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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성격 급한 한국인에게 차분함을 요하는 그리스 은행의 '문'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7. 25.

   

   

   

 

   

   

   

 

  상대적으로 급한 한국인의 성격, 제 성격은 이렇습니다. 

한국인 중에서는 평소 성격이 느긋한 편이라고 해도 막상 해외에 나가면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 사람보다는 내가 성격이 급하구나'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하물며 저는 한국인 중에서도 성격이 급한 편인데요. 다만 친구나 지인들이 제가 아주 빠르게 행동하거나 급하게 일을 처리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잘 모르기도 하는데, 이유는 제가 이상하게도 슬램덩크 감독님처럼 무표정할 때가 많아 겉으로는 조급증을 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걸음걸이를 보면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하지요. 제 걸음은 상당히 빠른 편입니다. 그래서 늘 함께 걷는 사람의 걷는 속도를 신경 써야 합니다. 자칫 저도 모르게 일행을 놔 두고 한참 앞장 서서 걷게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시아버님 조차도 저와 일을 해보기 전엔, 겉으로 조급증을 내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는 무표정할 때가 많은 며느리의 성격이 어떤지 잘 모르셨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함께 일을 하면서 일 처리 속도나 하루에 마무리 하는 일의 양을 보면서, '아...이 아이가 성격이 상당히 급하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셨다고 합니다.

 

   

   

  의외로 원칙적인 그리스의 업무 시스템 

제가 이렇게 갑자기 급한 제 성격 타령을 하는 것은, 그리스에 와서 의외로 원칙적인 그리스인들의 곧이 곧 대로 순서대로 진행해야 하는 그리스 시스템에 속이 뒤집힌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리스인들은 한국인들처럼 성격이 급한 사람들이 많고 일 처리도 빨리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또 반대로 일을 좀 미루는 국민성을 갖고 있어서(뜨거운 날씨가 이런 국민성을 만든 데에 한 몫 한다고 봅니다. 그리스의 한 여름의 햇볕은 갓 뽑은 아메리카노를 종이 홀더 없이 계속 들고 있어야 할 때만큼 데인 듯 뜨겁습니다.) 만약 원칙적인 시스템을 갖고 있는 어떤 기관 담당자가 거기에 일을 미루는 성향까지 갖고 있다면, 그 기관의 일을 기다리는 것은 한국인으로서는 거의 숨이 넘어간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성격 급한 한국인인 나, 하물며 그리스 은행 문을 여는 데도 불편해 하다.

이런 급한 성격의 한국인으로서 그리스에 여행을 왔을 때나 이민 초기에 그리스의 은행을 이용하면서 가장 속이 뒤집어지게 참을 수 없었던 것이 있는데, 바로 그리스 은행의 <도어 시스템>입니다.

   

현재 그리스 은행들은 대부분 이 도어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경제 위기 이전에 더 많은 종류의 은행이 존재할 때는 그래도 이런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는 은행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많던 은행들이 단 몇 개로 통폐합되면서 남은 은행들은 대부분 이 도어 시스템으로 통일 하게 된 듯 합니다.

   

 

   

그리스 은행의 도어 시스템은 이렇습니다. 

   

1. 이용자가 적은 지점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출구와 입구가 다릅니다.

 

 

2. 출구든 입구든 이중 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3. 문 옆의 벨을 눌러 첫 번째 문을 열고 들어가, 그 첫 번째 문이 완전히 등 뒤에서 닫히면 두 번째 문의 벨을 누를 수 있습니다.

 

 

4. 두 번째 문의 벨을 누르고 몇 초 이상 기다려야 "문이 열린 상태입니다."라는 안내 멘트가 나오면서 은행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은행마다, 같은 은행이라도 지점마다, 기다리는 초의 수가 다릅니다. 어떤 경우는 2~3초, 어떤 경우는 1초, 어떤 경우는 5초 등등입니다.   

 

이것은 제가 오늘 그리스의 은행 문을 찍은 영상인데, 처음엔 이렇게 순조롭게 문을 열지 못했던 것입니다.

못 생긴 제 손가락 특별 출현이네요.^^ 

 

 

5. 만약 성격이 급해 첫 번째 문이 닫히기 전에 두 번째 문의 버튼을 누르거나, 버튼을 누른 후에 기다리지 못 하고 문을 열려고 한다면 계속 오류가 나면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물론 이런 도어 시스템은 보안을 위해 고안된 것으로 몇몇 큰 지점을 제외하고는 한국처럼 청원 경찰을 두지는 않은 그리스 은행 실정에 맞춘 방식인데, 유럽에서는 나름 총기 규제가 엄격한 편인 그리스이지만 그래도 EU 안에서 여러 나라를 오가며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으므로 만약을 대비해 은행 창구에도 방탄 유리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 많은 그리스 실정 상, 도어 시스템도 보안에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본래도 그리스뿐만 아니라 유럽의 잠금 장치들은 살펴보면, 볼 수록 견고하게 구성된 것이 많습니다. 왜 이렇게 동수 씨 업종의 전문가들이 해마다 유럽 전역에서 모여서 세미나를 하는지, 그 세미나에 알만한 대기업들이 자신의 제품을 소개하려 하는지 이해가 될 정도입니다.

하물며 은행의 안전 문은 견고하고 특수한 철제와 유리로 된 것으로, 문이 1mm도 틈이 없이 완벽하게 닫힐 때만 철컥 하며 닫히는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저도 지금은 이런 그리스 은행의 도어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고 또 직업적으로 이런 시스템의 잠금 장치의 종류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젠 어떤 은행에 가더라도 기다리지 못 하고 서두르다 봉변을 당하는 일은 없지만, 처음 그리스 은행들을 이용했던 때엔, 정말 이 급한 성격 때문에 수 없이 은행 문 안에 갇혀서 빠져 나오지 못 하고야 말았는데요.

