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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내가 한국여자여서 제대로 오해한 그리스인 내 친구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7. 9.

 

 

제 글에 몇 번 등장한 그리스인 친구 마리아와의 이야기입니다.

딸아이의 친한 친구 알리끼의 엄마인 마리아는 로도스 국립종합병원 의사입니다.

그녀는 대부분의 의사들이 공부를 오래하다 결혼이 늦어지듯이, 공부를 끝내고 직장이 안정된 후 결혼해서,

저보다 한참 나이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늘 통통 튀는 에너지가 느껴질 만큼 언제나 명랑하고 부지런한 성격입니다.

일주일에 세 번은 야근을 하는 종합병원 업무에도 아이들 학원에, 가사일까지 척척 하는 대단한 엄마이지요.

아까 저녁에 내일 모처럼 쉬는 날이라며 낼 아침 아이들과 공원에서 보자고 전화가 왔는데, 평일 늦은 시간인데도

아이들을 데리고 연극을 보러 갔다고 하네요.

어제 밤새 야근하고 오늘 낮에 퇴근했는데 말이지요.

 

그런데 그런 활기찬 마리아가 저에 대해서,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대단히 오해한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

다.

처음 보는 엄마들이 함께 모이는 어떤 자리에서, 저에 대해 다른 엄마들에게 이렇게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올리브나무는 굉장히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에요. 저를 만나러 병원 저희 병동에 와 놓고,

제가 어딨냐고 묻는 게 쑥스러워서 저를 아는 체도 못하고 돌아갔다니까요. "

 아잉2

 

헉 이게 뭔 말이래?

 

 

저는 그 사건에 대해 그렇게 해석한 마리아의 발상이 너무 어이가 없으면서도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

지 몰라서 말문이 막혔답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답니다.

작년 여름에 매니저 씨의 외할머니께서 국립병원에 입원해 계셨을 때, 저는 할머님을 병간호 하느라고 병원을 하루

에도 몇 번씩 들락거렸는데요.

(기억나시나요? - 2013/05/04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항상 폭소를 부르는 나의 외국인 시할머니 )

할머님의 입원 사실에 대해 하교 길에 전해 들은 마리아는 제게,

 

"할머님 간호하러 오면 우리 병동에 꼭 들러서 나 보고 가. 커피라도 사 줄게~"

ㅎㅎㅎ

라고 얘기를 했던 것입니다.

 

알겠다고 대답한 저는 그날 저녁 할머님과 함께 있다가, 할머님께서 식사를 하시며 다른 입원 할머님들과 수다를

떠시며 즐거워하시는 사이, 잠시 병실을 비우고 마리아가 근무하는 병동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간호사분께 마리아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니 다른 의사들과 회진 중에 있었던 것입니다.

 

보통 한국에서 이런 경우라면, 업무를 방해하지 않고 돌아가든지 업무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든지 하는 것이 상식적

인 행동일 것입니다. 괜히 회진 중에 불러내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피해를 주는 일이 될 수 있으니까요.

저는 할머님을 홀로 두고 나왔기 때문에 병동에 더 있을 수가 없어서 그냥 회진하는 모습을 먼 발치에서 보고 할머

님의 병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피해를 안 주려고 한 행동에 대해 제가 수줍음이 많아 그렇다고 해석하다니요!

아니, 설사 제가 마리아의 말대로 수줍음이 많은 성격일지라도 사람을 찾는데 묻지도 못할 만큼 수줍다면 이제껏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 왔으면 이런 낯선 땅에서 어떻게 살아왔을까요!

저와 마리아는 일 년 이상 알고 지냈는데, 저에 대해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정말 이해가 잘 되질 않았습니다.

일 년 동안 한 달에 몇 번은 만나서 차 마시며 서로에 대해 얘길 나누곤 했었는데 말이지요.

제가 한국에서 어떤 일을 했었는지도 알고, 어떤 취미생활을 했었는지도 알고, 어떤 여행을 다녔는지도 아는

그녀인데 왜 저를 그렇게 수줍은 사람으로 평가했던 걸까요?

이유는 이랬습니다.

마리아에게는 제가 한국여자여서, 동양인이니까 수줍음이 많을 거라는 나름의 선입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보통의 그리스여자들처럼 자기 주장을 어떻게든 하려고 큰 소리치는 성격과는 많이 달라 보였던 모양입니

다.

저는 마리아에게 한국에서는 친구가 근무 중인데 직장을 찾아갔을 때, 업무가 한참 바쁘면 중간에 억지로 만나려

하는 것이 업무에 방해 되는 상당히 실례가 되는 행동이라고 설명해야 했습니다.

그녀는 깜짝 놀라면서 "그런 거였어?" 이러는 게 아니겠어요.

그녀가 놀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리스에서는 업무에 방해가 되든 말든 일단 나 여기 있소! 하고 인사를 하며 업무

중인 사람에게 말을 붙인다고 해서 특별히 문제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업무 중인 사람이 "나 바쁘니까 말 시키지 말고 기다려!" 라고 말한다면 또 쿨하게 "그래? 그럼 기다리지."

러고 넉살 좋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 그리스 문화에서 저희 행동은 일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배려가 아니라 수줍게 보였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 수줍은 이유로 한국인이어서 수줍은 것이다, 라는 결론이 난 것이고요.

안습

저는 이런 문화적 차이에 대해서 여러 각도로 설명을 했지만, 그녀는 선입견인 한국인(동양인)여자=수줍다 라는

틀을 깨지 않고 제 얘길 들으니, 제 얘기가 제대로 이해가 되질 않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이 사건과 상관 없이, 말수가 적은 것(글로는 이렇게 수다를 떠는데 실제는 말 수가 적습니다.), 필요하지

않을 때 나서지 않는 것, 잘난 척 과장하는 거 싫어하는 것. 그것은 제 성격인 것이지 모든 한국여성들이 그런 것도

아니며, 명랑하고 신나는 성격의 한국여성들도 많으니 그런 선입견을 갖지 않는 게 좋다고 얘기해도 이해를 못

하는 눈치였습니다.

 

이래 저래 오해가 생겨서, 마리아가 이제껏 만나본 유일한 동양인 친구이자 한국인 친구인 제가, 마리아의 선입견

을 확인시켜 준 꼴이 되어버려서 참 찝찝했습니다.

말로는 이해를 못 한다고, 제가 한국에서 처럼 수백 명 앞에서 강의를 하는 것을 보여줄 수도 없고, 여기엔 오를

만한 암벽도 없는데, 죽어라 암벽을 기어올라 정상에서 막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

다. 그렇다고 위에 설명한 대로, 수줍어 보이지 않기 위해서 과장된 행동을 억지로 하는 것은 성격상 더 싫었습니

다.

도대체 그녀의 한국인에 대한 선입견을 앞으로 어떻게 깨 줘야 하나 정말로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마리아의 한국인 여자에 대한 선입견은, 지난 겨울 엉뚱한 모임에서 깨졌는데요.

 

마리아, 그리고 마리아의 아테네 동료 의사들과 독일인 친구들입니다.

 

저는 이 낯선 모임에 왜 가게 된 걸까요? 그리고 어떻게 마리아의 선입견은 깨졌을까요?

 

 

그 이야긴 내일 다시 "한국여자여서 받은 오해, 한국어로 해결되다." 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즐거운 화요일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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