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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한국

그리스 사위에게 큰 오해 받은 한국 장모님 친구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5. 15.





 

동수 씨는 한국에 살면서 친구나 지인들 집에서나 식당에서 수 많은 김치를 먹어보았지만, 언제나 저희 엄마 김치가 제일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들곤 했습니다.

깔끔하고 시원한 맛인 엄마 김치가 맛있다는 얘기는 학교 다닐 때 도시락을 나누어 먹던 친구들에게도 가끔 듣던 말이라서, 주변 한국인 지인이 그렇게 말을 했다면 의심 없이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수씨는 어디 가도 절대 굶을 사람은 아니다 생각될 만큼 워낙 필요할 때에는 얼굴 두껍게 남을 추켜세우며 비위 맞추기도 잘 하는 성격이라, 처음엔 솔직히 '외국인이 김치 맛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저렇게 자신만만할까?' 생각하며, 그 말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동수 씨의 그런 말이 공치사가 아님이 밝혀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제가 처음 이민을 들어올 때 함께 그리스에 들어오셨는데, 그 짐 속에는 꽁꽁 새지 않게 겹겹이 싼 김치들도 들어 있었는데요.

그런데 엄마의 오래된 절친한 친구분께서도 제가 한국을 떠난다니 김치 한 포기를 함께 싸서 넣어주셨던 것입니다.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해줄게 없다 그러셨다고 하는데, 저도 직접 받은 것은 아니라 그 친구분께 고맙다는 말씀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 김치들은,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신 후에도 저희 집 냉장고에서 '엄마의 김치''엄마 친구분의 김치'로 분류되어 나란히 보관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때는 그리스인들이 이렇게나 냄새에 민감한지 몰랐었기 때문에, 모르면 용감하다고 손님이 집에 자주 왔음에도 불구하고 김치를 아껴 먹는다고 냉장고에 장기 보관 했었는데요.

"어머님 김치~~~!!!! 나는~~~ 좋아 좋아!" 라며 그리스 음식에도 김치를 곁들여 먹는 동수 씨 덕에, 엄마의 김치는 금새 동이 났고 엄마 친구분이 주신 김치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엄마 친구분이 담그신 김치를 펼쳐야 했고, 그 김치를 한 조각 입에 댄 동수 씨의 반응은 이랬습니다.


"으아!! 매워!!! 매워!!! 매워!!!!!!"

평화


물을 찾더니 벌컥벌컥 마시고도 매운 기가 사라지지 않았는지 한 여름 그리스 동네를 하릴없이 돌아다니는 큰 개들처럼 혀를 빼 물고 헥헥 거리기 시작했는데요.

매운 것을 좋아하는 제 입에는 그 김치도 맛있는 김치였는데, 한국에 살 때 매운 떡볶이나 짬뽕도 곧 잘 먹던 동수 씨였지만 톡 쏘는 매운 양념의 엄마 친구분 김치는 또 무척 매웠던 모양입니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해결되지 않자 동수 씨는 갑자기 냉동실 문을 벌컥 열더니 얼음을 꺼내 아작아작 씹어먹기 시작했는데요. 그러다 안 되겠는지 냉장실 문을 열어 우유를 꺼내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동수 씨의 반응에 저는 좀 당황했고 "괜찮아? 어떻게 하지…"만 연거푸 말 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는데, 동수 씨가 얼음과 우유를 입 안에서 아작아작 씹어 빙수로 만들다가 제게 던진 말에 저는 그만 푸하하하 웃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어로)헥헥. 아이구. 매워! 어머니 친구! 나빠! 나빠! 나를 싫어해. 확실해!

(그리스어로) 이건 음모야. 어머님 친구는 우리를 안 좋아하는 거야. 

그래서 김치에 더 많은 매운 고춧가루를 넣어서 우리에게 괴로움을 주려고 

이걸 그리스까지 보낸 거야!! 확실해!!!"


"뭐라고! 하하하..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 그 분 만나본 적도 없으면서. 

