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속의 한국

여기서 엉뚱하게 한글을 발견할 때 깜짝 놀라요.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4. 30.



 





알다시피 제가 사는 지역인 그리스 로도스에는 저와 딸아이 외에는 한국인이 전혀 없습니다.

제가 처음 이민을 와서 대사관으로부터 이 사실을 확인하며 설마 했던 것이 사실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꼭 무인도에 떨어진 것 같이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로도스에서 수백 년 넘게 대를 이어 살아온 시어머님 집안이나, 100년 넘게 거주한 시아버님 집안의 여러 친인척들을 뵐 때마다, 그 분들이 들려주시는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한 친척 어르신께서는 1950년대에 한국전쟁 이후로 로도스로 이민 왔던 한국인을 만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가족이 계속 이곳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이미 한국인 신분이 아니니 제가 알 길이 없습니다.

도대체 그 옛날에 어떻게 그리스까지 이민을 오게 된 것인지 참 궁금하기만 합니다.

어떤 땐 로도스 내에서 중국인들이 주로 거주 하는 뜨리안다 라는 지역에 가서 한번 자세히 찾아볼까 싶어 수소문도 했었지만 그분들이 이 씨 성을 가진 분들이었다는 것 외에는 더 이상의 정보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또 어떤 친척 어르신께서는 북한에서 온 사람을 한 사람 만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오래 전 로도스의 어떤 가구 공장에서 일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당시 합법 체류가 아닌 듯 해서 더 이상 지금은 어디에 사는 지 알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던 분 중에는 동수 씨의 외가쪽 5촌 당숙 내외도 계셨습니다.

자녀가 없으신 분들이라 평생 좀 외로우셨는데, 깐깐한 당숙 어르신과 달리 

아내 '끼차 숙모님'께서는(제 시어머님의 외숙모님이신데 그냥 그렇게 부른답니다.) 

전통 빵과 쿠키를 만드는 비법 전수자이신데, 시골집에 가끔 찾아 뵐 때마다 저를 정말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꼭 제 외갓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곤 합니다.



 




  

 

사실 그 한국인 가족 분들을 제가 만난들 '이민 세월이 반 세기가 지난 분들' 어떤 공감대가 있을 지 전혀 알 수 없고, 북한에서 오신 분은 현재 한국의 새터민 분들과는 또 다른 오래 전 세대이니 한국에서 새터민 지인들이 있었던 저이지만, 이 북한 분을 만나서 나눌 이야기가 과연 있을까 싶습니다.

 

어떻든 이런 오래전 이민 왔다는 한국인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곳 어딘가에서 엉뚱하게 한글을 발견하게 되면 혹시나 하는 생각에 깜짝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엉뚱하게 한글을 처음 발견했던 것은, 이민 초 시내의 쇼핑몰 앞에 세워져 있던 자동차에서였습니다.




은색 지프였는데, 뒤 트렁크 면에 세로글씨로 합.기.도. 라고 검은 궁서체로 쓰여있었습니다.

그 차가 자주 그곳에 세워져 있어서 궁금해서 주인을 수소문 한 결과, 그 분은 로도스에서 합기도장을 운영하시는 그리스인이였습니다.


  

그리스 로도스에서 합기도장을 운영하는 야니스 아싸나시우


도장 안에도 여기 저기 한글이 보여서 어찌나 반갑던지요! 



또 한번은 어떤 그리스인 남자분이 여름에 반팔을 입고 돌아다니는데, 세상에 팔에 한자들과 함께 한글이 두 자 새겨져 있는 게 아니겠어요?

저는 그 문신을 보고 터져서 웃을 수 밖에 없었는데요.

역시 궁서체로 '강. 힘.' 이렇게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ㅎㅎㅎ

도대체 어떤 뜻인 줄 아냐고 물으니 아마 '강한 힘'이란 뜻을 새기고 싶었던 것 같은데, 한글을 잘 모르니 그렇게 부족한 정보에 의지해 문신을 할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함께 새겨져 있던 한자 역시 용자와 복였기에, 그냥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새겼구나 싶었습니다.

