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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독백

<기묘한 이야기> 실종됐던 그녀, 조폭으로부터 구출 작전 1부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3. 18.

저는 평범하고 모범생같이 지냈던 어린 시절이 무색하리만큼, 성인이 된 이후로 이제껏 남들이 흔하게 겪지 않는 일들을 참 많이 겪었습니다.

좀 전에 어떤 님의 글에 댓글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저의 한국에서의 십여년의 사회 생활은 좋게 말하면 사회적으로 인정 받았고, 돈 잘 벌었고, 잘 나갔던 삶이었지만, 안 좋게 말하면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안 겪어도 될 일들 참 많이 겪었던 치열한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의 밝은 면이 아닌 다른 도 직 간접적으로 많이 겪었습니다.

 

그런 사건들을 일일이 다 떠올릴 때면 제 인생이 이상하기 짝이 없지만, 지금은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신이 주신 축복의 경험이었다고 생각하며, 추억거리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건들 중 비교적 덜 아프고, 기묘한 이야기들은 가끔 하나씩 풀어서 여러분에게 들려드릴까 합니다.

100% 제가 겪었던 실화인,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 중 그 첫 번째. 실종됐던 그녀, 조폭으로부터 구출 작전.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이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는 이야기 형식을 빌어 쓰는 것이므로, 반말로 진행되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이야기 속의 이름은, 혹시라도 사건의 주인공을 아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므로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이야기 속의 화자인 '나', 는 올리브나무 저입니다.)

 

 

 

 

 

   <기묘한 이야기> 실종됐던 그녀, 조폭으로부터 구출 작전 1부

 

  이 일은 지금으로부터 십 일년 전쯤 있었던 일이다.

  그녀, 주희 씨를 처음 만난 건 우리 집에 내 친구와 함께 그녀가 불쑥 찾아왔을 때였다. 고작 나보다 두 살밖에 어리지 않았던 그녀는 좀 철딱서니 없는 어린애 같았고, 그런 그녀가 불편하기 짝이 없었지만 친구 얼굴을 봐서 웃으며 대해 주었다.

그런데 내가 일하던 회사에 그녀가 다시 찾아왔다. 그녀는 그냥 나와 친해지고 싶다 했다. 내키진 않았지만 추워 보이는 그녀의 터진 손등이 눈에 들어왔다. 밥이나 한끼 먹여 보내려고 식당으로 갔다.

얘기를 나누어보니 철딱서니 없어 보이던 그녀는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다른 사람보다 감정 표현에 좀 솔직한 사람이었던 것뿐이었다.

내 주변의 보통 사람들처럼 감추고 체면 차리지 않는 그녀는 내게 살갑게 굴었고 나는 그녀의 일을 도와주기도 하며 그럭저럭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만남은 그녀의 일 관련해서 만나야 할 때 이루어졌다. 그녀의 까다로운 남자친구 이야기, 초등학교 1학년 때 집을 나갔던 엄마 이야기, 자기와 언니, 남동생을 구박했던 새 엄마 이야기, 언니가 구박에 못 이겨 집을 나간 이야기… 그녀의 삶은 들어보니 참 어려운 일들이 많았었다.

  어느 날 그녀가 하던 일을 그만두고 공백 기간 동안 청담동에 있던 한 고급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잠깐 하겠다고 했다.

새 직장을 구하면 연락을 달라 하고 헤어져, 한 동안 그녀가 어찌 지내는지 알지 못했었는데, 하루는 그녀의 남자 친구에게로부터 내게 전화가 왔다.

  "저, 혹시 주희 연락 되세요?"

  "어? 상근 씨가 모르는 주희 씨 행방을 제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왜요? 주희 씨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요?"

  "주희가 갑자기 사라졌어요.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디 말없이 바람 쐬러 간 건 아닐까요?"

