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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독백

나 때문에 이상한 대회에 나가려는 딸아이의 외국인 친구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5. 7.

나 때문에 이상한 대회에 나가려는

딸아이의 외국인 친구









자녀를 키우다보니 뜻하지 않게 제 어머니가 저의 유년시절에 했던 말들을 저도 딸아이에게 반복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뭔가 야단칠 때나 잔소리 할 때의 멘트들은 정말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습관적으로 내가 듣던 얘기

를 무의식 중에 딸아이에게 하고 있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무의식 중에 딸아이에게 뱉은 저의 잔소리가, 딸아이의 그리스인 단짝 친구인 알리끼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발생해 버렸습니다.


막 1학년을 다니던 딸아이가 하루는 학교에 다녀 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제게 이렇게 말을 해 왔습니다.


"엄마. 알리끼가 나와 같이 대회에 나가고 싶대."

"응? 무슨 대회?"

"있잖아. 엄마가 나 보고 맨날 나가라고 하는 대회 말이야."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가 언제 너보고 대회에 나가라고 했어?"


잠시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 썼지만, 제가 어떤 대회에 대해 언급한 것은 전혀 떠 오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당시에는 딸아이가 막 학교에 입학했을 때여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어떤 경시 대회 같은 종류가 있다

해도, 그리스 내의 대회들에 대해 큰 정보가 없을 때였기에 그런 말을 해오는 딸아이가 너무 이상했습니다.


1 학년 때, 학교의 가면 무도회에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알리끼와 딸아이




"엄마 근데 대회에서 만약 일등을 하면 무슨 상을 받는거야?"

??

딸아이는 기억나지 않은 제가 언급했다는 대회에서 일등하면 받을 상에 대해서까지 묻기 시작했습니다.


"알리끼도 너무 궁금하대. 무슨 상을 받을지. 그리고 만약 대회에 나가면 일등할 자신도 있대."

샤방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게 되니, 저는 슬그머니 짜증이 밀려왔습니다.

도대체 무슨 대회인지 기억도 안 나는 대회에 둘이 나가서 일등의 우열을 가리고 상을 받겠다니 말입니다.

게다가 그날은 제가 한참 바쁘게 일을 하고 있던 중이라 앞뒤 없이 그렇게 말하는 아이가 이해가 되질 않아 살짝

언성을 높였습니다.


"도대체 무슨 대회야? 응? 엄마가 언제 무슨 이야길 했는지 구체적으로 말을 해보라구!"


그러자 기억하지 못하는 제게 당황한 듯, 딸아이는 기죽은 목소리로 울먹이기까지 하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엄마가 나 맨날 방 어지르고 안 치운다고...(훌쩍) 나 샤워하기 귀찮아 한다고 (훌쩍)

대회 나가도 되겠다고 했잖아. 세상에서 가장럽게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나가는 대회 말이야..(훌쩍)

내가 그 얘기를 알리끼에게 했는데, 알리끼도 매일 샤워할 때 귀찮고 방치우는 거 나처럼 싫어해서 (훌쩍)

그 대회에 나가서 일등할 자신있댔어. (훌쩍) 상품이 뭔지 꼭 알아봐 달랬어....(훌쩍)"


헉뭐, 뭐, 뭐라고????!!!!!!

어머나...

저는 진심으로 아이에게 치우라거나 씻으라고 말하며, 제가 그렇게 잔소리 하는줄 몰랐었습니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그리고 그 얘기는 정확하게 깔끔쟁이셨던 저희 엄마가 어릴 때 저희 자매들에게 걸래를 던져주며 늘 하셨던 말씀이

셨습니다.

"더러버라~~~아이구야. 가시나들이 좀 깨끗하게 방을 치워야지. 이게 뭐꼬?!

세상에 더러븐 사람이 누군가 뽑는 대회 나가면 니들이 일 이 삼 등 할끼다.

빨리 치워~!"

부글부글

늘 야단칠 때만되면 갑자기 사투리를 쓰셨던 저희 엄마 싱크대를 구멍이 뚫릴 만큼 반복적으로 닦으시는 깔끔한

성격이셔서 우리가 하루만 방을 안 닦거나, 겨울에도 하루만 샤워를 해도 늘 잔소리를 하셨고 그 레퍼토리 중

하나가 더러운 사람 뽑는 대회에 내 보낸다는 말씀이셨던 것입니다.

ㅋㅋㅋ


그런데 그 말도 안되는 소릴, 제가 저도 모르게 딸아이에게 중얼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걸 진심으로 생각한 딸아이가 그 얘길 친구에게까지 해서 함께 대회에 나간다는 말에 저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깔깔거리며 웃기만 했습니다.

우하하

그 후로도 딸아이와 친구 알리끼는 저를 볼 때마다 한번씩 그 대회 생각이 나는지 졸졸 뒤를 따라다니며

"상품이 뭐에요? 네? 가르쳐 주세요? 네?" 라고 물어댔고,

저는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답니다.^^

미안미안


아마 아이들이 다 자라 버리면, 이런 일이 있었다고 추억하며 함께 웃을 날이 오겠지요?

하지만 아직은 그걸 믿고 있는 순진한 아이들이라 더 사랑스러운 것 같습니다.

ㅎㅎㅎ


마지막으로 블로그 이웃이신 괭인님께서 딸아이에게 어린이날 선물로 그려 보내주신 저를 울린 그림공개하며

이글을 마칩니다.



참 좋지요? 감동 다시 봐도 또 감동이네요..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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