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편견을 깨준
딸아이 친구 조이와 세바
지난 토요일 딸아이 생일파티에 모든 아이들 중 제일 먼저 도착한 아이가 조이였고, 그 다음이 세바였습니다.
(딸아이와 과일을 같이 나누어 먹는 이 알바니아인 아이들을 기억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이 아이들에게 생일 초대장을 보내면서도, 약간의 우려를 떨쳐낼 수 없었는데요.
일반적인 그리스인들은 겉으론 아닌 척 하면서, 그리스인들끼리 모였을 때는 알바니아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을 서슴지 않고 하기 때문입니다.
"알바니아인들은 불법체류자들로, 우리 일자리까지 뺏고, 지저분하고,
그리스어를 잘 못 배우고, 손버릇이 좋지 않아 남의 물건도 잘 훔친다."
라는 게 일반적인 그리스인들이 보는 알바니아인들에 대한 편견입니다.
다시 말해, 수 많은 나라의 그리스이민자 중에 그리스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이민자가 바로 알바니아인인 것입니다.
Albania 알바니아인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시각 알바니아는 그리스 바로 위에 위치한 나라이지만 유럽연합에 속한 국가가 아닙니다. 저소득국가여서 생계를 위해 그리스나 인근 더 형편이 나은 국가로 이주하는 이민자들이 많습니다. 알바니아 외에도 그리스 주변 좀 더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국가인 루마니아 불가리아 러시아 등의 동유럽 사람들이 여름 시즌 성수기에 쉽게 파트 타임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그리스로 생계를 위해 이주해 오는 일은 흔한 일이지만, 그리스인들은 이제까지의 일련의 범죄사건들로 인해 알바니아인들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편견이 강한 그리스인들은, 일단 알바니아인이라고 하면 같이 밥을 먹거나 어떤 일이든 같이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
그런 그리스인들의 시각과 편견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터라, 생일 파티에 초대한 이 알바니아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를, 다른 초대된 그리스인들이 불편한 얼굴로 쳐다 보게 될까 봐, 그리고 그것을 느낀 조이나 세바의 부모들이
그 자리가 가시방석일까 봐, 조금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세바는 처음엔 토요일 오후에도 일하러 가신 바쁜 부모님 대신에 고등학생 사촌언니와 함께 왔습니다.
조이는 아빠와 함께 왔었지만, 조이의 아빠는 집에 어린 조이의 남동생과 오빠가 기다리고 있어서 가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두어 시간 후에 데리러 오면 되겠냐고 물었고, 저는 혹시 몰라, 처음 본 조이 아빠의 전화번호를 받았습
니다.
아이들과 부모들이 모두 파티에 오고 가까운 가족들도 참석했고 생일 파티는 재미있게 잘 치러졌습니다.
잠시 딸아이 생일 파티 사진을 같이 보실래요?
밖에서 했는데도 일단 인원이 작년보다 더 적었고, 답례품 선물도 직접만들고, 케이크도 kg을 적게 맞추어서
(그리스의 아이들 생일 케이크는 먼저 디자인을 고른 후, 생일 초대 인원에 맞추어 무게를 정하고 케이크 속 내용을 초콜릿, 바닐라 어떤 것이든 원하는 대로 고르는 수순으로 맞춥니다. 적어도 생일 3~4일 전에는 맞추어야 한답니다.)
작년보다 적은 비용을 들어 다행이었고, 일단 힘이 덜 들었어요.^^;
참고 :
2013/04/03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아이 생일파티 준비하다 허리 휘는 그리스 문화
2013/04/05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그리스 초등학교에서 과일상자를 나누어 준 특별한 이유
다시 알바니아인에 대한 편견을 깨준 아이들 대한 본론으로 돌아가서요.
아이들과 어른들이 한참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아무리 같이 식사를 하자고 불러도 오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 있던
세바의 사촌언니는 아이들이 실컷 놀고 식사를 하는 시간이 되자, 말도 없이 홀연히 사라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저는 세바에게, 언니 어디갔니? 라고 물었고
세바는 대답했습니다.
"언니는 아빠가 일 끝나고 여기 오기로 한 시간이 다 되어서, 아마 집에 갔을 거에요. "
"아니, 왜 말도 없이 갔을까?"
"아휴. 언니는 열 여덟 살이에요. 아시죠? 열 여덟 살은 수줍음이 많은 사춘기에요."
저는 귀여운 세바의 대답에 완전 빵 터져서 깔깔거리고 웃었습니다.
그런데 세바는 아이들이 다 먹고 놀기 위해 자리를 뜬 테이블에 남아서
제가 테이블에 놓여있던 아이들 음식상자를 좀 정리하려는데,
정말 익숙한 손놀림으로 척척 돕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손을 멈추고 그 아이를 관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집에서 얼마나 어른 일을 도와주는 게 몸에 벤 아이면, 이렇게 척척 할 수 있을까!'
