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기한 그리스 문화

아무때나 남의 집에서 자고 가는 불편한 그리스 문화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8. 12.

 

저희 집 정원에 모인 고모님들입니다. 오른쪽이 제가 좋아하는 오스트리아 고모님입니다.

 

 

며칠 전, 오스트리아에 사는 매니저 씨의 사촌 마사가 그리스에 남자친구를 만나러 왔습니다.

그들은 서로 장거리 연애 중이지요.

그런데 보통 그리스에 도착한 날에는 저희 집에 들르지 않는 마사가 어쩐 일인지 밤 늦게 저희 집에 찾아왔습니다.

사실 그날은 마사가 집에 들르지 않겠구나 싶어서 딸아이 친구 알리끼 엄마 마리아와 퇴근한 매니저 씨까지 함께 밖에서 차를 마시고 한국에 다녀온 이야기를 나누다가 늦게 집에 들어왔습니다.

집 앞에 주차를 하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정원 쪽에서 웅성웅성 소리가 나 담 사이로 들여다보니 어랏? 마사와 남자친구 스테르고스가 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희와 한 마당의 뒷집에 사시는 시부모님은 그들에게 이런 저런 먹을 것을 대접하고 계셨고, 저는 서둘러 마당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한바탕 뺨 키스로 반가움을 표현하고, 다시 자리에 앉자마자 저는 마사에게 제가 좋아하는 오스트리아 고모님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마사! 엘레니 고모님은 잘 계신 거야?"

그런데 이상하게 스테르고스가 저와 마사가 대화하는 모습을 비디오로 찍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뭐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헉! 저쪽에서 고모님이 툭 튀어 나오시는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반가움과 놀람에 벌떡 일어나서 고모님과 신나는 포옹을 했는데요.

워낙 평소에 저에게 신경 써주시는 고모님이셔서 예기지 않은 갑작스런 방문이었지만 반갑고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다른 고모님들이 집으로 등장하고 저의 정신 없는 손님맞이는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응응"아! 여기가 그리스구나! 이제야 그리스에 돌아온 것이 실감나는구나..."

싶었지요.^^

 

몇 년 만에 고향 그리스에 온 엘레니 고모님의 등장에 집안과 가문은 들썩이기 시작했는데요.

때마침 아테네에서 여름 휴가를 온 친척들까지 있어 우리는 고모님과 함께 로도스 시에서 한시간 반 가량 떨어진 곳에 사시는 친척집들까지 인사를 다녀야 했고, 어젠 'SIMI씨미'라는 왕복 여섯 시간 배를 타는 인근 섬까지 다녀오게 되었습니다.(이 좀 특별한 아테네 친척들 이야기와 씨미 섬 방문 이야기는 내일부터 다시 자세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씨미 섬은 수영하는 고양이가 있는 섬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배가 씨미 섬에 거의 도착했을 때, 훈남 훈녀 마사와 스테르고스 커플

 

그렇게 며칠을 정신 없이 보내는 중, 마사와 스테르고스는 당연히 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하는 눈치여서 할머님댁에 기거하는 고모님을 저희가 모시고 함께 다니게 되었는데요.

씨미 섬을 가기 전인 그저께 저녁에 친척들을 만나고 녹초가 되어 들어오는데 시어머님, 시아버님, 매니저 씨까지 모두 고모님께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엘레니! 집에서 자고 가. 마리아나 방에 여분의 침대가 있는 거 알지? 자고 가라고."

"그래 자고가요. 엘레니 고모. 자고 내일 함께 씨미로 가면 되겠네."

헉

'지, 지, 지금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우리집에 손님을 자고 가라고 제안들을 하는 거야?'

그리스에 와서 저희 집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고 없이 자고 갔습니다.

사촌 스타브로스가 얼마나 자주 자고 갔었는지는 이미 예전에 말씀 드린 적이 있었지요?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매니저 씨의 친구 미할리스도 한동안 시도 때도 없이 자고 갔습니다. 이들은 아랫층의 소파베드에서 정말 여러 날 자고 갔지요.

