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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한국

그리스인들이 '한국인 몸은 유연하다'고 단정짓게 만든 사건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10. 11.

 

 

저녁 무렵 시어머님은 저와 딸아이의 오늘의 일상에 대해 물어보시러 집에 들르셨습니다.

처음 이민 와 시어머님을 잘 몰랐을 때엔, 그냥 단답형으로 묻는 말에만 대답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제가 뭔가 물어봐 주길 기다리는 눈치셨고, 사실은 우리의 오늘 일상도 궁금하시지만 당신의 일상을 말하고 싶으셔서 저희 집에 들르신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저는 어머님께 꼭 오늘 하루 어떠셨냐고 묻게 되었습니다.

내일이면 여름 시즌이 끝나 호텔 일이 마무리 되어, 더 이상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어머님은 우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난, 너무 기분이 안 좋아. 이제 겨울철 동안 비도 계속 올 것이고, 동료들도 볼 수 없고,

고용보험도 너무 줄어서 더 절약해야 할 것이고, 난 뭘 하면서 하루를 보내지?"

슬퍼3

저희 시어머님은 늘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걱정이 많으시고 감정이 풍부하고 단순한 성격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저는 이렇게 대답을 해 드렸습니다.

 

"어머님, 뭘 걱정을 하세요. 아마 많이 바쁘실 거에요. 저희 집에 아직 있는 어머님 물건들도 재작년부터

정리하신다고 하셨었죠? 가게 일도 도와주시고 할일이 많으실 거에요. 해마다 그러셨잖아요.

미리 걱정하지 마세요~ 친구들은 전화해서 또 만나시면 되지 않겠어요?"

감사

 

"그래. 맞아. 네 말이 맞아. 내가 할 일이 많겠구나. "

하트3

 

어머님은 언제 걱정을 했냐는 듯이 기분이 금새 좋아지셔서 당신 집으로 가셨습니다.

ㅎㅎㅎ

작년 크리스마스 외할머님과 함께 식사 중이신 시어머님

 

이렇게 단순한 성격의 어머님이 작년 여름, 집 열쇠를 안에 두고 문을 닫아버려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리스 현관 앞문은 호텔 객실 문처럼, 열쇠 없이 닫아버리면 밖에서 문을 열 수가 없게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매니저 씨 가게에 집 현관쯤은 5분안에 열 수 있는 인력이 몇이나 되는데, 그냥 사무실로 전화를 하자고 아무리 얘기해도 싫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님은 시아버님께 부주의했다는 타박을 받는 게 싫으셨는지, 굳이 아주 조금 열린 부엌 창문으로 들어가시겠다고 우기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머님의 유연성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어머님을 정말 말리고 싶었습니다.

제 자동차가 지프 형이라서 뒷좌석에 앉으려면 앞좌석을 당겨 타고 내려야 하는데, 어머님은 차체가 약간 높은 이 차의 뒷자석에 타고 내리시는 것도 어려워하실 만큼 유연성이 없으신데, 어떻게 컴퓨터 모니터만큼 열린 틈으로 들어가시겠다는 것인지 정말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단순하신 시어머님은 그리스인 특유의 약간의 호기까지 부리시며 급기야 창문에 한 다리를 척 걸치셨는데요.

헉

어머나!

어머님은 다리가 90도도 올라가지 못하고 뒤로 꽈당 넘어져버리셔서 함께 있던 끼끼 고모가 비명을 지르고, 지나가던 옆집 술라 아줌마까지 야단이 나서 달려올 만큼, 그날 이후 꽈당 데스피나(저희 시어머님 성함입니다.)로 등극하셨습니다.ㅎㅎ

 

어머님이 저렇게 단순하게 하나에 꽂히면 말려도 소용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던 저는 그 때까지 잠자코 지켜보고 있었는데요.

꽈당 넘어진 후 다치시진 않았지만 꼴이 말이 아니게 되자 그제야 "올리브나무야. 어떻게 좀 해 봐!" 라고 포기를 하셨고, 저는 10 분이면 달려올 가게 직원들을 놔두고 어머님의 간절한 요청으로 부엌 창틀에 다리를 척 하고 올리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제가 특별히 남들보다 유연한 편은 아님을 밝힙니다.

하지만! 충만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오랫동안 등산을 하며, 암벽이든 뭐든 기어오를 일이 참 많았던 터라 그 정도 높이의 창문은 유연성 때문이 아니라, 높은 바위를 오르는 요령으로 반동을 주어 올라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정작 저 스스로 깜짝 놀랐던 일은 따로 있었는데요.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컴퓨터 모니터 만한 창문으로 제 몸이 빠져나갔다는 사실입니다! (TV 만큼 큰 모니터를 얘기하는 게 아니란 거 아시지요?ㅋㅋ)

사실 그 불가사의는, 고대7대 불가사의인 로도스 거상의 존재 보다 더, 지금까지도 제가 풀지 못한 숙제입니다.

순간 제가 고양이 몸이라도 된 것인지, 참 알 수 없는 기적입니다.

 

아무튼 순식간에 빠져 나와 잠긴 현관을 안쪽에서 열쇠로 열고 밖으로 나가자, 시어머님, 끼끼, 옆집 아줌마까지 물개 박수를 치며 마치 제가 통아저씨라도 되는 듯 진기한 눈빛으로 쳐다보았고, 이 그리스 여인들은 저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한국인은 역시 몸이 참 유연하구나! 네가 다리를 이상하게 꼬고 앉을 때 알아봤어.

네가 그랬지? 한국인들은 다 그렇게 앉을 수 있다고?

정말 놀라울 따름이야. 한국인들의 인체의 신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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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소파 위에서도 양반다리를 하고 앉는 저를 지켜보며, 그리스인들이 그런 생각들을 했는지 전 그때까지 몰랐었는데 말이지요.^^ (입식문화의 서양인들은 양반다리 자체가 아예 안 된다는 말씀은 드린 적이 있었지요?)

 

결국 며칠 후, 한국인처럼 유연함을 키우길 원하셨던 어머님은, 딸아이의 리듬체조 동작을 따라하시다가 허리를 삐끗하시는 대형사고를 일으키셔서 한 동한 고생하셨답니다.--;

 

 

바로 이 동작이었는데요.

 

"어머님...이건 리듬체조 배우는 애들이나 가능한 거라고요. 한국인이라고 다 하는 동작이 아니라고요...

다음엔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 네?!"

토닥토닥

 

♥♡ 여러분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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