다시 말해 첫 번째 문과 두 번째 문 사이에 갇혀 버리는 것입니다.

 

그 때는 첫 번째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두 번째 문의 버튼을 누르면 안 된다는 것도 몰랐고, 두 번째 문의 버튼을 누르고 은행마다 몇 초를 기다려야 하는지도 몰랐으며, "기다리세요!" "문이 열렸습니다!" 라는 그리스어 안내 멘트도 알아듣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현재는 영어로도 안내하는 은행들도 많습니다.)

급한 마음에 계속 첫 번째 문이 닫히기 전에 두 번째 버튼을 눌러서 "문이 닫히길 기다려 주십시오." 라는 말을 듣든가 아예 삑삑 오류가 났다는 효과음을 듣는 다든가, 어떻게 두 번째 문의 버튼을 누르고도 그 몇 초를 기다릴 수가 없어서 계속 열리지도 않는 문을 덜컹거리며 열려고 시도해서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든가... 이런 일을 수 없이 반복했었습니다.ㅠㅠ

   

게다가 당시엔 왜 이런 도어 시스템을 만들어 두었는지 현지 사정을 이해하지 못할 때였기에, 괜히 그리스 은행들만 원망하면서 "어휴. 성격 급한 사람 숨 넘어 가겠네!!" 이러며 두 문 사이에서 파닥거리다가 도리어 더 긴 시간을 지체하곤 했었습니다. 

차라리 차분하게 처리하면 더 빨리 들어갈 수 있는 것을 말이지요.

   

다행히 이젠 익숙해져서 매일 오류 없이 이용하고 있지만, 아직도 처음 그리스 은행 문에 갇혀서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 했던 순간을 기억하면 식은 땀이 날 지경이랍니다.

"분명 앞의 사람은 잘 들어갔던 것 같은데, 이젠 은행 문까지 나를 차별하나?!"  

이런 억지스런 생각까지 했었으니까요.

문과 문 사이에 갇혀서 쩔쩔 매고 있는 저에게 안쪽의 은행 직원이 계속 영어로 "진정하시고, 처음부터 천천히 기다려서 순서대로 여세요! 그럼 열릴 거에요." 라던 장면이,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벌개지도록 부끄럽기까지 한데요.

   

   

  빠른 업무, 꼭 좋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일의 완성도는? 후유증은?

   

그리스에 몇 년 살면서, 나름 원칙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과 그래서 기다려야 하는 부분에도 익숙해졌고 이렇게 은행 문처럼 느릿한 듯 하지만 아귀가 꼭 맞아 떨어져야지만 해결되는 일들도 경험하게 되었으며, 누군가 원칙적으로 처리해 주어서 다시 그 일이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리스 안에서도 일을 못 하는 사람들은 원칙을 무시하고 대충 일해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내가 바꿀 수 없는 '일 못 하는 그리스 공무원'을 제외하고는 그런 원칙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시는 일을 맡기지 않는 그리스인들의 문화에도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본래는 성격 급한 제가 차분하게 그리스 은행 문을 순서대로 열고 들어가면서, 또 25년 된 자동차를 여전히 튼튼하게 타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오늘 저희 사무실의 영국인 고객과 그 고객의 차를 부러워하는 주변 유럽인들의 반응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일부 한국인들이 '근래 큰 경제적 성과를 이룬 한국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그렇게나 무시하는 '경제 위기를 겪은 그리스'인데, 만약 한국의 업무 시스템들이 그리스만큼만 원칙적으로 돌아간다면 과연 이렇게나 큰 사고들이 계속 터질까 싶은 생각 말이지요.

물론 이는 그리스가 원칙을 고수해서 자국과 타국에게 도움이 되려고 하는 범 국제적인 공명심이 있는 나라라서가 아니라, 어떻든 그리스는 EU(유럽연합)국가이니 까다롭고 원칙적인 EU 기준을 맞추어 업무가 진행되어야 하는 나라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쩌면 유럽에 이렇게나 오래된 물건들이 많이 존재할 수 있는 것도 단지 유럽인들이 새 물건을 좋아하는 경향이 적어서가 아니라, 한번 만들 때 단단하게 만들고 그러다 고장 나면 느리더라도 제대로 고치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만들 때 좀 느리고 좀 답답하더라도, 이미 완성된 것을 다시 또 보수 하고 또 보수해야 하는 것 보다는 낫지 않나 싶습니다. 또한 원칙을 고수하는 사람들에 대해 융통성이 없다는 말로 몰아세울 게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기업과 공공기관들도 지난 일들을 거울 삼아 이제는 일의 속도가 좀 늦더라도 일의 원칙과 완성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업무 시스템을 차근 차근 세워간다면, 지금까지 이룬 경제 수준에 걸맞는 내구성 있는 단단한 나라로 거듭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하루 제대로 시작하고 제대로 마무리 하는 날 되시기 바랄게요!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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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한국이나 그리스, 혹은 유럽 중 한 쪽이 무조건 장점만 혹은 단점만 있다고 쓴 글이 아닙니다. 글의 문맥을 이해하지 못 하고 감정적으로 한 쪽을 무조건 싸잡아 비하하는 댓글은 승인하지 않겠습니다.

 

* 제가 지난 글 2014/07/20 - 여러분, 어떻게들 지내시나요? 에서 독자님들의 안부를 여쭈었는데요. 아직 망설이며 그 글에 답글을 쓰지 못 하신 분들은 답을 남겨주세요. 오늘 저녁부터 그 글에 대한 답글을 쓸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