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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한국

그리스인 한국어 제자와의 아주 특별했던 책거리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3. 30.

그리스인 한국어 제자와의

아주 특별했던 책거리

 

 

 

 

 

 

 

 

저에게는 한국어를 배우는 디미트라갈리오삐라는 제자들이있습니다.

애독자분들이시라면, 디미트라의 폭소를 부르는 가족관계에 관작문을 기억하실거에요.

 2013/02/23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유럽인들을 멘붕시킨 한국의 가족관계호칭

 

지난 주까지 기초 한국어 과정에서의 명령문을 몇 주 동안이나 배우던 디미트라는,

상황별 한국어 명령문에 거의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가..' 멘탈이 붕괴되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리스어에서는 아무리 상황별 명령 동사가 여러 개가 있다해도 한 동사 당, 세 개의 명령 동사만 잘 기억하면 모든 사람을 상대로 명령문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어의 경우 그렇지가 않다는 걸 아시지요.

이를테면, '가다'라는 동사 하나에서 발생되는 명령 동사는 '가, 가세요, 가시지요, 가십시오, 가 주십시오, 가 보십시오.' 등 여러 형태로 변형 될 수가 있습니다. 한국인들이야 태어날 때부터 썼던 말이니 그게 구분이 되지만, 외국인에게는 이 것을 상황에 따라 구분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시러명령문을 공부하며 이런 표정을 짓던 디미트라였습니다.^^

 

어떻든 그래도 똑똑한 디미트라는 대략의 구분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고,

대박똑똑해!!!!

이제 기초과정도 끝났겠다, 어려운 한국어 공부에 대해 그녀의 떨어진 사기를 고무시키기 위해 '책거리'파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책거리'를 하는 경우가 흔하진 않은 것 같은데, 제가 어릴 때만해도 학교에서나 학원에서 책을 한 권 끝낼 때마다 책거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책거리란? 

    학생 읽거나 베껴 쓰는 일이 끝났을 선생 친구들에게 한턱내는 일로,

    옛날 서당에서 책을 한 권 끝냈을 때, 학동들이 훈장님께 감사함의 의미로 먹을 것을 대접하면서

    책을 다 배운 것을 축하하는 전통입니다.

 

 

지난 주 디미트라에게 다음 주엔 책거리를 하겠다고 말하며 책거리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고,

꼭 먹을 것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고 우리 서로 축하하면서 지난 공부를 간단히 복습하는 시간을 갖고 함께

편하게 이야기하며 놀자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디미트라를 위해 작은 책거리 선물을 준비했고, 금요일인 어제 평소 수업할 땐 데려가지 않는 딸아이와 함께 그녀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녀의 가족들은 감사하게도 딸아이를 참 예뻐해서 책거리 파티를 할 때, 꼭 데리고 오라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먼저 한 시간 정도 지난 과정을 복습을 했는데, 처음과 달리 몰라보게 한국어 읽기 실력이 향상된 그녀를 보면서 제 마음이 감격으로 뿌듯했답니다.

엉엉 우리의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그녀에게 준비한 선물을 건넸고,(작은 크로스 백이었어요.) 그녀는 어쩔 줄 몰라하며 좋아했습니다.

디미트라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시는 그녀의 어머니는 저희에게 로도스에서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라면인

태국라면을 손수 끓여서 대접해 주셨습니다.

라면 끓이는 디미트라, 이 집은 디미트라가 아테네로 이사 가기 전에 그녀가 태어났던 집이라고 하네요.

클래식한 스타일이지만, 늘 깔끔해서 어머님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집이지요. 

 

신나게 라면 먹는 딸아이

 

한국라면을 못 구하니 대리만족을 하며 먹는 라면이지만, 우리는 모두 감사하게 먹었답니다.

 

책거리는 처음이라 뭘해야 좋을 지 모르겠다는 그녀에게,

저는 무엇이든지 좋으니 하고 싶은 걸 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방에 들어가 잔뜩 뭔가를 들고 나왔는데, 팔찌를 만드는 재료들이었습니다.

 

 

 

전에 제게 이미 팔찌를 한 차례 만들어 준 적이 있는 디미트라는 손재주가 좋아서 딸아이와 제게 팔찌만들기 방법을 전수했고, 저희는 신나게 팔찌를 만들기 시작했답니다. 제 것은 줄이 짧아서 결국 반지가 되어버렸지만 말이에요.^^

 

그리고 미트라 어머님은 디미트라의 어릴 때 사진을 들고 나오셨고,

우리는 또 함께 사진을 열심히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민호 팬이신 디미트라 어머님과 딸아이^^

  

 

그 다음에, 한혜진과 기성용의 전격 연애 소식에 대해, 디미트라

그리고 나중에 책거리에 잠옷차림으로 합류한 갈리오삐와 함께 열심히 수다를 떨었습니다.

(저보다 한국의 스캔들을 더 잘 아는 친구들이에요^^)

 

라면에 초코케이크에 우유까지 얻어먹은 딸아이는 기분이 좋아서 갈리오삐에게 

들고 갔던 한글 동화책을 읽어주기 시작했고,

그녀는 정말이지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답게 진지하고 심각한 얼굴로 딸아이의 동화책 읽는 소리를 들으며 

책의 한글을 눈으로 쫓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지금 싱크대 위에 올라 앉아서 책을 보고 있는데, 참 편해 보이네요.^^)

 

딸아이의 책읽기가 끝난 후, 한바탕 책 내용에 이야기를 한 후에, 런닝맨 이야기가 나왔고 그녀들은 딸아이에게 런닝맨에 출연하는 남자 연예인 중 누굴 좋아하냐고 물었는데, 딸아이는 갑자기 부끄러워하며 화장실로 들어가 숨었습니다.^^

그런 반응이 웃겨서 모두 한참을 웃었고, 그렇게 먹고 이야기하고 팔찌 만들고, 한글동화책을 읽고, 한국 연예인, 한국 TV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 하다보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나서, 저와 딸아이는 집에 돌아와야했습니다.

평소 집중력있고 속도감있게 수업만 진행하던 때와 달리, 오늘 한국어 제자들과 함께한 책거리는,

특별한 화려한 먹거리가 있었거나 특별한 무언가를 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편안하게 그냥 형식 없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함께 하며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한국어를 이해할 수 있고, 한글을 읽을 수 있고,

한국 TV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한국에 살았더라면 당연하고 일상 같았을 그런 소박한 일들을

그리스에서, 한국인이 아닌 그리스인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제게 특별한 기쁨을 주었습니다.

 

제가 살면서 해봤던 어떤 책거리보다도

행복하고 뿌듯했던 책거리였습니다.

이 책거리의 추억으로 다음 주부터 새롭게 시작될, 조금은 더 어려울 한국어 수업에서

디미트라와 갈리오삐가 다시 심기일전 열공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소박하지만, 함께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여러분도 그런 행복한 토요일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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