돌아오며 생각해보니, 사실 딸아이와 니코스와의 관계 때문에 그녀와 좀 거리를 두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이유로 '저와 달리 지나치게 아무에게나 아무때나 명랑한 그녀의 성격' 좀 불편해 그간 그녀와 가까워지길 꺼리기도 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껏 몇 년간 그녀가 화내거나 인상을 쓰거나 뭔가 불평하는 모습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것 또한 느끼게 되면서, 이렇게나 긍정적인 친구였구나 싶었고 앞으로는 그녀와 잘 지내도록 노력해 봐야겠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아마도, 누가 봐도 동양인 얼굴의 딸아이를 입학 때부터 이민자라고 꺼리지 않고 좋아해준 니코스의 성품은, 고정관념 강할 수 있는 로도스 토박이인데도 한국의 전통적인 모양의 물건을 보고 좋아해주는 엄마의 긍정적인 모습을 닮은 것이었나 싶었답니다.

 

한국에서 사남대문 모양 자석은 내 친구로하여금 창피함을 모르고 학교 운동장에서 춤추게 만든 결과를 가져왔지만, 

제게는 '나와 많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선입견'을 깨뜨려주는 참 고마운 영향을 미쳤습니다.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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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에 붙여 두려고 한국에서 사온 또 하나의 냉장고 자석인데요.

타국에서 보는 서울, 코리아 라는 글씨는, 이렇게나 설레는구나 싶어 자꾸만 쳐다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