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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선행학습? 복습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리스 교육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7. 7.

 

 

몇 주 전, 제 그리스어 선생님이었고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소피아를 시내 맥도날드에서 만났습니다.

그녀는 그리스 교사들이 예고 없이 파업을 감행해 이미 등교한 학생들과 학부모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당황스런

순간에도, 그런 류의 무분별한 파업에는 절대 동참하지 않는 책임감 있는 교사입니다.

(그리스에서는 교원공무원이 과외를 하거나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이 합법입니다.)

 

소피아를 만난 이유는 여름 방학 동안의 딸아이 과외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이제는 저와 자주 만나 커피를 마시는 친구가 된 소피아는, 그리스에 이민 올 때 알파α 비따β도 몰랐던 딸아이가

그리스어를 체계적으로 알 수 있도록 도왔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딸아이의 선행학습을 해 주었습니다.

2학년에 올라가던 여름방학 때 역시, 2학년 그리스어와 수학에 대해 선행학습을 했던 선생님입니다.

 

이제 9월이면 3학년에 되는 딸아이와의 공부를 두고 소피아와 저는 긴 대화를 나누었는데요.

 

 

100년 넘은 그리스 로도스 맥도날드 건물. 내부만 현대식으로 개조해 1~2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놀이터가 잘 되어 있어 관광객에게도 인기 있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소피아와 저는, 올해는 딸아이의 선행학습을 줄이고 2학년 복습을 중심으로 과외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실 1, 2학년 때도 딸아이가 다른 아이들 보다 뛰어나길, 혹은 특별히 튀길 바라는 마음에 선행학습을 시킨게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 유아기를 보내 그리스어를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이곳에 왔던 딸아이가, 여기서 태어나서 자란 아이

들과 한 교실에서 공부를 하면서 상당 부분 이해가 부족할 거라는 생각에 시킨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딸아이의 그리스어 구사력이나 작문 실력이 네이티브 아이들에게 뒤쳐지지 않기 때문에 굳이

선행학습에 더 치중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어릴 때 이민 왔기에 자연스럽게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제껏 겪으며 그리스 교육은 선행학습보다 복습을 훨씬 중요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매일의 받아쓰기와 작문 외에도 숙제가 유난히 많은 그리스 초등학교의 교육흐름을 보면, 철저하게 복습을 잘한

아이들이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관련글-2013/05/31 - [소통과 독백] - 저는 오늘 딸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선행학습을 했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쉽겠지 생각했고, 2학년이었던 딸아이가 숙제를 통해 복습을 해 나가는 과정

이 1학년 때보다 쉬울 거라고 예상했던 것도 저의 잘못된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딸아이는 비교적 반에서 공부를 잘하고 학업태도가 좋은 편에 속하는데도 많은 분량의 복습과정을 담은 숙제를

해 나가는 데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아니 선행학습을 했는데 왜 그럴까? 생각하며 숙제를 가만히 살펴

보니, 지나간 수업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절대로 풀어낼 수 없는 숙제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

다. 선행학습을 했다고 해서 수업 내용이나 선행학습 했던 내용을 다 기억하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는 것입니

다.

 

그래서 딸아이와 저는 2학년 일 년 동안 복습에 열을 올리며 특별히 어려운 그리스어 문법을 다시 꼼꼼히 살피고

익혀야 했고, 갑자기 등장한 곱하기, 나누기, 세 자릿수 더하기 빼기 등도 원리위주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도저

히 숙제를 해 갈 수 없는 내용이었기에 매일 수업 내용을 집에서 다시 점검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공부를 할 아이들만 하고, 안 할 아이들은 안 해도 제도적으로 먹고 사는 데에 불편한 게 없는 그리스이지만,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학원이나 과외에서 열을 올리는 분위기는 한국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만 정확한 이해와 복습 없이는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에, 적당히 학원에 앉혀 놓는 방식의 공부는 통하지

도 않고 현재 것을 대충 시험문제 위주로 넘기고 선행학습을 하는 것도 그리스에서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즉, 확실한 복습이 없이는 학교 공부를 전혀 따라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소피아와 저는 딸아이의 2학년 과정의 확실한 복습을 위해, 서로 시간을 맞추어 수업 스케줄을 짠 후, 이런 저런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그리스어 교과서와 복습 문제집들

(그리스어 교과서는 1년에 여덟 권이 있습니다. 정말 복습 열심히 해야겠지요?)

 

 

올해 들어 한국에서는 선행학습 급지법이 현실성이 있냐 없냐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는데요.

선행학습 금지에 대한 이점을 논하기 이전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반적인 공교육의 제도적 변화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선행학습 금지법이 시행되면 그 후 공교육이 바뀔 거라는 기대는, 현 대한민국 상황에서 사교육에

열을 올리있는 학부모들에게 불안함만 조장할 뿐이란 생각이 듭니다.

선행학습 금지법이나 사교육 금지법이 신뢰 속에 실현화 되기 위해서는 교과서 내용, 수업 방식, 특수 중고교 입시

제도, 대학 입시 제도, 폭넓은 직업군으로의 실습 수준을 벗어난 현장 전문화 교육까지, 현 십대 교육제도많은

부분이 함께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에 따른 국민들의 이해와 적극적 참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망가진 그물을 다시 짜는 데에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해서, 또 이에 이권다툼이 있다 해서, 군데 군데 허물어

진 부분을 그냥 두고 눈에 잘 보이는 부분만 새로 짜깁기를 한들, 그 그물이 제 기능을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요?"

 

이미 알게 모르게, 제대로 된 대한민국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리더들이, 좀 더 목소리를 내고 힘을 내 주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대한민국의 더 많은 아이들이, 찬란한 십대여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런 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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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글의 주제를 오해하는 분들이 간혹 계셔서 말씀 드립니다. 이 글은 그리스 교육이 무조건 더 낫다고 주장하는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그리스 교육계는 요즘 국가 재정 악화로 학급 수를 대폭 줄이고 교원공무원을 감원해야 하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글은 다음에 자세히 쓰도록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