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 살다 보니 한국어를 많이 잊은 매니저 씨가, 제가 그리스인 제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교재를 만들고 있으면 불쑥 고개를 모니터 앞으로 들이밀며, "흥! 이것쯤은 나도 아는 내용이라고!"라고 당치도 않는 발언을 할 때가 있습니다.
어려워 모를 텐데 싶어 "그래? 그럼 한 번 읽어 봐." 라고 말을 하면, 읽다 말고 발음이 막 꼬이니 그 두꺼비 같은 손으로 모니터를 막 쓱쓱 문지르며 "뭐야, 뭐 이렇게 어려워?" 라며 무안해 하곤 합니다.
그런 매니저 씨이지만 여전히 아주 잘 기억하고 있는 한국어들이 있는데, 한국에 살 때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회식하며 배운 한국어 욕들과 다양한 한국어 인사말들입니다.
한국어 욕이야 요즘 크게 사용할 일도 없고, 어쩌다 일이 안 풀릴 때 혼잣말로 사용해도 정말 폭소만발이라 잘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는데(매니저 씨 발음이 좀 이상해서 자꾸 신발을 찾고 그러니 말이지요.ㅎㅎ 그리스인들이 한국어에 ㄴ을 잘 붙인다고 말씀 드린 적 있지요?), 요새 이상하게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말로, 혼자만의 놀이에 심취하게 되었습니다.
나갈 일이 있을 때나 헤어질 때, 저희 부부는 그 동안 한국어로 "안녕!" 이라며 헤어질 때가 많았는데요.
요즘 들어 매니저 씨는, 제가 "안녕"이라고 인사를 하면 똑같이 "안녕" 이란 말대신 자꾸 "하세요!" 라고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처음엔 '이 사람이 지금 뭐래?' 싶었는데요.
날 놀리는 것도 아니고 이미 "안녕"하고 헤어지는 인사를 했는데, 돌아서는 제 등뒤에다 혼자 대답으로 "하세요!" 하고 가버리면, "안녕히가세요"도 아니고 꼭 만나는 인사 같고, 뭐 하는 건가 싶어서 "왜 그래? 그러지마."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횟수가 거듭되며 저는 더 이상 매니저 씨에게 그 "하세요!" 라는 애들 같은 덧붙임을 하지 말라고 말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지 말라고 못 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한번 상황을 재현해 보겠습니다.
올리브나무 : (그리스어로) "그래. 외근 나간다고? 잘 다녀 와."
매니저 : (그리스어로) "응. 간다."
올리브나무: (한국어로) "안녕!"
매니저 : (한국어로) "하세요!"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0.5초 정도 쉬었다가)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한국어로) 재밌어. 재밌어! 재밌어~~~~~~!!
다,당신, 드디어 미친 거야? 그런 거야? 그렇게 재밌어?
저는 매니저 씨의 그 혼자 대답하고 혼자 웃는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매니저 씨의 혼자만의 놀이는 회를 거듭할수록 웃음 상태가 광란의 상태로 바뀌어서, 한국어 인사말을 모르는 누가 봐도 혼자서 이 게임을 즐기고 있음을 역력히 알 수 있게 이상해 보이지만, 한번 무언가에 꽂히면 정신을 못 차리는 매니저 씨를 말려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아는지라 시아버님도 혀만 끌끌 차곤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놀이를 좀 자제할 수 밖에 없는 계기가, 얼마 전 가족 모임에서 벌어지고야 말았습니다.
그날 사람들이 바글바글 왁자지껄 모여 파티가 무르익었을 무렵, 매니저 씨는 가볍게 와인도 한잔해서 기분이 몹시 좋은 상태였는데요.
