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선 결혼할 때, 여자가 집을 산다?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한 그리스 결혼 문화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한국에서는 보편적으로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할 때, 남자는 집을 마련하고 여자는 그 집을 채울 혼수를 마련하는 것이 아직은 일반적인 문화입니다.
물론 요즘은 경우에 따라 함께 집을 준비하기도 하고, 여자 쪽이 여유가 있다면 집을 준비하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아직까지의 대한민국의 기성세대의 통념으로는 남자가 집을 얼마만한 크기로 준비하냐에 따라 여성의 혼수 정도가 달라진다라는 게 통하는 문화인 듯 합니다.
다음은 H 헤럴드경제의 한국의 결혼 관행에 관한 설문을 소개한 기사입니다. 2011년 10월17 일자.
미혼 남성들은 맞벌이, 여성들은 가사분담을 현 세대의 결혼 후 성역할 상 가장 큰 장점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
그리스 사람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가 그리스에선 보편적으로 결혼할 때, 여자 쪽에서 집을 준비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이는 제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게다가 여자 혼자 벌어 집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집안에 딸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앞으로 결혼할 때 집을 마련해줄까를 부모가 미리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을 앞두고 집을 지을 때, 그 부모의 형편에 따라 선금을 지불할 수 있는 만큼 지불하고 집을 몇 년에 거쳐 지은 후, 나머지 부분은 그리스어로 다니오δάνειο, 라고 불리는 대출을 받아 경우에 따라 여자 쪽 부모가 매달 갚아주기도 하고 두 부부가 벌어서 갚아 나가기도 합니다. 그리스도 대개는 결혼을 하며 평생 살 집을 짓기 때문에 이런 대출은 미국의 모기지Mortgage처럼 아주 보편적인 편입니다. |
이런 사정이면 부모의 등이 휘는 걸 생각해서 좀 작은 집을 마련할 만도 한데, 자식한테 퍼주기로 우리나라 못지 않게 대단한 그리스 부모 밑에서 자란 이 딸들은, 공주 중에 공주들이 많아서 고래등 같은 집들을 짓길 원한다는 사실입니다.
옆집에 살던 엘레프테리아는 제 작년 11월에 결혼했는데, 평소 그녀 집안의 경제규모를 알고 있던 저는결혼식 3일 전에 하는 끄레바띠 κρεβάτι 모임(일명 ‘침대' 모임이란 뜻으로 신랑신부의 새 집을 가까운 친구와 가족들에게 미리 공개하고 축복을 받는 모임입니다.)에 갔다가 집의 규모와 300여명의 파티 인원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3층집에 값비싼 인테리어, 4개의 화장실에 두 개의 주방. 아직 있지도 않은 아이 침대와 책상까지, 이 정도면 어떤 집인지 짐작이 가시지요?
게다가 그 부부가 앞으로 갚아나갈 대출금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것을 봤을 때, 그녀의 부모가 평생 벌어 모은 돈을 딸의 집 장만에 다 쏟아 부어 선금을 지불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파티라서 간만에 때 빼고 광낸 올리브나무 씨, 그리고 사촌 마사와 시누이>
지난 포스팅에 언급한 영화 My big fat Greek wedding 에서도 여 주인공의 아버지가 미국인과 결혼하는 것을 끝끝내 반대하다가 허락한 후로, 마지막 결혼식부분에서 “내가 너희를 위해 집을 준비했다”라고 깜짝 발표를 하며 해피엔딩으로 이 영화는 끝이 납니다.
물론 요즘의 그리스 내의 그리스인들 사이에서의 국제 결혼은 더 이상 심한 반대의 대상은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오는 곳이다 보니, 어떻게든 로맨스는 꽃피우게 되어 있고, 제가 아는 주변의 그리스인들의 국제 결혼 러브스토리만 해도 수십 가지에 이릅니다. 노르웨이 여성과 결혼해 노르웨이에 정착해 사는 그리스 청년, 독일여성과 결혼해 그리스에 정착해 사는 할아버지, 스위스 여성과 결혼해 시내에서 가계를 하는 아저씨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인을 자녀의 배우자로 맞이하고 싶어하는 부모들의 속사정이 이해 되는 이유는, 그리스인들만의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가족문화의 색이 워낙 짙다 보니, 이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 대로 따를만한 외국인 며느리나 사위가 그리 흔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그럼 그리스 남자들은 부자 집 여자 잘 골라서 결혼하면 돈도 안 들고 팔자 펴겠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 얘길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나라에선 남자가 집을 준비하는 대신, 일단 결혼을 하고 나면 상대적으로 친정의 일보다는 시댁의 일 우선으로 가정이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요즘처럼 맞벌이가 많은 한국의 실정으로는 친정엄마는 자녀들을 돌봐주시는 정말 고마운 존재이기 때문에 친정엄마가 딸 집을 드나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막상 명절이 되면, 명절 연휴 3일 중에 시댁 식구들과의 모임이나 그 집안의 행사를 먼저 챙기고 그 후에 하루 정도 친정에 와서 친정부모를 챙기는 게 아직은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그림인 것 같습니다.
물론 예외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보편적인 문화를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스 역시도 예외는 있습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는 결혼 후 그리스의 명절들이나 주말 가족 모임 등은 항상 친정, 즉 여자 집이 먼저입니다. 여자 부모님 집으로 다 모인 후, 남는 날에 남자 집으로 갑니다. 이렇다 보니, 3대 4대가 함께 모이는 대 명절의 경우엔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요?