한국인들도 간혹 라틴어나 그리스어 등의 특이한 언어로 문신을 새기는 경우가 있는데, 정말 제대로 새기도록 주의해야 할 듯 합니다. (실제 저는 한국인 독자분들로부터 '그리스어 문신을 새기기 위해 뜻을 확인하는 문의'를 두 번이나 받은 적이 있습니다.)

 

 

작년 9월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마리아나가 새학기를 시작했을 때였는데, 교문 앞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그리스인 젊은 남성들이 있어서 그냥 학원 전단지인가보다 싶어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받고 보니 태권도 라는 한글이 선명하게 쓰여있는 태권도장 전단지였습니다.

어머! 저는 진심으로 사범님이 한국계가 아닐까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동네에서 먼 이 태권도 도장까지 일부러 찾아가 확인해본 결과, 사범님은 그리스인이었습니다.





로도스의 로디니라는 지역에 있는 이 태권도장에서 훈련하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올라와 있는데,

들어보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이라는 한국어와 

에나, 디오, 뜨리아...라는 그리스어를 함께 구령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로도스 내의 태권도장들, 합기도장들을 자주 보다 보니(신기하게도 계속 새 도장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제는 놀랄만하게 한글을 발견할 일이 점점 없어졌고, 저도 그냥 이제는 그 1950년대에 이민 왔다는 한국인 가족들을 만나는 것을 포기했고, 어디서 한글을 보더라도 크게 놀랄 일은 없을 것 같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다 몇 주 전 마리아나와 친척 끼끼 집에 잠시 들르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나가 사촌 미카와 신나게 놀고 있을 때 끼끼는 베란다에 자리잡은 테이블에 저를 앉으라고 하더니, 커피와 직접 만든 쿠키를 내왔습니다.


  

그런데!

이 컵이 어디서 많이 본 모양이다 싶어 컵을 뱅그르르 돌려가며 이리 저리 살피는데, 뙇! 

역시! 한국 캐릭터였던 거로군요!!




한글로 뿌까, 라는 단어를 보는데 반가움과 놀라움에 웃음이 팍 터졌습니다.



저는 정말 놀라서, "아니! 끼끼! 이걸 어디서 샀어??"라고 물었는데요.

??"응? 그냥 동네 마트에서 샀는데? 모양이 귀여워서."


'아아...내가 로도스의 쇼핑몰이나 마트를 그렇게 돌아다녀도 발견하지 못했던 한국 캐릭터 컵을, 끼끼가 동네 마트에서 발견하다니...' 라고 생각하던 중, 그 동네가 중국 식당이 많아 중국인들이 조금 모여 사는 동네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럼 끼끼, 혹시 한국인 본 적 없어? 이 동네에서?"

"아니. 난 한국인은 네가 평생 처음이야. 하하. 

그런데 몇 년 전에 자기가 신분은 그리스인이지만 원래 한국인이라고 말 하면서도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젊은 아가씨가 내가 아는 운전학원에서 운전 연수를 했다는 말을 몇 다리 건너 들은 것 같아."

"아니, 그 운전학원이 어디야?? 내가 한번 알아보게."

"나도 잘 기억이 안 나. 어디였더라??"

"혹시 알게 되면 알려 줄래?"

"그래. 그러지 뭐."

 

제가 과연 이 한국인 이 씨로 추정되는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만나고 나면 과연 만나길 잘 했다고 생각하게 될까요? 아니면 괜히 만났다고 생각하게 될까요?

지금으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혹시 만나게 된다면, 꼭 독자님들과 공유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게 되는 여부과 상관 없이, 

한글을 이렇게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그것도 한국인인 내가 쓴 것이 아닌 누군가가 써 놓은 한글을 발견한다는 것은, 여전히 참 묘하면서도 기쁜 그런 기분이 들게 하네요!

 

여러분 힘찬 하루 되세요!

 


관련글

2013/06/26 - 그리스인들이 한국어 숫자를 셀 줄 아는 놀라운 이유

2013/11/07 - 그리스에도 한국처럼 중국 식당 사장이 중국인이 아니라니!

2014/04/25 - 이민을 고민 중이세요? 그리스에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2013/06/06 - 한국전쟁 참전용사셨던 나의 그리스인 시할아버님

2014/02/04 - 한국어, 그리스인에겐 이렇게 들린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