  "아니요. 직장에서는 엊그제 퇴근해서 나갔다고 하고, 집에 가보니 아침에 나간 흔적 그대로 있어요. 여행을 갔다면 뭔가 챙겨나간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집에 가보니 아침 먹은 설거지도 안되 있어요. 아시죠. 주희 깔끔한 거. 설거지 못하고 출근하면 저녁에라도 꼭 하는 앤데, 뭔지 모르겠어요…어디 짐작 가는 데 없으세요?"

  "글쎄요. 전혀 짐작 되는 데가 없어요."

  "내일까지도 기다려 보고 휴대폰이 계속 꺼져있다면, 경찰에 신고해야 할 것 같아요… 걱정 돼서 죽겠어요."

  "그래요…음…일단 실종 신고 하시고, 특별한 연락 있으면 저한테도 좀 알려주세요. 저도 너무 걱정 되네요."

 

  그 뒤로 일 주일쯤 지났을까. 연거푸 울리는 휴대폰 벨 소리에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 올려보니 새벽 세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처음 보는 낯선 번호였다. 전화를 꺼버리려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통화 버튼을 눌러보니 그녀, 주희 씨였다.

  "주희 씨! 어떻게 된 거에요? 상근 씨가 나한테 까지 전화하고 경찰에 실종신고까지 했어요. 거기 어딘 거에요?"

  "여기 부산이에요..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정말."

부산이란 말에 잠이 훅 달아나 전화기 액정을 다시 들여다 보니, 정말 051로 시작되는 번호였다.

  "아니, 왜 부산에 있어요?"

  "저, 기억나세요? 전에 제가 가게에 찾아왔다던 아저씨…"

  "아저씨요?"

  "아저씨인데…나한테 관심 있다고 사귀자고 했다던…"

그제야 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했던 그 아저씨라는 사람에 대해 기억이 났다.

  그는 조직폭력배라고 했었다. 한 무리의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주희 씨가 일하던 식당에 밥을 먹으러 오곤 했는데, 그 사람이 자꾸만 주희 씨에게 추근대서 곤란하다고 했었다. 귀엽고 사근사근한 스타일인 주희 씨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맘대로 사귀어 주지 않자, 퇴근하는 그녀를 식당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가 완력으로 납치를 해서 그 길로 본인 조직의 근거지인 부산으로 데리고 내려가 버린 것이었다.

 

  "그럼, 지금은 어디인 거에요? 어떻게 전화를 하는 거에요?"

  "그 사람 집에서 꼼짝 말고 있으라고 해서 며칠 동안 있었는데, 너무 무서워서 그 사람 나간 사이에 집 앞 공중전화 하는데 나왔어요."

  "그럼 경찰한테 먼저 전화를 해서 거길 빠져 나와요! 문을 안 잠가 놨으면 왜 못나오고 그러고 있는 거에요?"

  "그 사람이 제 지갑이랑 신분증이랑 휴대폰을 다 가져갔고, 경찰에 신고하면 죽인다고 했어요…그 사람 차 트렁크를 봤는데, 사시미 칼이 잔뜩 들어 있었어요."

  "헉…사, 사시미 칼이요????"

 "저기요. 일단 끊어요. 상근 씨한테는 차마 염치가 없어서 전화를 못 하겠어요. 내 잘못으로 여기에 온 것은 아니지만, 도저히 이상한 남자랑 엮여서 여기에 이러고 있다고 말을 못하겠어요. 나를 얼마나 이상한 여자로 보겠어요."

 "지금 그게 문제에요? 얼른 도망쳐 나올 생각을 해야지…일단 내가 여기 경찰에게 전화를 해서 얘기를 할 테니까 다시 기회 봐서 전화주세요. 아셨죠?"

그녀는 아셨죠? 라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아마 빨리 집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 같았다.

나는 크게 두어 번 심호흡을 하고 상근 씨가 신고했다던 그 지역 경찰서에 전화를 해서 자초지정을 설명했다.