얼마나 좋은 분이신데. 늘 엄마랑 우리들 잘 챙겨주시는 분이라고. 

그러니 이렇게 멀리 이사 간다고 김치까지 챙겨주셨지. 그런 오해는 하지마. 

그 아주머님이 무슨 죄야. 아무리 매워도 선의를 그렇게 받으면 어떻게 해..."

 

"정말,그럴까??? 

하지만!!! 난 한국에 살 때 이렇게 매운 김치를 못 먹어 봤다고!!! 

처음이야!! 처음!!"


"그거야. 당신이 서울이나 근교에서 주로 김치를 먹었으니 그렇지. 

남도 쪽으로 가면 더 맵고 맛있는 김치가 얼마나 많은데. 

난 지금도 서울과 먼 다른 지역 김치들이 한 번씩 생각나곤 한다고. 

그런 김치는 따끈한 밥에 김치만 있어도 정말 뚝딱 먹어 치운다니까."

ㅎㅎㅎ

 


그제야 동수 씨는 장모님 친구분이 음모로 매운 김치를 보낸 게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그럼. 다음에 어머님 오실 때를 기다리지. 난! 어머님 김치가 제일 좋다고!!"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그 다음 저희 엄마가 그리스에 오셨을 때, 도착하신 날부터 동수 씨는  "어머니! 김치 만들어 주세요!!" 라고 졸라댔고, 결국 엄마는 그리스에서는 부족한 재료로 젓갈까지 비슷하게 만들어가며 김치를 잔뜩 담아 두고 가셔야 했습니다.

물론 당시엔 그리스인들의 냄새 결벽에 대한 것을 제가 이미 알아버린 후라, 여러 통에 있던 김치를 아주 금새금새 먹어 치웠답니다.

 


지난 주 어버이날, 사무실에서 엄마와 메신저로 얼굴을 보며 통화를 하는데, 옆에서 동수 씨가 인사만 재빨리 하더니 뭘 꼼지락거리며 만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 컴퓨터 카메라에 동수 씨가 바짝 들이댄 것은 A4 용지였는데요.

그 종이엔, 한글로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어머니 김치 정말 좋아요! 

맛있는 김치 만들어주세요!


다짜고짜 들이댄 그 종이를 본 저희 엄마는 "푸하하하하!" 웃음을 터트리셨고, "왜, 올리브나무가 김치 가끔 만들어 준다는데, 그건 싫은가?" 라고 물어 보셨는데요.

동수 씨는 정색을 하며, 그 큰 눈을 부릅뜨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올리브나무 김치는 어머니 김치보다 맛있어요!! 어머니 김치가 필요해요!!"

유난히 '안' 자에 힘을 주며 굳이 한국어로 힘주어 대답을 했습니다.^^

 

결국 언제 그리스에 다시 오실지 알 수 없지만 오시면 꼭 김치를 만들어 주시겠다는 약속을 장모님께 받아 내고서야, 동수 씨는 안심을 하는 듯 했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동수 씨는 또 제게 한 마디를 덧붙였는데요.


"만약에 어머니 친구 아주마니(이 단어는 이상하게 꼭 한국어로 말하는데, 아주머니를 꼭 아주마니 라고 밖에 못 하네요.^^) 김치 또 갖고 오시면 이번엔 매워도 먹을 수 있어. 

올리브나무, 네가 집에 오는 손님들이 냄새 싫어한다고 김치를 자주 안 담아서, 

난 지금 어떤 김치라도 다 먹을 수 있어!!! 

왜 예전에는 김치 귀한 줄 몰랐을까. 내가 한국에 살다 와서 그랬나 봐. 

 (갑자기 한국어로) 어머니 친구 아주마니!! 고마워요!! 

아주마니는 나 미워해!!!!! 나 이제 알아요!!!"

 

'안'자에 힘을 주는 동수 씨입니다.

ㅎㅎㅎ 

 

여러분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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