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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한국

오스트리아 친척들이 한국인인 나를 기다리는 결정적 이유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7. 2.

 

 

 

매니저 씨의 둘째 고모님은 오스트리아인인 고모부님과 결혼해 삼십 년 넘게 비엔나 근교에 살고 계십니다.

이제는 고국인 그리스에 사셨던 날보다 오스트리아에 사신 세월이 더 길어지신 고모님은 그래도 격년에 한 번,

그리스로 휴가를 오시곤 합니다.

몇 년 전 겨울 고모님의 초청으로 매니저 씨와 딸아이와 오스트리아 방문했었는데, 고모님은 정말 친절하게 대해

주셨고 고모님 주변의 오스트리아인 친구분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그리스와 많이 다른 오스

트리아인들의 생활 문화에 대해 신기하게 느꼈던 시간이었습니다.

 

 

    고모님 댁에서-오스트리아 고모님과 딸아이                          오스트리아 비엔나 오페라하우스 앞에서의 딸아이

 

 

오늘 저와 매니저 씨에게 인터넷 메신저로 안부 전화를 하신 고모님은 저희더러 갑자기 올 겨울에 오스트리아에

다시 한번 다녀갈 수 있겠냐고 물으셨습니다.

고모님의 딸인 마사가 지금 매니저 씨 친구인 스떼르고스와 장거리 연애 중이라, 마사가 그리스에 들를 때마다

제가 마사를 도와 주는 게 고맙다며 굳이 와서 좀 쉬다 갔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소에도 고모님은 제가 매니저 씨 때문에 간혹 속상한 일이 생길 때,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올리브나무야. 언제든 힘들면 우리집에 와서 쉬다 가렴. 내가 누구보다 네 심정을 잘 이해하거든.

나도 오스트리아에 와서 아는 그리스인도 없이 참 많이 고생을 했단다.

너는 오죽하겠니. 언제든 오렴. 우리집은 열려 있어."

 

이런 말씀이 빈 말일 수도 있겠지만, 또 그렇게 말씀하신다 해서 제가 언제든 갈 수도 없겠지만, 그런 말씀 한 마디

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은 좀 더 구체적으로 겨울에 다녀갈 수 있겠냐고 물으셨고, 저는 곧 한국에도 다니러 가기 때문에

겨울에 어떤 상황이 될 지 모르겠다고 말씀 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비엔나의 겨울 풍경과 오스트리아

들의 낭만적인 연말 풍습이 떠오르며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아무리 그리스에서 두 시간 반 거리의

가까운 나라라 해도, 일도 해야하고 현실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고모님."

 

이라고 말하는데, 옆에서 촐싹거리며 매니저 씨가 "올리브나무 안 되면 나 혼자라도 갈게요. 고모." 라고 하는

말에(매니저 씨는 금연을 시작해 요새 상당히 예민하답니다--;)

 

"우리는 널 원하진 않는다. 우리는 올리브나무 쟤를 원해!"라고 못 밖으셨습니다.

 

"아니, 왜 저를 원하세요? 고모님?" 제가 웃으며 묻자, 고모님은 결정적 이유를 말씀하셨는데요.

??

 

"올리브나무야. 우리는 몇 해 전 겨울 네가 여기 와서 해 준 한국 음식을 잊을 수가 없구나.

네가 레시피를 알려줘서 몇 번을 시도해 봤지만 내가 하면 그 맛이 안나는 걸.

알지? 우리 아들 베르니가 얼마나 그 때 접시 바닥까지 핥아가면서 싹싹 먹어 치웠는지.

 베르니는 지금도 한번 씩 집에 들를 때마다

왜 올리브나무는 오스트리아에 다시 안 오는 거냐고 한탄을 하더라구."

오키

 

아이구..

엉엉

저는 그 말을 듣고 참 감사했습니다.

당시 저는 대접만 받기가 너무 미안해서 (특히 오스트리아식 정찬은 정말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테이블 세팅을

하기 때문에), 어느 날 고모님 댁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봐다가 아쉬운 대로 재료를 이용해 한국음식 몇 가지를 만들

었었습니다.

 

 

고모님 댁 테이블 세팅과 저희를 초대했던 고모님 친구분 댁 테이블 세팅

 

메뉴는 갖 가지 종류(참치, 야채, 소고기, 치즈)의 김밥과 새우야채라볶기, 한국식만두 였는데요.

김밥 종류가 많아서인지 한상 차려 놓으니 별 것 아닌 음식들이었는데도 푸짐해 보였고, 나름 세팅을 잘 하니

그럴 듯 해 보였는지 오스트리아 가족들은 정말 맛있게 드셨었습니다.

 

제가 이런 메뉴를 선정했던 것은 일반 오스트리아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가 한정적이었는데다가 (다행히 김밥

용 김과 라면 사리는 그리스에도 조금 들어오는 태국 브랜드가 거기에도 있어서 아쉬운대로 대체했습니다.), 계속

연말 만찬 메뉴로 고기 요리를 먹었던지라 육류를 좀 피하면서, 매운 것을 잘 먹는 오스트리아인들에게 맞는 음식

을 나름 찾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오스트리아식 연말 만찬 메뉴 중 하나인 거위구이를 자르고 있는 매니저 씨

 

고모님은 오늘 통화에서 어떤 한국 음식을 해도 좋으니 제발 다시 만들어 달라며 '우리가 한국음식을 기다리고

다'고 부탁하셨고, 저는 만약 올 겨울에 가게 된다면 당연히 만들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정말 올 겨울에 오스트리아를 가게 된다면, 작년 친구들과 휴가를 와서 한국음식을 배불리 먹고 간 사촌 베르니에

게 해줬던 메뉴들과 사촌 마사가 올 때마다 정신 놓고 먹는 잡채도 재료를 미리 가져가서 해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사촌 베르니와 마사 남매

 

 

이렇게 한국음식이 그리스 뿐만 아니라 그리스보다는 기후가 더 한국과 비슷한 오스트리아에까지 역시 어필할 수

있다는 사실이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게다가 사촌 베르니는 제가 한국 음식을 해 주었던 이후로

그 전에 아시안 식당에서 먹으며 일본 음식이라고 오해했던 김밥이 한국음식임을 알게 되어, 비엔나의 한국음식을

하는 식당들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고 하니 더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부족한 솜씨의 제가 한국음식을 만들어도 이렇게 좋아들 하시니 언젠가 한국에 갈 수 있다면 눈이 휘둥그레져서

맛있는 한국음식에 좋아할 오스트리아 가족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게 됩니다.

 

 

여러분 맛있는 거 많이 드시는 화요일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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