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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내 그리스 친구의 갑작스런 울음의 이유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7. 16.

 

 

 

 

 

 

딸아이가 방학 한지 한 달이 되어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하던 차에, 때마침 딸의 반 친구 알리끼의 엄마 마리아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알리끼는 딸아이와 친한 아이들 중 유일하게 다른 지역의 조부모님 댁에 가지 않은 친구라, 역시 제 딸아이가 보고 싶다고 계속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악테온이라는 어린이 놀이터가 있는 카페에서 만났는데, 언제나처럼 마리아의 다른 친구들도 그 자리에 나와 있었습니다.

 

 

그리스 엄마들의 보통의 만남

 

그리스인 엄마들은 특별히 1:1로 개인적인 만남을 가져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두 사람이 만나기로 한 자리에 아이들을 둔 다른 엄마를 갑자기 초대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서로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기도 하지만,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잘 모르는 엄마가 갑자기 약속 장소에 온 것에 대해 크게 불편해 하지 않는 문화입니다.

이는 한국의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의 평범한 만남들과도 어쩌면 유사할 수 있는데요.

예를 들어 내가 이웃 엄마 집에 아이를 데리고 놀러 갔는데, 갑자기 처음 보는 다른 집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놀러 온다고 해서 '절대 오지 말라'고 하지 않고 그냥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것과 비슷한 경우입니다.

게다가 원래 그리스인들은 파티를 할 때에도 예기치 않았던 멤버가 갑자기 오게 되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에 낯선 사람과 갑자기 합석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곤 합니다.

 

물론 아주 낯가림이 심한 사람이라면 그리스에서도 이런 식으로 만남을 갖진 않지만, 대개는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 엄마들이니 만나서 육아 정보나 학업, 요리 등의 정보, 사는 얘기들을 나누곤 하는 것입니다.

원래 낯가림이 좀 있는 저는 처음엔 이런 갑작스런 만남들이 좀 불편했지만, 이젠 그럭저럭 익숙해진 듯 하네요.

꿋꿋한올리브나무

 

 

 

 

그런데 제가 자리에 앉자마자 "올리브나무, 그 동안 어떻게 지냈어?" 라고 묻던 마리아가 제 대답을 듣기도 전에 눈에 눈물이 한 가득 고이더니 도저히 참지 못 하겠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급히 테이블에 있던 냅킨을 건네면서도 그 친구의 갑작스런 울음에 적잖게 당황했습니다.

제가 그 친구를 알아온 시간이 3년인데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 것은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참 늘 씩씩하게 잘 버티는 친구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입니다.

 

솔직히 그 동안 업무량이 상당한 국립종합병원 의사라 일 주일에 두 번 이상은 밤샘 당직을 해야 하는 여건인데, 아직 어린 두 딸을 키우며, 경제 위기로 실직한 남편과 함께 어떻게 그렇게 잘 버티나 싶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 건강이나 공부에도 특별히 신경 쓰며 여러 종류의 학원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보면(그리스는 초등학생들은 일부 사립학교를 제외하고는 일반 학원에서는 법적으로 차를 운영할 수 없으므로, 부모가 학원에도 데리고 다녀야 합니다.) 저런 슈퍼 맘이 다 있나 싶었습니다.

게다가 언젠가 소개한 대로 침대보나 수영복까지도 다림질하는 전형적인 그리스인 주부인데 말이지요. 

생각해보면 이런 그 친구가 여태 제게 눈물을 안 보여준 게 이상할 지경이었습니다.

 

"마리아. 일이 많이 힘든 거야?"

저는 우는 게 좀 진정된 그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차분하게 자신의 얘길 하기 시작했습니다.

"국가에서 인원을 너무 지나치게 감축해 버려서 업무에 묻혀 쓰러질 지경이야. 우리과 병동에는 최근에 의사를 둘이나 잘랐는데, 당분간 충원 계획이 없다는 거야. 안 그래도 경제적인 이유로 사립병원보다는 국립병원으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고, 올해 들어 관광객 수도 대폭 증가해서 관광객 환자들도 예년보다 늘었는데 말이야.