매니저 씨의 외할머님도 시아버님과 사이가 좋지 않은 날은 저희 집 소파베드를 이용해 주시곤 했습니다.

사실 친척들이 이렇게 자고 가는 것, 친구 미할리스를 제외하고는 다 좋습니다. (이 친구가 자고 가는 게 왜 싫은지는 다음에 다시 소개할게요.^^) 

그렇지만 하루 전에라도 예고를 하고 자고 가야 할 텐데, 이렇게 갑자기 자고 가라고 제안을 하는 건 아직도 저에겐 불편한 일입니다.

 

시아버님이나 매니저 씨야 손님이 자고 가도 본인들이 하는 일이 하나도 없으니 당연히 쉽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시어머님은 손님이 당신 집이 깨끗하지 않을 때 와서 자고 가도 상관이 없는 성격이십니다.

그런데 저는 좀 다릅니다. 손님이 그렇게 자고 가기 전엔 집을 더 깨끗하게 치우고 화장실 청소도 새롭게 하고, 침대 시트도 새것으로 갈고, 새 칫솔도 준비하고 냉장고에 먹을 것도 채워 놓고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이 편합니다.

게다가 저도 고모님이 주무시고 가시는 것은 정말 대환영입니다. 저희도 오스트리아에 갔을 때 고모님 댁에 일주일이나 머물렀으니까요.

그렇지만 이렇게 준비할 시간도 없이 자고 가라고 하는 일도 없이 생색들을 내는 시부모님과 매니저 씨를 보면서 정말 왜들 저럴까 싶었습니다. 시부모님이야 당신들 집에 재우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지요.

결국 저는 고모님께 아래 거실에서 십분 만 기다리시라고 말씀드리고 우다다닥 딸아이 방을 다시 청소하고 침대 시트를 새롭게 갈고, 주무실 때 갈아입을 옷, 내일 입으실 옷, 칫솔과 타월까지 모두 새 것으로 챙겨드리고, 2층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까지 십분 만에 끝내는 놀라운 기술을 선보여야 했습니다.

샤방

'올림픽에 이런 종목이 있다면 10점 만점에 기술점수 10점!을 받을 만큼 신속한 행동이구나!!'

 

평소 워낙 깔끔한 성격이신 고모님은 이런 제 모습을 이해하시며 상당히 미안해 하셨지만, 며칠 동안 길 가에 있는 할머님 집 앞에서 새벽마다 지나가는 버스와 오토바이 소리에 잠을 잘 못 주무신 터라 많이 고마워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언제 주무시고 가시라고 가족들이 고모님께 제안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저는 이 글을 쓴 후부터 폭풍 집안 대청소를 시작할 것입니다.

 

사실 아테네에 작년에 갑자기 며칠 있게 되었을 때에도 매니저 씨 친한 친구가 자기 집에 자고 가라고 재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완강히 호텔로 가자고 말한 것도,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예고 없이 와서 자고 가는 문화는 제가 손님 입장이어도 불편한 마음 때문이었답니다.

이렇게 아주 가까운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예고 없이 찾아와 자고 가는 것, 혹은 자고 가라고 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그리스 문화에 저는 언제쯤 적응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즐거운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관련글

2013/07/02 - [세계속의 한국] - 오스트리아 친척들이 한국인인 나를 기다리는 결정적 이유

2013/04/27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한국과는 좀 비슷한 vs 다른 그리스 시댁의 문화

2013/03/05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유럽 3개국 사람들과 한국인 1인의 엉뚱한 공통 화제

2013/01/06 - [재미있는 그리스어] - ‘그리스어’에도 ‘피 줄이 당긴다’는 표현이 있다니!

2013/04/27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팬티 차림으로 나를 맞이한 외국인 남편 친구들

2013/05/06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춤추고 먹다 지쳐 쓰러지는 그리스 명절 24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