당연히 부모가 집에 없는 시간이 많아 바쁘고 그래서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일들이 많기는 하겠지만,
그래서 그렇게 능숙하게 어른처럼 일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저는 그 아이의 그런 태도에서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아이에게 식사 후 먹은 접시를 치운다든지, 샤워를 하고 옷을 세탁바구니에 넣는 등 자잘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훈련하는 편이지만, 이 아이를 보니, 한참 어리광 부리는 나이에 그렇게 어른 일을 잘 하는
게 좀 안쓰러운 부분이 있긴 해도 즐겁게 일을 돕고 밝고 구김이 없는 성격인 것으로 보아
부모가 참 잘 키웠구나 싶어, 저 역시 아이를 좀 더 독립적으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매니저 씨가 딸 아이에게 뭐 가져오라고 심부름을 시키곤 할 때,
왜 공부하는 애한테 시키냐고 몇 번인가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게 아니면 어른을 돕고 집안의 소소한 일들을 하는 훈련을 시켜야
사회에서도 강하게 살아남는다고 말했던 매니저 씨의 말이 생각이 나며, (매니저씨는 본인 하기 싫은 일을 어머님
께 시키기도 하고 집안일을 절대 안 도와주지만, 집안의 여러가지를 고치고, 세차, 물건 옮기기 등의 일들을 아버님
으로 부터 어릴 때부터 훈련 받았다고 하더군요.)
정말 세바 이 아이는 어디에 가도 사랑 받으며 강인하게 살겠구나 싶었습니다.
잠시 후 아이들은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를 먹으려고 다시 테이블에 앉았는데,
조이가 갑자기 제게 물었습니다. "저기요. 이 많은 것의 돈을 올리브나무 씨께서 내시는 건가요?"
(존댓말 사용이 많은 그리스에서는 아이들이 가족이 아닌 어른을 부를 때, '선생님'이나 '씨'에 해당하는 호칭을 반드시 붙이도록 가르칩니다. 그리스어로는 '끼리아 올리브나무' 가 됩니다.)
조이는 보통 그리스인들이 생각한는 알바니아인들과 달리, 정중하게 어른에게 존대말을 쓰고 매너를 지킬 줄
아는 아이였습니다.
"그렇지. 그건 왜 물어 보는데? 조이"
"우와...이 많은 걸 다요? 저는 이렇게 끝내주는 생일 파티는 처음 봐요."
처음 본다고? 이걸 처음 본다면 조이는 일반 그리스인들의 생일 파티에 초대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말이 됩니다.
저는 아이가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게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잠깐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응. 조이야. 내가 이 돈을 내는 건 맞는데, 그 대신 우리는 이번에 딸아이 생일 선물을 안 해주기로 했어.
이렇게 큰 돈을 지출했는데, 이게 생일 선물 대신인거야."
이건 사실이었고 딸아이와 미리 얘기한 사항이었습니다. 생일 선물 사줄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매년 이렇게 크게
파티를 하고 생일 선물까지 해주다 보면, 딸아이가 많은 그리스 마마 걸, 마마 보이들 처럼 경제적 개념이 희미해져
돈에 대해 쉽게 생각하게 될 수 있어 매니저 씨와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만약 선물을 원한다면 파티를
하지 말자고 말했었고, 아이는 선물보다 파티를 선택했습니다.
어떻든 조이는 이 파티 가격이 얼마인지 모르니, 제 대답에 상당히 수긍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세바의 아빠가 오셨는데, 저 멀리 우리가 앉은 자리에서 20m는 떨어져 있는 곳에,
그것도 나무 아래 있는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세바의 아빠에게 다가가서 이리오시라고 와서 차 종류를 주문해 마시고 계시면, 음식이 금방 나올 거라고
말했습니다.
마지 못해 식사 자리에 합류한 세바 아빠는 반 아이들 엄마 아빠들과 겨우 대화를 하는 눈치였고, 커피만 마시고
음식을 포장을 부탁해 집에 가져간다고 했습니다. (아마 집에 있는 다른 아이들이 밟힌 모양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생일에서 조이와 세바에게 가장 놀랐던 것은,
선물을 만들어 들고 오겠다는 이 아이들이 둘 다 선물을 사서 들고 왔던 것입니다.
선물을 받고 괜히 초대해 아이들의 부모에게 부담을 준건가 잠시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아이들을 데리러 온
그 부모들의 밝은 얼굴과 아이들의 좋아하는 모습을 봤을 때, 자신의 아이들이 기죽는 게 싫어서
처음으로 초대받은 그리스식 생일 파티에 선물을 들려 보낸 부모의 마음이 헤아려 지는 듯 했습니다.
어떻든 이 파티에서 누구도 제게 왜 알바니아인을 초대 했냐고 묻지 않은 건,
일단 파티 초대자인 저부터도 이민자이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매너나 아이들의 밝고 건강하고 성품 좋은 모습이, 그 자리의 그리스인들의 알바니아인들에 대한
편견을 깨 준 것임에 틀림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 이후 학교에서 세바의 아빠를 마주칠 때 마다, 그 아빠가 학부모들 사이에 섞이지 못하고 혼자 아이를
기다리던 그 전보다 서로 웃으며 인사할 수 있어서 기쁘고,
그리스인 아이들과도 잘 지내지만 세바, 조이와도 잘 지내고 있는 딸아이도 기특해 보입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는데
국적과 외모가 다르다고, 그들이 나를 좀 손해 보게 했다고
(같은 나라 국민 중에도 나를 손해 보게 만드는 사람들이 없는 게 아니므로)
편견을 갖고 그 나라 사람 전체를 싸 잡아 비판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
혹은 앞으로 성인이 되어 더 강대국에서 살게 되더라도 기죽지 않고 당당한
우리 아이들이 그런 건강한 아이들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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