덕분에 나는 밤샘 당직을 더 자주 하고 있는데 이젠 체력이 버틸 수가 없어. 정말 국립병원을 떠나야 하나 고민이 돼. 하지만 이제껏 일해 온 시간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개업을 하자니 요즘 같은 경기에 더 부담이 되고, 사립 클리닉들도 당분간은 충원 계획들이 없더라고."

 

로도스 국립종합병원의 마리아가 일하는 담당 과 병동 층만 해도 입원 침대 수가 240개이고, 낮엔 외래 환자도 있어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라, 갑자기 의사 두 명이 없어지니 얼마나 일이 많을지 충분히 짐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얘기를 듣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쩜 이 친구의 고민은, 경제 위기를 막 극복하며 재 도약하고 있는 그리스의 많은 근로자들이 똑같이 하고 있는 고민이겠구나' 라고요.

저희 사무실만해도 직원 두 사람이 그만 둔 이후로 새 직원을 뽑지 않고 버티다 보니, 남은 인력들이 모두 정신 없이 바쁜 상태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는 현재 그리스가, 일반 사업체들은 최소한의 인력으로 운영하는 대신 남는 재정으로 늘어난 세금을 충당해야 하고, 마리아의 직장처럼 그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들도 최대한의 긴축재정으로 국가 부채를 탕감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많이 바쁜 생활을 하고 있지만, 40대 중반의 평소 씩씩한 친구가 업무가 버거워서 울음까지 터트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한국의 IMF 직후에 직장생활을 하던 제 상사들이 묘하게 겹쳐져 보였습니다.

90년대 후반 당시 IMF를 막 극복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기업들은 긴축과 구조조정을 거듭하며 살아 남기 위해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지 않은 채 버티는 곳이 많았습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도 예외가 아니어서 당시 제 업무량 역시 만만치 않았었는데요.

하지만 당시 20대였던 저보다 40-50대였던 직장 상사들의 직장에서 버티기는 대단히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참 공부하는 자녀들을 뒷바라지 해야 하니 어떻게든 직장에서 버터야 했던 상사들 중 한 분이 더 위 직급으로부터의 '인격모독적인 폭언이나 결제판 던지는 대로 맞기'까지 묵묵히 참아내는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대부분 미혼인 20대였던 저희 동료들은 "저렇게 까지 해서 직장에서 버텨야 할까?" 싶어 저희의 직장생활의 미래가 암담해 보이곤 했었습니다.

(물론 경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2014년의 대한민국의 직장생활이 당시보다 더 녹록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저 역시 한국에서의 업무가 아직 완전히 접힌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유선상으로 상황을 전해 듣다 보면, 기업들은 점점 더 빡빡한 업무체계를 직원들에게 요구하고 있구나 싶습니다. )

 

 

그렇게 한 바탕 짧게 울고 난 마리아의 옆에서 동석하고 있던 또 다른 친구는 이렇게 그녀를 위로했습니다.

"마리아! 나를 봐. 몇 년 전까지도 나보고 네가 그랬지. 내가 중학교 선생님이어서 여름방학도 길고 좋겠다고. 근데 근 몇 년간 어찌 되었나 봐. 우리 동료들 중 경제 위기 이후로 구조조정 된 친구들도 여럿이고 이상한 곳으로 발령을 내도 꼼짝없이 가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잖아. 어디 그 뿐이야. 월급도 40%이상 삭감되었고. 그래도 작년까지는 로도스 시에서 편하게 직장생활 하다가 올해 '예나디'로 발령 났을 때 진짜 어떻게 해야 하나 했어. 로도스 시에서 편도로 두 시간인데다 너무 시골인데, 우리 애들은 어떻게 돌볼 수 있을까 싶었고… 매일 기름값만 20유로(3만원)가 넘게 들어. 그래도 아예 생뚱맞게 연고도 없는 북 그리스 어느 시골로 발령 난 동료도 있는데 난 다행이다 싶어. 별 수 없으니 이렇게 다니고 있잖아. 그만 두면 어쩔 거야. 어떻게든 다음 발령 때까지 참고 붙어있어야지 싶어. 그러니 너도 힘 내. 몇 년 지나면 좀 나아지지 않겠어?"

