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일 케이크는 내가 사야 하는
좀 서운한 그리스 문화
그리스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정신 없이 짐도 다 풀지 못했는데 제 생일이 되었습니다.
이 곳의 생일 문화가 어떤지 전혀 알 수 없었던 저는, 그냥 간단한 파이 종류로 간식거리만 준비하고 식구들끼리 같이 먹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으레 생일 케이크는 퇴근할 때 매니저 씨가 사 올 줄 알았는데, 매니저 씨는 물론 식구들도 작은 선물은 준비해
주었지만, 누구도 생일 케이크를 들도 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생일 케이크는 남편이나 아내, 부모님, 형제, 친구 누구라도 생일 당사자가 아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생일을 맞은 사람을 위해 준비해 주게 보편적인 문화였습니다. 한국에서 제 생일 때는 감사하게도 친한 친구들이나 부모님이 혹은 한국에 살던 매니저 씨(한국에 적응 해 살던 매니저 씨와 홈 타운 그리스에 사는 매니저 씨는 가끔 아주 다른 사람 같습니다.)까지도 생일 케이크를 사 주었었고, 저 역시 제 주변 사람들의 생일이 다가오면 그들을 위해 늘 케이크를 준비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친구의 생일엔 케이크가 두 개가 되기도 해서, 다양하게 즐기는 재미도 있었었지요.
그런 문화에서 삼십오 년을 넘게 살다가 이민을 왔는데, 그리스에서 부모 형제 친구와 떨어져 처음 맞는 생일에
케이크 한 쪽이 없었던 것입니다.
좀 어색해서 이 상황을 어떻게 하나 난감해 하고 있는데,(심지어 저는 케이크 가게들이 어디인지도 잘 모를 때였으니 말이에요.) 생일이라고 고맙게 들러준 친척 끼끼가 이 상황에 당황하는 제게 확인 사살을 하는 멘트를 날려 주셨습니다.
"올리브 나무, 왜 생일 케이크가 없어? 케이크 먹고 싶은데?"
"그, 그, 그러게. 왜 없을까?"
"하나 사지 그랬어?"
하나 사지 그랬어??? 라고??
안 그래도 서운한데, 하나 사지 그랬냐는 그녀의 말에 급 당황한 저는
"혼자 조용히 생일을 보내는 것도 아닌데, 가족이 있는 내가 케이크를 직접 사야 하는 거야?"
라고 살짝 볼멘 소리가 나와버렸습니다.
이상한 정적이 흐르고, 잠시 후 케이크 배달이 오는 소리가 들렸고, 매니저 씨가 그리스 케이크 전문점인 '스따니'라는 곳에서 생일 케이크를 배달 시켰던 것입니다.
저는 잠시 서운해했던 걸 미안해 하면서, "케이크 시켰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라고 멋 적게 웃고 상황은 종료가 되었습니다.
<실비아 라는 아이의 생일 축하 케이크와 스따니의 디저트들, 엘레나에게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하고 있네요~>
<케이크 전문점 스따니 로도스 매장 중 하나와 스따니의 케이크>
마지막 스따니 케이크의 문구가 참 좋네요. "항상 처음처럼, 혹은 아주 다르게!"
<그냥 그렇게 지루하게 살지는 말라는 소리로 들립니다^^>
그런데 그리스에서 그 후로 몇 년간 다른 사람들의 생일을 축하하면서, 그 날의 제 태도가 얼굴이 빨개지도록 부끄러워졌습니다.
한국과 다른 문화를 제가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스에서는 자기 생일 케이크는 자기가 사는 문화입니다.
마치 생일날 축하하러 온 손님들을 위해 밥을 한 턱 내는 것처럼, 그 날의 식사나 음료, 심지어 케이크 까지도
생일 당사자가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선물을 하나도 못 받는 상황, 그러니까 내 생일인지 누구도 몰랐던 상황에서 조차도, 직장에 케이크를 사서 들고 와 사람들에게 돌리며 오늘 내 생일인데 축하해줘 라며 자축 하는 사람들도 많고, 선물을 주지 않더라도 그렇게 "케이크를 얻어 먹으면서 누구도 선물을 못 준비했는데 케이크만 얻어 먹어서 어떻게 하지?"라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냥 생일을 함께 축하해 주는 것만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물론 정식으로 파티를 열고 초대장을 배포한 경우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축하해주러 오는 모든 사람이 파티에 걸 맞게 복장을 하고, 생일을 맞은 사람을 위해 정성껏 선물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역시 음식은 물론 생일 케이크는 본인이 준비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그리스의 생일 케이크 문화가 어쩐지 서운할 때가 많습니다. 꼭 제 생일이 아니더라도 이제껏 한국에서 가족의 생일에 케이크를 챙겨 오던 습관이라는 게 있어서인지 그냥 좀 서운합니다.
그래서 남편의 생일엔 파티를 위한 음식도 당연히 제가 준비를 하지만 케이크도 꼭 제가 준비를 합니다.
재미있는 건 그걸 지켜보신 시어머님께서 한국의 생일 케이크 문화를 이해하셨는지, 그 다음부터 감사하게도 제 생일에 케이크를 만들어 주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제 얼마 후면 딸아이의 생일이 돌아오고 가족들 생일 대부분이 그리스의 여름 시즌에 몰려 있습니다.
저는 선물도 준비하겠지만 아마도 올해도 한국의 정서대로 가족들을 위해 케이크를 준비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어리지 않은 나이에 이민을 오니, 바뀌어지지 않는 한국의 정서라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가족들이 자기 생일이라고 케이크를 직접 사 들고 집에 들어오는 모습을 볼 때, 어쩐지 처량한 느낌이 드는 것은
분명 저 혼자만의 느낌일 텐데 말이지요.^^
오늘,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으로 기분 좋은 한 주를 시작하시면 어떨까요?
그리스에서는 나를 축하하려고, 내 스스로 케이크를 사는 게 당연한 일이니
그리스인들처럼 나를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 조각 케이크라도 한 쪽 사 먹으며
날씨가 변덕스러운 3월, 새로 시작하는 월요일의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날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달콤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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