손님 대접한다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정신 없던 저와 매니저 씨가 눈이 딱 마주친 순간, 저는 그러고 보니 손님 맞이하느라 바빠서 오늘 퇴근 후에 인사도 못 해줬다 싶어 저도 모르게 매니저 씨에게 손을 들며 한국어로 "안녕"이라고 말을 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매니저 씨는 마치 제가 그 말을 해주기만을 백만 년은 기다렸다는 듯이,
집이 떠 나가도록 "하세요!" 라고 대답을 하곤, 이어서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라고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습니다.
옆에 앉아 계시던 시부모님, 고모님들, 친척들은 모두 깜짝 놀랐고, 그 표정이 웃겼던지 매니저 씨의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웃음은 계속 이어졌는데요.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웃고 있는 매니저 씨를 보고 시아버님은 더 이상 못 참으시고 한마디를 하셨습니다.
"그만! 오늘 달이 보름달도 아닌데, 넌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니?
부탁인데 일할 때 이러지는 정말 말아라!"
(평소에 아버님은 제게, 매니저 씨가 한번씩 획 돌아 불같이 화를 낼 때면 "오늘 달이 보름달이라서 그래. 네가 이해해라..." 라고 말하곤 하십니다.ㅎㅎ)
어떻든 저는 그 날 이후로, 매니저 씨에게 한국어로 "안녕"이라고 말 하는 횟수를 현.저.히. 줄였습니다.
정말 일하다가 혹시 저렇게 정신줄 놓고 웃어버릴까 걱정이 되어서요.
하지만 이 혼자만의 놀이가 지루해져서 더 이상 하지 않게 되면, 그 땐 다시 한국어로 인사를 해야겠지요?
"안녕"은 '신발' 보다 기억할 필요가 있는 한국의 좋은 인사말이니까요.
여러분 즐거운 하루 되세요!
* 혹시 제 블로그에서 보신 첫 글이 이 글인 분들께, 남편 매니저 씨가 미친 사람은 아님을 밝혀두는 바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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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분이 정말 귀여우시네요. 한국말을 차근차근 배워가는 그 모습에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에게 그리스어가 낯선 만큼이나 남편분에게도 한국어가 정말 낯설고 어려울 것 같아요. 하지만 서로 함께하며 배워갈 수 있어서 좋으실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얼음꽃님^^
그래도 나름 한국에서 어학당까지 다녔었는데, 많이 잊어서 속상하긴해요. 아무래도 언어란 게 안 쓰면 잊는 것이라..
그래도 다시 필요한 때가 꼭 올 거라고 생각해요~
신발이라..그거 너무 듣기 좋은걸요?
언제나 유쾌한 매니져씨의 놀이를 계속할 수있게 안녕을 해주셨으면 하는게 저의 바램이랄까요.
너무 웃어서 배꼽만 빠지지 않는다면 제 생각에는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ㅎㅎㅎ
아하하하...민트맘님^^
정말 엄청 웃겨요. 신발이라고 말할 때요.
안녕 뒤에 하세요, 그렇게 혼자 말하고 혼자 좋아하는 것을 보면 정말 어이가 없어서 한참 물끄러미 쳐다보게 되더라고요.ㅋㅋ
매니저님 귀여우시다...^^ 적당히 웃으셨으면 계속 즐거운 놀이가 될 수 있었을텐데 아쉽네요.
제 남편도 유머러스하긴 하지만 중후한 스타일이라...ㅋ 매니저님처럼 명랑, 쾌활하진 않아서 올리브나무님이 부러워요.
매니자님께서 한국말을 잊어버리고 계시다니 살짝 서운한 느낌이 드는데, 한국말까지 잘하시면 너무 완벽한 거겠죠? ㅎㅎ
새벽님 남편분께서는 어쩐지 굉장히 신사 느낌이 날 것 같아요~
그래도 완전 멋지실 듯!!