시간이 새벽이어서 담당 형사가 퇴근했다고 내일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뜬 눈으로 밤을 꼬박 새우고 겨우 일어나 출근을 하려는데, 그 경찰서의 담당 형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형사는 다짜고짜 나를 심문하기 시작했다.

  "**씨, 김주희 씨랑 무슨 관계십니까."

  "그냥 아는 사이에요."

  "그냥 아는 사인데, 가족, 남자 친구한테도 안 한 전화를 ** 씨에게 했겠습니까?"

  "저도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왜 제게 전화를 했는지."

  "이것 보세요. **씨. 당신이 그 조폭이란 사람이랑 짜고 김주희씨를 빼돌린 거 아닙니까?"

안 그래도 형사라는 사람과 처음 통화를 해서 잔뜩 긴장을 하고 있던 저는, 그의 말도 안 되는 질문에, 전화기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며

토할 것 같은 현기증이 들기 시작했다.

  "뭐, 뭐라고요? 지금 뭐라시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야기가 그렇잖아요. 그런 게 아니면, 왜 **씨가 여기로 전화를 해요. **씨는 우리가 이 사건을 조사 하는데 염두에도 안 뒀던 사람인데. 원하는 게 뭐해요. 당신도 한 패 아닙니까?"

아,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억울한 일이 많은가? 찰나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의례 화가 무척 나면 늘 그러하듯 목소리를 낮추고 또박또박 대답하기 시작했다.

  "이것 보세요. 형사님. 업무에 충실한 것은 좋은데, 제가 지금 말하고 있는 중이잖아요. 제가 김주희씨를 조폭과 짜고 숨겨준 사람이면, 이렇게 버젓이 발신자 번호 뜨는 제 명의 휴대폰으로 전화했겠습니까. 김주희 씨가 전화를 걸어온 공중전화 번호를 알려드릴 테니 위치 추적하셔서 찾아가시든지 알아서 조사해보세요. 사람이 사건을 도우려고 전화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곤란한 것 아닙니까."

 

  "아, 뭐. 아니라면 미안합니다. 저희 직업이 워낙 모든 사람을 의심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이해하십쇼."

더 길게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나는 대충 마무리 하고 전화를 끊었다.

신고 전화하는 사람한테도 이런 정도이면, 경찰서에서 조사라도 받으면 안 한 일도 했다고 말하게 하겠구나 싶었다.

기분이 더러웠지만 상근 씨도 이 일을 알아야 하기에 상근씨에게도 전화를 했는데, 얘기를 전해들은 그의 반응은 가관이었다.

  "그래서, 지금 주희가 딴 남자 하고 있다 그 얘깁니까?"

  "상근 씨. 물론 기분이 나쁘겠지만, 일단 사람을 구하고 봐야지 않겠어요?"

  "일단 끊겠습니다."

그리고 상근 씨와는 연락이 끊어졌다. 그런 인간이었던 것이다. 기분 나쁜 건 알겠지만, 사랑했다면서 사람을 구해야지. 일단 구하고 헤어지더라도 헤어지든지 해야지. 4년을 사귀었다면서, 마치 일부러 그녀가 그 조폭이랑 사랑의 도피행각이라도 한 듯 여기는 그런 그의 태도는 좀스럽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렇게 연락을 끊어버리다니. 조직폭력배에 사시미 칼을 보고 도망칠 수 있는 여자가 얼마나 된다고. 나중에 관할 경찰서에서 친절한 여성 형사가 내게 다시 전화를 해 왔는데, 그 여 형사 말로는 상근 씨는 경찰과도 연락이 되질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한 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경찰이 부산 경찰서와 연계해서 수사를 펼치고 있다고는 했지만 다른 급한 사건들이 많아서인지 사건이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그녀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주희 씨가 내게 다시 전화를 한 건, 그로부터 며칠 후였다.

낯선 휴대폰 번호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수화기 너머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2부는 내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