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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한국

한국음식에 이것 들어갔다고 놀란 그리스인들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6. 21.

 

 

 

 

"너, 음식에 뭘 넣은 거니?"

그리스 이민 후 첫 여름을 맞았을 때 그리스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한국 여름음식을 몇 가지 만들었었는데, 저의 상차림을 보신 시부모님께서 깜짝 놀라시며 하신 말씀이셨습니다.

"아...한국에서는 여름음식에는 이걸 넣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음식에 이걸 넣는 것을 처음 보셨어요? 그리스에서는 음식에는 전혀 넣지 않나요??"

저는 되물을 수 밖에 없었고, 시부모님께서는 "그래. 그리스에서는 아무리 여름이라고 그런 걸 음식에 넣진 않거든. 신기하네. 참."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이후 두분 뿐만 아니라 다른 그리스인들도 제가 한국 여름음식을 만들 때 이것을 집어 넣는 것을 보며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이곤 했습니다.

그 이후 사람들이 너무 놀라니까 저는 어느 순간부터는 이것을 음식에 넣지 않게 되었는데요.

 

여러분 혹시 짐작하셨나요?

제가 만들었던 한국 여름음식들은 비빔국수, 오이냉국 등이었고 거기에 들어간 재료로 그리스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재료는 바로 다름 아닌 '얼음'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리스처럼 해가 뜨거운 나라에서, 게다가 더운 날씨 때문에 냉장고와 별개로 우리나라 김치 냉장고 만한 냉동고가 집집마다 존재하는 그리스에 이런 얼음을 넣은 음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도리어 이상할 수도 있는데, 그리스인들은 샐러드처럼 찬 음식을 먹긴 하지만 음식에 얼음을 넣는 경우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들에게 얼음은 물이나 음료, 냉커피 등에 넣는 여름 필수품이긴 해도 음식용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이렇듯 대부분의 제 주변 그리스인들은 저를 통해 음식에 얼음을 넣는 장면을 처음 목격했기에, 그게 너무 이상하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다들 눈이 휘둥그래져서 음식을 한번 쳐다보고 저를 한번 쳐다보곤 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비빔국수를 만들 때 소면을 구하기는 어려우니 스파게티 면 중 가장 얇은 면을 삶은 후 그리스인들이 먹을 수 있게 좀 덜 맵게 양념을 해서 버무리곤 하는데, 마지막에 고명으로 채 썬 오이와 삶은 달걀, 얼음 한 두 조각을 올려서 내 놓곤 했는데, 매운 것을 좋아해 제 한국식 비빔국수를 좋아하는 이웃 스테르고스나 다른 친구들까지도 먹을 때마다 이 얼음이 어색한 지 자꾸 웃음을 터트려서 나중엔 아예 얼음은 빼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한국에서 살다 온 동수 씨는, 갈비집이나 한정식집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살얼음이 살짝 뜬 동치미 국물이나, 육수 얼음을 갈아서 넣은 칡냉면, 얼음이 들어간 콩국수 등 한국의 얼음 있는 여름음식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지금도 가끔 "올리브나무! 냉면 먹고 싶다! 으아~~~~!" "올리브나무 얼음 뜬 동치미 국물 먹고 싶다~~~!" 라고 말하며 몸을 막 흔들며 입맛을 다실 정도입니다.

 

 

 

 

그리스에서도 비빔국수는 스파게티 면으로도 얼핏 비슷하게 만들 수 있지만, 냉면은 아무리 국물을 비슷하게 해도 면발이 독특한 음식이라서 그리스에서는 한번도 만들기를 시도해본 적이 없기에, 더운 여름이 되니 동수 씨는 요즘 들어 부쩍 더 아쉬워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이 생일이었던 동수 씨. 신선한 대하가 잔뜩 들어간 해산물 스파게티를 만들어달라고 해서 저는 바쁜 중에도 해산물 가게에 들러 장봐다가 만들어 주었는데요.

낮에 너무 바빠 음식 먹을 새도 없었던 동수 씨가 저녁 때가 되어서야 이 스파게티를 맛 보더니 한 말은 이렇습니다.

 

"우와! 맛있어! 오늘따라 진짜 맛있네! 가게 내도 되겠어!!!

