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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독백

설날 아침, 타향살이하는 못난 딸이 아버지께 쓰는 편지.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2. 9.

설날 아침, 타향살이하는 못난 딸이 아버지께 쓰는 편지.

 

 

아버지.

이 편지를 보내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전화로 멋적게 "아휴, 밥 잘 챙겨 드세요." 라고

뚝뚝하게 말 할수 밖에 없을 거라는 거 알면서도

말로는 차마 낯간지러워서 하지 못할 말들을

그냥 뱉어봅니다.

 

한국은 설날이지요.

기분이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는 설 하고 아무 관계도 없는 날이었고, 일상 해야할 일들로 바쁜 하루였는데도

자꾸만 틈틈히 아버지 생각이 났어요.

딸아이가 며칠전에

할아버지 생신이 다가온다며 카드를 그리고 만들면서 묻더군요.

"할아버지가 몇 살이 되신거야?? 케이크 그림에 숫자 초도 그려 넣고 싶은데."

몇 살이시라고 겨우 계산해서 말해주면서

세상에...우리 아버지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되셨나,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일찍 결혼 하셔서 첫 딸로 저를 보셔서

항상 제게는 친구들 아버지보다 젊은 아버지셨었는데

가슴이 철렁했었습니다.

 

아버지.

저를 장남이라고 부르셨고

장남처럼 키우셨었지요.

아들 없는 집, 장녀라고 유난히 엄하고 강하게 키우셨었더랬지요.

그래서 서로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고 표현한 적도 없고

늘 뚝뚝한 투의 대화만 주고 받는 사이었지요. 우리는.

 

제 딸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아버지께서 그 아이를 물고 빨고 이뻐라 하시는 걸 보면서

아...우리 아버지도 저렇게 사랑을 표현할 줄 아시는 분이셨구나,

처음으로 알았답니다.

 

아버지, 기억하세요?

그리스로 오기 전 마지막으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

그 때도 날씨가 지금 같았는데

그 때, 우리 참 즐거웠었지요?

그런데 저는 왜 자꾸만 인천공항에서 눈물을 훔치며 그 마른 어깨를 들썩이며

평소와 달리 흐느낌 조차 감추지 못하셨던 아버지 얼굴만 오래도록 떠오르는 걸까요.

그 사이 그리스에도 다녀가셨고, 미국 동생 결혼식 때도 뵈었었는데

그런 즐거웠던 기억들은 희미하기만 하고

자꾸만 아버지의 흐느끼던 얼굴과

조금만 염색이 늦어져도 금새 희끗해져 버리는 머리카락들만 떠오르는 걸까요.

오래전 큰 병마와 싸우시느라 병원에 링거를 줄줄이 꼽꼬 누워 계시던

그런 지나간 일들만 떠오르는 걸까요.

 

아버지, 기억하세요?

저 다섯 살 때, 제가 보채서 한 달에 한 번 겨우 쉬시는 날

저를 자전거 뒤 짐 싣는 곳에 태우고 가시다가

제 오른 발이 바퀴 뒤에 쓸려 병원에서 치료 받았던 일이요.

피를 많이 흘려서 붕대를 칭칭 동여매고

병원에서 나오면서 시장에 들러

제가 신고 싶어했던 운동화를 사주셨던 일이요.

그리고 자전거 가게에 들러

앞 좌석에 다는 어린이 보호용 의자를 이리 보고 저리 보고

그렇게 몇 십분을 살펴보시고도

그 돈이 우리에겐 너무 큰 돈이어서

차마 못 사고 돌아나오며

제게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던 일이요.

두고두고 제 발의 흉터를 보시며

미안하다고 하셨던 일이요.

아버지.

저는 얼마전 딸아이 자전거를 밀어주다가

그 일이 문득 떠올랐어요.

아버지 맘이 어땠을까.

왜 그 오래전 일이

이렇게 또렿하게 기억나서

이제 발의 흉터도 희미해졌는데

아버지의 그 미안해하던 얼굴때문에

내 마음이 이렇게 아픈걸까요.

왜 부모가 되고서야

아버지의 아팠었을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걸까요.

 

 

돌아보면 저는 좋은 딸도 아니었고

부모님께 유난히 묵뚝뚝하게 굴었던

어떨 땐 두 분께 정떨어지는 딸이었을텐데

그런 저를 여전히 챙기시고

여전히 걱정하시고

그런 모습들을 떠올릴 때면 죄송하고

죄송하다고 제대로 말 못했던 시간들이 또 죄송하고

그런 제가 너무 싫고

나는 왜 그러고 살았었나 싶고

속에서 뭉텅뭉텅 삼켜지지 않는 눈물 덩어리만 올라옵니다.

 

시누이가 놀러오면,

시부모님께서 차려진 온 갖 음식 그릇을 시누이 앞으로 밀어주며

너는 밥은 먹고 다니냐...이렇게 물어볼 때마다

눈물이 핑그르르 돌곤 합니다.

시누이가 부러워서가 아니라

나도 한국에 있을 때 부모님이 그러셨었는데

그 때는 왜 고맙다고 말 하지 못했을까

고마운 줄도 몰랐었을까

그런 후회때문에

애써 눈물을 삼킨 적도 많습니다.

 

아버지.

이렇게 보낼 수 있을지 알 수도 없는 편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 죄송했어요.

저는

정을... 많이 시키는 딸이었어요.

한번도... 다정한 적이 없었던 딸이었어요.

저 때문에 속상해서 울기도 하셨었지요.

죄송해요. 아버지.

 

그리고 그런 지나간 긴 세월들이,

타향에 나와 살다보니

한 장면씩, 오래되고 바랜 스냅사진처럼

이따금 불현듯 떠올라

저를 많이, 이제야 부끄럽게 합니다.

늦게...철이 나서 죄송합니다. 아버지.

 

아버지.

올 해 한국은 유난히 춥다지요.

눈도 많이 왔다지요.

자식들 다 외국으로 보냈다고 적적하다고

대충 식사하지 마시고

뜨뜻한 국물하고 좋은 음식 드시며

편하게 보내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잘 있고요.

딸아이랑 남편이랑 다른 가족들도 모두 잘 지내요.

 

아버지 건강, 또 건강하세요.

옷 깃 잘 여미고, 몸 좀 무겁게 여겨지시더라도 많이 껴입고 다니시구요.

 

우리...길지 않은 시간 안에

다시 만나요. 아버지.

 

아버지 사랑해요.

 

그리스에서

아버지의 못난이 큰 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