매니저 씨는 명랑하고 쾌활한 대신 엄청 다혈질이라, 또 혼자 화낼 때 보면 제풀에 분에 겨워 어쩔 줄을 모르곤 해요.~ 제가 요즘은 블로그에 그런 표현을 자주 안 썼지만, 정말 어떤 땐 ㅈㄹ맞다고 표현한답니다.ㅎㅎ
새벽님 댓글 마지막에 매니자님, 이라고 오타가 났는데 완전 빵터져서 웃었어요. (절대 고치치 마세용. 이렇게 큰 즐거움을 주시다니~~) 어쩐지 오늘 아침에 얄미운 행동을 했던 매니저 씨에게 매니자 라고 불러주면서 약올리고 싶은 마음도 든답니다^^(꼭 우리나라 아주머님 이름 같잖아요^^)
안녕이라하면 하세요를 붙이는 놀이는 생각지도 못한 놀이네요ㅋㅋㅋㅋ너무 재미있으세요~ㅎㅎ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비너스님^^
신입이 막스가 너무 귀엽네요 ^^
아버님의 보름달 멘트는 멋진 표현인데요 ^^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인 태양인이신듯 해요 매니저님은
불같다는 표현을 하시니 그런 생각이 드네요
요즘 웰컴투 어학당이라는 프로를 즐겨보는데 끝말잇기 게임이 재미있더라구요
매니저님이 좋아하실 듯 한데요 ㅎㅎ
그러게요~ 열도 많고 땀도 많은 체질이라 양인은 양인있 것 같은데, 저도 한방쪽은 잘 몰라서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앗! 그런 프로그램이 있나요?
한번 찾아 봐야겠어요^^
어학당 다닐 때 엄청 불쌍했었어요~매니저 씨^^
안녕하세요 놀이 너무 귀엽고 재미있어용ㅎㅎ 재밌으신 분이네요!ㅎㅎ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와코루님.
답글 확인하러 왔다가 실컷 웃고 가네요.
울 딸한테 빨리빨리!
아하하..따님도 재미있어 할까요?
동경언니님, 감사해요~^^
ㅎㅎ 저리 작은일에 즐거워하시는 매니져님..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이신가요~~
귀요미세용 ㅋㅋ 웃는얼굴이 좋잖아용~~~ㅎㅎ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팩토리님~
어제 오늘 제 눈치 엄청 보고 있는 매니저 씨랍니다^^
제가 일이 너무 많은데 좀 도와달라고 살짝 히스테리를 부렸더니...ㅎㅎㅎㅎ
안녕!^^;
하세요!!! 박진님*^^*
반갑습니다~~~
요즘 퇴근이 늦어 저녁에 보게 되네요
저도 요즘 회사에서 일본어를 배운다고 새벽같이 출근해서 정신없는데
외국어가 어렵지만 이상하게 또 입에 착 감기는 말들이 있는것 같아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되는...
뭐 어쨌던 나쁘지는 않은것 같아요 ^^
일본어를 배우시는군요! 마루치님!
어이쿠...새벽 출근...정말 피곤하시겠지만, 그래도 배워두면 분명히 도움될 때가 있는 생산적인 일이니, 꼭 좋은 성과를 거두시길 바랄게요^^
말씀하신대로 외국어 중에 정말 입에 착 감기는 말들이 있더라고요~ 그리스어에도 있어요.
안 그래도 그런 말들을 한번 소개하려했는데, 마루치님이 또 이렇게 짚어 주시네요^^
일본어 공부, 파이팅입니다!!
매니저씨 정말 귀여우시네요ㅎㅎㅎ
그래도 한국어 인사를 잊어버리시지는 않겠어요.
오히려 다른 그리스분들도 안녕하세요 를 배우시지 않을까요?ㅎㅎㅎㅎ
맞아요~히티틀러님~
정말 그리스인들이 매니저 씨와 딸아이 덕에 한국어를 많이 배웠어요.