고마워. 올리브나무!!! 이거 참치 김밥도 맛있어! 이거 샐러드도 맛있어!!!"

슈퍼맨

"흠~ 입맛이 7성급 호텔 주방장처럼 까다로운 사람이 

어쩐 일로 오늘 내 음식 칭찬을 과하게 하네?

...당신 진짜 배가 고팠구나... 천천히 먹어."

 

"근데, 얼음 들어간 냉면 먹고 싶다. 그치? 진짜 맛있는데.

난 냉면에 들어간 배 한쪽이랑 고기도 정말 좋아. 으아~~~ 냉면 먹고 싶어!!!"

축하2

"…당신 아직도 배고프구나. 음식을 먹으면서 다른 음식 생각을 또 하는 걸 보니...

내가 냉면은 못 해주만, 조만간 당신 좋아하는 비빔국수랑 미역 냉채 해줄게.

얼음도 한 두 개 넣고."

 

"(갑자기 한국어로) 좋아!!!! 가슴이 너무 시려 냉면 냉면 냉면~~~!!!"

 

뜬금없이 몇 년 전에 제시카와 박명수가 무도 가요제에서 불렀던 '냉면' 노래 한 소절을 한국어로 부르는 동수 씨입니다.^^

 

 

 

냉면을 좋아하는 만큼 이 노래를 처음 듣고는 정말 좋아했던 동수 씨라, 아직도 기억을 하고 있네요.^^

 

노래를 부르는 동수 씨에게 저는, 그리스인들이 음식에 얼음이 들어간 것을 보고 왜 그렇게들 놀라는지 물어보았고 동수 씨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기선 음식에 얼음을 넣는 경우는 없으니까.

사람은 누구나 익숙한 것인데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 놀라기 마련인 걸.

그리스인들에게 얼음은 여름에 음료에 꼭 넣어야 하는, 필수품이나 다름 없는 익숙한 것이니까. 난 한국인들이 잘 안 보는 책을 라면 냄비 받침으로 쓰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 걸?

그리고 대단한 발견이라고 생각했어!

나도 재미없는 책 많이 읽으면 머리 아픈데 그렇게 효율적으로 쓰다니 말이지!

그리스인들도 네가 음식에 얼음을 넣은 게 이상하다고 생각해서라기 보다, 낯설어서들 그러는 거야. 한국에 가서 얼음 들어간 냉면 한번 맛들 보라지! 얼마나 끝내주는지!!!

(다시 한국어로 노래하며) 가슴이 너무 시려 냉면 냉면 냉면, 퐈이아!!!"

요리

 

그래도 그리스인 중에 동수 씨 한 사람쯤은 음식에 얼음이 들어가는 것을 낯설게 생각하지 않으니, 앞으로도 동수 씨에게 한국 여름음식을 해 줄 때는 변함없이 얼음을 넣어야겠다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어 제자들에게도 올 여름엔 얼음 들어간 한국 여름음식을 한번 만들어서 보여주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봐야겠습니다.

물론 한국과 관련된 거라면 뭐든 좋아하는 그녀들이 얼음이 들어갔다고 낯설어 마다할 리는 없을 듯 하네요.^^

 

 

여러분 맛난 거 많이 드시는 즐거운 주말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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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동안 여러분의 댓글에 대한 답글을 좀 쓰겠습니다. 그간 경황이 없어 너무 답을 못 해 드려 죄송했어요.ㅠㅠ 어디부터 어떻게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그냥 쓸 수 있는 부분부터 성심껏 써볼게요.

* 키키영구님께서 물어 봐 주신 사촌 스타브로스는 지난 달 군대에 갔습니다.^^ 국방의 의무를 다 하고 있는 스타브로스의 사진과 제 주변인물들의 다소 엉뚱한 근황들은 다음 글에서 알려 드리도록 할게요^^ 

* 늘 저를 응원해주시고 지지해주시는 여러께 감사드립니다! 드라마 대사처럼 제 마음을 표현하고 싶지만, ("당신은 나의 비타민..." 등등....) 어쩐지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다 표현할 수는 없고, 제가 감사해 하는 진심을 여러분께서 아실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