여자의 엄마 아버지, 친정 엄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까지 주욱 친정 집 계보가 모이게 되고, 거기의 사위는 명절 연휴 동안 바비큐 고기를 굽는 등의 힘쓰는 일들에 성실 봉사를 합니다. 이런 사정으로 명절을 해마다 몇 번, 혹은 한 달에도 몇 번씩 아내의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나이든 사위와 친정 어머니 사이에 안 좋은 기류가 흐르기도 합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시어머니와 며느리관계처럼요.
저희 집안만 해도 지난 연말, 수십 년을 매년 새해 눈을 뜰 때 아내의 엄마를 마주해야 했던 저희 시아버님께서 심한 반발을 일으키시며, 남편의 외할머니를 안 보고 싶다고 우기셔서, 시어머님과 시아버님이 싸우시고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성격이 특이하신 외 할머님은 명절 당일 이 상황에 개의치 않고 저희 집에 오셨고, 한 바탕 소란 끝에 결국 시부모님 집이 아닌 제 차지가 되었습니다. 딸아이의 방에서 함께 주무시게 된 것이지요. (제가 지난 포스팅에서 소개한 “피 줄이 당긴다’고 말씀하신 할머님은 시아버님의 어머님이셨습니다. 명절 때 못 뵙기 때문에 미리 찾아간 것입니다. 이 할머님은 그리스 문화대로 명절 때, 딸 집인 큰 고모님 집으로 가시기 때문입니다.)
딸만 셋인 우리 부모님, 그리스 와서 작은 집이라도 짓고 살면, 저희 가족이 명절 때 그 집을 먼저 찾아가도 할말이 없는 게 저희 시댁입장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마당에 산다는 이유로, 친정이 여기가 아니란 이유로, 온 시댁 이모 할머님 고모님 할머님까지의 모든 대단위 손님을 치르고 있는 저, 일복 터진 여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지난 봄엔 어머님 아버님께서 타협 하셔서 당신들의 양가 어머님과 형제들을 모두 저희 집으로 부르셨습니다. 물론 마당에서 긴 테이블을 몇 개를 펴고 바비큐를 하긴 했지만, 적어도 테이블 세팅을 갖추고 밥을 먹어야 하는 유럽문화에서 사십명이 넘는 손님을 치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봄 집 마당에서 염소 통 구이 바비큐를 구우며 좋아하는 남편의 친구들>
제가 있는 로도스는 교육환경이 좋아, 그런 이유로 아테네와 다른 도시에서 이쪽으로 이사온 고 소득층의 안정된 직업 군을 갖고 있는 엄마들이 꽤 있습니다. 그 중 한 엄마의 직업은 의사인데, 결혼하면서 일부러 이 쪽 국립종합병원에 지원해서 이사를 왔고, 그 때 친정에서 집을 이곳에 지어주게 됩니다. 그리고 친정엄마가 여전히 선금을 내고 남은 집 값의 대출금을 매달 내주고 있으며 해마다 몇 달씩 손녀를 봐주러 이 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올 겨울엔 아예 그 첫째 딸인 그 엄마의 형제들까지 모두 이 집에 와서 머물며 명절을 같이 보냈습니다.
아테네에 시내에 사는 그리스인 친구부부 는 원래 여자 집안 쪽에서 해준 큰 집에 살았었는데, 그리스 외환 위기 이후로 매달 대출금을 내는 게 어려워지자, 남자 집안 쪽이 갖고 있던 아파트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아파트는 5층 건물인데, 1층은 남자의 부모님, 2층은 그 집 딸 가족이(역시 이 집도 딸에게 집을 해준 것이지요.) 그리고 중간 층은 세를 주었고 5층을 이 친구 부부가 살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든 모여 사는 흔히 볼 수 있는 그리스인 집안 형태입니다.
그리고 처음 여자 집안 쪽에서 해준 집을 팔아 이들 부부가 같이 운영하는 회사에 투자했습니다. 어떻든 명절엔 여자 쪽 집에 먼저 갔다가 다시 남자 쪽 집으로 갑니다. 이 경우처럼, 남자 집안 쪽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어떻게든 아들부부에게도 도움을 주려 하는 게 그리스 부모들입니다. 또한 아들이 처가에서 기죽지 않고 여자 집안 쪽과 힘의 균형을 맞추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자, 끝으로 그러면 저는 어떻게 시댁 식구들과 살게 된 걸까요.
저희가 살고 있는 집은 시부모님께서 원래 사시던 집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제가 독립해 살 때부터의 집을 갖고 있었는데, 그 집을 정리해서 그리스 이 집의 뒷마당에 남은 땅에 작은 집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이 원래 지어져 있던 집보다 작아서 시부모님께서 감사하게도 더 작은 그 곳으로 이주하시고, 딸아이까지 함께 지내야 하는 저희가 이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 집도 당연히 시어머님의 친정 부모님이 사주셨던 집이었지요. 오래되고 작은집이지만, 이렇게 하니 집 대출 없이 지낼 수 있어서 고쳐가면서 감사하게 살고 있습니다.
로도스 시내의 집값은 서울 근교 경기도 권이나, 강남을 제외한 서울 변두리 지역 집 값과 비슷합니다. 무척 비쌉니다.
여러분은 이런 그리스 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의 댓 글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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