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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그리스에서는 방학할 때 개학일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요!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9. 9.

 

 

 

 

 

9월에 새 학년을 시작하는 가을 입학제인 그리스에서 딸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뒤 1년을 보내고 첫 여름 방학을 맞았을 때입니다.

기후 특성상 겨울 방학이 2주뿐이고 여름 방학이 석 달 정도 되기에, 6월 중순에 여름 방학이 시작될 때 언제 이 긴 방학이 끝나고 정확히 새 학년이 시작하는지 알고 싶은 것은 부모로서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대략 9월 10일에서 15일 사이에 시작할 거에요." 라는 대답만 했을 뿐, 정확히 언제 방학이 끝나고 2학년이 시작하는지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방학을 할 때 개학일을 정확하게 공지하거나 새 학년이 언제 시작하는지 확실한 날짜를 미리 알 수 있는 한국에서 살다 온 저로서는, 이런 그리스 시스템이 답답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다른 그리스 엄마들은 저처럼 개학일을 모른다는 것에 대해 답답해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는데요.

아니, 엄마들뿐만 아니라 주변 그리스인 누구도 개학일을 몰라 답답해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왜 정확한 개학일이 궁금하지 않나요?"는 저의 질문에 그들의 한결 같은 대답은 이랬습니다.

"8월 말쯤 되면 교육부에서 뉴스부터 신문, 인터넷 등 모든 매체를 통해 정확한 개학일을 공지할 건데 뭘 궁금해 할 필요가 있나요? 매년 시작하는 날짜가 달라지긴 해도 얼추 비슷한 날짜에 시작하니 그렇구나 생각하며 기다리면 될 걸요."

 

그러니까 교육부에서도 이 날짜를 미리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무리 그리스 공무원 체계가 좀 늦고 비합리적이라고는 하나 분명 그리스 교육부에도 1년 운영계획안이란 것이 있을 텐데, 어떻게 6월에 시작한 방학의 개학일을 8월이나 되어야 결정할 수가 있는지 그게 참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을 그리스에 살며 이런 저런 상황들을 살펴보면서, 저는 비로소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 그리스 교육부 장관인 안드레아스 로베르도스Ανδρέας Λοβέρδος

"2014년 새학년(학교들)은 9월 11월문제 없이χωρίς προβλήματα 열릴 수 있게 되었다."

라고 공립학교들개학 날짜를 발표했습니다.

 

도대체 문제 없이 학교들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은 어떤 뜻인 걸까요?

 

 

바로 이것이 그리스에서 방학 시작 때 개학일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 선생님들의 잦은 파업

그리스 역시 공립학교의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방학을 한 이후에도 학년을 마무리하기 위해 일정 기간을 출근을 더 하고, 개학 전에 아이들 보다 2주 정도 먼저 출근을 시작하는데요.

이 개학 전에 먼저 출근한 선생님들이 새 학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교나 교육부에 교육 환경과 관련해 요구 사항이 생길 수 있고 이런 경우 '파업'을 감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그리스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들의 파업 문화가 자연스러운 그리스에서는 파업 자체가 근로 환경을 개선하길 원한다는 자신의 목소리와 같은 역할을 하기에, 필요에 따라 소수든 다수든 파업을 하는 선생님들은 늘 존재합니다.

그런데 만약 새 학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국적으로 대규모의 파업이 진행되게 된다면 학교를 제 때에 시작할 수가 없게 되므로 시작 날짜가 바뀔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경제위기로 파업이 극에 달했던 2011년에 비해 현재는 교원공무원들의 파업 빈도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나마 선생님들의 파업 덕에 늑장이었던 교육부 행정이(교과서 배포나 선생님 충원 등) 빠르게 진행되는 경우도 보았기 때문에, 아무리 EU 요구 때문에 그리스 노동자들의 파업이 전보다는 힘을 잃었다고는 해도 선생님들의 파업은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요소란 생각이 듭니다.

 

 

    2. 부족한 선생님의 수

원래도 그리스에서는 선생님들이 다른 학교로 배정될 때 행정적인 문제로 이미 새 학년이 시작되었는데 뒤 늦게 전근 명령이 나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그리스가 경제 위기를 맞은 이후로는 EU와 구제금융의 요구대로, 정부에서는 교원 공무원에 대해 임금삭감과 대대적인 정리해고를 했고 최근엔 임용고시 자체를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육학을 이수한 대학생들은 다수가 실업자가 되거나 다른 진로를 찾아 나섰고 반면 그리스 전국 공립학교에는 교사 부족 현상이 일어나고야 말았는데요.

특히 예체능 과목의 경우 교사 부족 현상이 더 심해져서, 학생 수가 적은 학교의 학생들은 아예 일부 과목 선생님 없이 1년을 나기도 했습니다.

또한 제2외국어 교과목 선생님들도 현저히 부족하여, 매년 다른 지역의 학교로 배정되는 해프닝들을 겪고 있습니다. 제 주변의 몇몇 선생님들의 경우 3년 째 해마다 이사를 해야 할 만큼 1년에 한번씩 전혀 다른 지역으로 배정이 되어서 자녀들과 상당히 고생을 해야 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턱없이 부족한 수의 선생님들로 전국에서 동시에 새 학년을 꾸리려니, 안 그래도 행정이 늦은 그리스 교육부에서는 방학을 할 때 개학 날짜를 미리 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적재적소에 선생님들을 배치해야 하는데 그게 결코 쉬울 수 없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런 저런 그리스의 현상들을 지켜보다 보니, 개학 날짜를 미리 정확히 알 수 없는 그리스 상황을 이제는 저도 이해하게 되었고 8월 말쯤 되어서 매체에서 발표되는 그리스 개학 날짜를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리스에서는 대개 월요일에 개학을 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개학 며칠 후 또 주말을 맞이해서 아이들 역시 개학 스트레스가 덜 한 편인데요.

올해도 딸아이는 석 달의 긴 여름 방학을 마치고 이번 주 목요일에 4학년을 시작하기 때문에 금요일 하루 정규 수업을 하면 또 주말이라 그나마 편안하게 개학을 맞이하는 듯 하네요.

 

 

 

 

한국에서는 이제 추석 연휴와 대체 휴일 등이 마무리 되며 출근하시는 분들도 계실 듯 한데요.

언제 어느 곳에서든 쉼 끝에 해야 하는 일들은 조금은 스트레스를 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계신 여러분이나 전 세계 각 곳에 계신 분들 모두, 분명 다시 순조롭게 업무에 복귀하실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응원하고 싶습니다.

마치 마리아나의 새로운 4학년을 응원하듯이 말이지요.

 

 

여러분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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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기로 했던 답글들과 제 근황들은 조만간 또 쓰도록 할게요. 이번 글은 너무 오랜만이라 많이 죄송한데요.

  기다려 주셔서 참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