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재미있는 그리스어

그리스에 있는 '최봉재'라는 간판에 흥분한 딸아이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4. 30.

그리스에 있는 '최봉재'라는 간판에

흥분한 딸아이

 

 




 

 

한 낮 온도 섭씨 35도로 본격적 더위가 시작된 그리스입니다.

그래서 작년 여름 옷이 다 작아진 딸아이의 옷을 좀 사려고 어제 저녁 무렵 딸아이와 함께 시내를 여기저기 돌아다

니며, 아동복을 세일하는 가게들을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번에도 길을 걷다가 어떤 간판을 보고 흥분해서 뭐라뭐라 했던 딸아이가, 그때는 바빠서 제가 무시하

고 빨리 집에 가자고 해서 할 말을 못했다며, 오늘은 작정한 듯 제 팔을 붙잡고 간판을 보여주며 이렇게 소리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저기! 한글로 최봉재라고 써있어!"


??오잉?


저는 그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 딸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윗 쪽을 쳐다봤습니다.




" 최봉재?

  글쎄다. 딸. 최봉재라고 딱히 단정짓기에는 좀 너무 흘려쓰지 않았니?

  그래고 한국인도 없는 이 곳에 최봉재라는 이름으로 저런 간판을 냈을리가 없잖니..."

안습



"아니야. 엄마. 암만 봐도 최봉재잖아. 흘려 썼지만 최봉재야.

분명 최봉재라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회사나 가게인것 같은데

우리 들어가보자!"

오케이2


"얘. 바쁜데 나중에 확인해보자. 응???"



이라고 대충 상황을 얼버무렸지만, 사실 집에 가서 딸아이가 최봉재라고 본 글씨 아래 써 있는 웹페이지 주소로

들어가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에 와서 매니저 씨와 웹페이지 주소를 들어가봤더니...

최봉재가 아니고 저 곳은 웹 디자인을 해주는 회사였습니다. 그리고 저 간판의 주소에 쓰여있 Kyourh 그리스어

로 그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의 인데, 그리스식 표기로는 ΚΓΟΥΡΗ Κγουρη를 흘려 싸인처럼 써 둔 것이었습니다.


그게 딸아이의 눈에는 최봉재로 보였던 것입니다.


평소 그리스어도 잘 읽고 쓰고, 받아쓰기도 잘 틀리지 않는 아이인데, 왜 저 간판만은 최봉재라고 읽게 되었는지

그게 못내 궁금했지만, 차마 최봉재 씨가 운영하는 게 아니라고 사실대로 말해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쩐지 한국인이 너무 그리워서 그랬나 짠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딸아이는 작년에 1년 만에 만났던 한국인이 하루만에 로도스를 떠날 때, 폭풍 눈물을 흘렸던 전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샤워를 마친 딸아이가 몸에 수건을 둘둘말고 나와서는 제게 다시 물었습니다.


"엄마? 최봉재 찾아봤어?"

"응...찾아봤는데, 그게 웹 디자인 회사래..."

저는 좀 망설이며 딸아이 표정을 살피며 대답을 해주었는데요.


뜻밖에도 딸아이는 이렇게 답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앗싸~! 디자인 회사면, 내가 뭐 아르바이트 할 것 없나 물어봐야겠네~

나 뭐든 만들고 그리는 거 좋아하니까

청소라도 시켜주지 않을까? "

오키

헉..그..그게 뭔 말이야? 너 아르바이트 하기엔 너무 어려...



"아니, 지금 한다는 게 아니고 열 두살 넘으면 아르바이트 할 수 있잖아.

그 때 최봉재 씨, 아니 그 그리스인 사장님 찾아간다구.

아하하하. 잘 됐다!"

샤방



딸아이는 신이나서 잠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쏙 들어갔고

제 방에 남겨진 저는 멍하니

"그래 사람들이 왜 쟤보고 4차원이라고 하는지 또 확인하는 구나.."

싶어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국인이 아니라고 실망하는 것보다는 백번 났다는 생각에 너털 웃음을 웃었답니다.

평소에 밖에선 수줍음이 많으면서, 실은 엉뚱 소녀인 딸아이 덕에 이제 최봉재라는 이름은 절대 못 잊지 싶습니다.


여러분 좋은 하루되세요~

좋은하루






* 내일은 그리스 로도스의 유네스코 지정 문화 유산인 "빨리아 뽈리"에 대해 드디어 소개하겠습니다.

  지난 토요일 찍은 따끈한 사진과 함께 2,400년 동안의 역사 속의 현장으로 함께 떠나보실 분, 내일을 기대해 주세요~*^^*

 



관련글

2013/03/02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딸아이가 새 학년이 되며 심리상담을 원한 기막힌 이유

2013/02/02 - [재미있는 그리스어] - 3개국어를 알아들어야 하는 딸아이의 유머돋는 한국어 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