 

그 말을 들은 마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저를 쳐다보며 "넌 어때? 올리브나무?" 라고 물었고

저는 "너도 알다시피 난 요새 어떤 날은 밥 먹을 시간도 잘 없어. 우리도 올해 추가 충원을 안 했잖아. 그리고 나 책 작업 하는 거 알지? 그것도 곧 마무리 해야 하고... 마리아나 학원이나 과외 하는 거 신경도 써줘야 하고...그러고 사네." 라고 대답했습니다.

 

재미있게도 제 말을 들은 마리아와 동석했던 다른 친구는 제가 이제껏 그들을 알아온 날들 중 이 날 제 말을 들은 그 순간 가장 저와 깊이 공감하는 듯, 격하게 친밀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입장에서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그리스의 근로자로서 제가 외국인이지만 그런 그리스의 현실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공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재작년에 동생 결혼식 때문에 미국에 다녀왔을 때나 작년에 이민 후 처음 한국에 다녀 왔을 때에는, 나름 불가피한 해외여행이었는데도 "너는 시간적인 여유도 있고 좋겠다!" 며 시무룩해 하던 친구들이었습니다.

근데 올해는 바빠서 아무 곳도 갈 수가 없다는 말에 도리어 격하게 반기는 것을 보면, 사람은 자신과 어떤 부분이든 처지의 공감대가 형성 되어야 더 친밀감을 느끼는 존재구나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나마 우리는 그 날 저녁 만나서 차라도 마셨는데, 아이들을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아예 방학 동안 보내 놓고 야근 하느라 그 자리에 나오지도 못 한 다른 친한 엄마들보다는 낫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마리아였습니다.

(저 위의 사진 속의 까떼리나는 로도스 시에서 1시간 반 떨어진 지역 병원 간호사인데 야근 때문에 이날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처음으로 친구들 앞에서 한 바탕 울고 마음을 털어 놓고 나니 개운해졌는지, 아이들을 챙겨 집으로 돌아갈 때는 말간 얼굴로 평소보다 한 톤 높은 목소리로 "잘 가~올리브나무!"를 외쳤습니다.

 

평소 자존심 강한 그 친구가 제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보여서인지 이 날을 계기로 그 친구와 제 마음의 거리가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것 같아, 저도 돌아오며 도리어 마음이 편했습니다.

 

뻔한 말이지만 '위기는 기회'라고 했는데, 한국의 IMF 때 과도한 업무를 하며 당시엔 너무 피곤했지만 결론적으로 업무 스킬이 다양하게 생겨서 평생 그것을 쓸 곳이 많았던 것 처럼, 마리아를 비롯해 제 그리스인 친구들도 지금 익혀놓은 업무 대처 능력들이 반드시 유용하게 쓰일 날이 올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어차피 연금 때문에 65세 정년까지 버티고 일해야 하는 그리스인 친구들이니까요. 

더불어, 어쩌다보니 한국에서도 경제 위기를 겪었고 그리스에서도 경제 위기를 겪은 저 자신에 대해 위기만 골라가며 겪는다고 불쌍하게 생각하기 보다 '난 인생에 기회가 많은 사람'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어집니다. 다른 것을 몰라도 많은 업무 덕에 그리스어가 갈 수록 늘어가는 것만은 사실이니까요.

    

 

오늘도 바쁘게 일하는 그리스인들과

또 한국에서 하루 바쁜 일과 중 한숨 돌리며 이 글을 읽고 있을 모든 분들께

파이팅을 외쳐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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