매니저 씨는 인사말 외에도 "재밌어" "배고파" "미쳤어" "사랑해" "미안해요"(이 말은 꼭 요를 붙이더라고요.ㅎㅎ) 등의 말들을 자주 사용해요^^ 워낙 일상적인 말들이라 안 잊나봐요^^
ㅋㅋㅋ 진짜 귀여우신 매니저님~~ㅋㅋㅋㅋ
그게 그렇게 배꼽빠지게 웃긴가봐요~~~ㅎㅎㅎ
두 분이 안녕이라 인사나누신다니 왠지 정겨워요~~ ^^ 한국사람들도 부부끼리 안녕이라는 말 잘 안쓰는데요~ ^^
담에는 올리브나무님 하세요를 한 번 해보심 어떨까요~? 매니저님 또 박장대소 하시겠죠~? ㅎㅎ
아! 그런가요? 정겨운가...? 한참 생각했어요^^
워낙 그리스인들은 한국인들 보다는 말로 인사를 많이 나누는 편이라, (좋은 아침, 좋은 오후, 좋은 점심, 좋은 밤 등등의 말을 빼먹지 않고 나누니까요.) 아마도 그런 영향으로 한국어 인사도 꼭 하는 것 같아요. 근데 안녕, 이라고 말하는 게 저는 좋더라고요.^^ 소금님이 매니저 씨를 좋게 봐주셔서, 만약 매니저 씨가 이 사실을 알면 엄청 좋아할 거에요^^
저는 한국말 배우기 시작하는 독일사람들과 한국말할때가 가장 어색합니다 ㅎㅎ
저까지 이상한 억양의 한국말을 하게 되지요.
완전 오그라드는 한국말을요 ㅋ
장난을 계속 받아주시기도 그러지 않기도 좀 뭣할꺼 같아요 ㅋ
그러게 말이지요. 빈티지 매니아님.
저 역시 한국어를 가르치지만, 그리스인들이 독특한 그리스어 억양을 한국어에 섞기 때문에 그 부분을 교정하는 데에 시간이 좀 필요하더라고요.
어떨 땐 저도 한국어를 그리스어 억양을 섞어 말하기도 하고,
ㅠㅠ
아마 남편은 저러다가 또 금새 새로운 놀이에 심취할 거에요. 그럼 또 안녕이라고 인사해야지요^^
그게 그렇게 빵 터질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매니저님에게는 뭔가 웃음 포인트가 있겠죠?
폭소하는 매니저님을 생각하니 저도 덩달아 웃게 되는데 친척들은 진짜 깜짝 놀라셨을듯ㅎㅎㅎ
안녕은 아껴두고 계시다가 매니저님이 우울해하실 때 비장의 카드로 써먹으시면 될 것 같아요~
아하하..그러게요.
정말 자기 혼자 좋아서 저런다 싶어서 어이가 없는데, 또 웃는 모습이 웃겨서 같이 웃게 되네요^^
도대체 웃음 포인트는 혼자만의 비밀인 걸까요?ㅎㅎㅎㅎ
하하! 매니저님 너무 귀여우시네요~ 가끔 보여주신다는 댄스도 그렇고 매니저님은 유쾌한 분이신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해피마인드님*^^*
참 즐거운 일이 많고 열낼 일도 많은 매니저 씨랍니다^^
강아지가 인생을 내려놓은 표정을 하고있네요. 그런데...그런데 말입니다. 가끔 매니저씨가 올리브나무님한테 불같이 화를 낸다고해서 놀랐어요. 세상에 이런 부인이 대체 어디 있다고 화를 내는건지 짐작도 않가네요.
아하하..포로리님..
저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매니저 씨는 그냥 성격이 다혈질이어서, 이렇게 혼자 업되어 즐거울 수 있는 것 처럼, 누가 뭔가 원인을 제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화를 불같이 내기도 한답니다...
뭐 저도 첨엔 무척 황당했는데,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되네요.
그냥 댓구도 안해요. 그러면 또 금새 풀어지는 단....세..포....(이글을 번역기 돌려 읽을까 조마조마.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