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비한 로도스

그리스 마리아나의 특별한 여름 관광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8. 7.

 

 

 

 

마리아나는 요즘 자주 심각합니다. 키와 덩치가 자라가며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고, 어른들의 일들도 배우며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올 여름 이 아이가 배워서 혼자 할수 있게 된 일은 이렇습니다.

청소기 돌리기, 라면 끓이기, 유리창 청소, 자기 방 침대 시트 교체하기, 자기 방 쓸고 닦기, 수영복 빨아 널기, 사무실 물건 품목별로 정리하기 등등입니다.

 

그리스 아이들이 일찍부터 부모의 일을 돕는 것을 배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 역시 아이가 자립적인 힘을 기르는 게 좋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저런 일들을 가르쳐보았는데 생각보다 곧잘 해내서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몸이 자라며 생각도 많아진 마리아나는 그간 묻지 않았던 질문들도 하게 되었고, 어떤 질문들은 답변을 해 주어도 뭔가 속 시원하지 않은 듯 입을 쭉 내밀고 심란한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짜증도 조금씩 늘기 시작했고요.

키가 144cm정도로 훌쩍 크더니 이 아이가 사춘기의 전 단계를 좀 일찍 밟기 시작한 걸까 싶기도 해서 바쁘더라도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며 어떤 이상한 질문을 하더라도 최대한 친절하게 대답해 주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어떤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내리는 방식이 참 마리아나 다운 것들이라서 저 혼자 몰래 웃기도 하는데요.

 

얼마 전 중국 시진핑 주석이 로도스로 여름휴가를 왔을 때 그리스 총리까지 로도스를 방문해 대대적인 환영을 한 것에 대해 뭔가 불만이 가득했던 마리아나는 이런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흥! 중국과 그리스가 점점 친해지려고 그러는구나.

큰 배도 서로 만들어 팔기로 하더니.

(어디서 들은 이야긴 있었던 모양입니다.^^;;)

한국하고 좀 친해져야지. 그리스는 왜 중국하고만 친해지고 그러지.

한국하고도 친해질 수 있을 텐데. 흥! 흥! 흥!"

시러

 

'마리아나...네가 그렇게 흥흥 거릴 때 보면 꼭 복수를 다짐하는 신파극 여주인공 같아

정말 웃긴데, 차마 대 놓곤 말 할 수 없구나.'

미안2

 

또 며칠 전엔 드라마 속 연인들이 좀 진하게 키스를 하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그리스 TV에서는 좀 더 흔한 장면이니까요.) 배우들의 <실제 연인도 아닌데 극에서 진하게 키스를 하는 이유>를 혼자서 고민하다가,

 

"엄마. 배우들 입안에 맛있는 거라도 있는 거야?

그게 아닌데 왜 저렇게 뽀뽀를 해? (잠시 정적) 아! 이유를 알겠다.

배우들은 늘 다이어트를 하니까 배가 많이 고프잖아.

그러니까 저렇게 뭐를 먹는 것처럼 뽀뽀를 하는 건가 봐.

연기를 하면서 사실은 끝나고 바비큐 먹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이제 이유를 알겠어!!!"

샤방

 

라는 다소 엉뚱한? 결론을 혼자 내리기도 해서, 저 아이가 생각은 많고 심란하지만 엉뚱함이 사라진 것은 아니구나 싶어 웃음이 터지곤 했습니다.^^

 

 

 

어떻든 저는 마리아나가 긴 방학 동안 부모가 바쁘다고 변변한 여행도 못 하고 매일 지루하게 생활하다 보니 심각하게 생각이 더 많아지는 듯해서, 어떻게 하면 좀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늘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을 하는 녀석이라 며칠이라도 휴가를 가고 싶어도 현재 저희로서는 시간이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어르고 달래기만 하던 중, 제게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마리아나! 우리 로도스 안에서 관광객처럼 지내보면 어떨까?

어차피 여긴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오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관광지잖니.

오죽하면 중국 주석도 여기에 휴가를 왔겠니. 그 뿐인 줄 아니?

아빠는 로도스로 휴가 온 헐리웃 배우들도 많이 만났었는데?

마이클 더글러스, 캐서린 제타존스 부부를 우연한 기회에 잠시 여행 가이드 한 적도 있다고 해.

우리가 매일 여기에 살고 있어서 못 느낄 뿐이지 로도스는 참 아름다운 곳이거든.

어때? 마리아나. 우리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잠깐 시간을 내서 관광객처럼 보내보자!"

슈퍼맨

 

 

그렇게 마리아나와 저의 특별한 여름관광은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밥 먹을 시간도 잘 없는 저의 형편 상, 어떤 땐 번갯불에 콩 볶듯 끝나는 관광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마리아나의 만족도는 기대보다 컸습니다!

 

우선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관광지를 차례로 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주전에 집에서 가까운 아크로폴리스부터 시작했고요.

(강아지 막스가 들판에 있던 사진을 그 때 찍은 것이랍니다.)

 

여긴 지난 주 사고와 시험 이후 특별히 반 나절 휴가를 받아 다녀온 나비계곡입니다.

 

 

 

한참 나비들이 몰리는 때라서 환상적으로 나비가 많았고, 마리아나는 무척 행복해했는데요.

물론 준비해간 도시락 때문에 그 행복이 더 컸다는 것은 이제 여러분도 다 아실 것 같으네요.^^

 

 

 

 

 

 

 

아판두 비치 Afandou beach 라는 시에서 좀 떨어진 바다에도 한번 다녀왔습니다.

마리아나는 할머니나 아빠와도 바다에 간 적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은 아니었지만, 저는 올 여름 제대로 바다에 들어간 것은 처음 이었답니다. 작년엔 그래도 수시로 가던 바다인데 말이지요.

 

  

 

 

그런데 마리아나가 가장 좋아했던 특별 관광은 따로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로도스 호텔 탐방'이었습니다!

 

 

 

저희는 로도스에 살고 있기 때문에 지인이나 가족들이 로도스를 여행 오는 일이 아니면 이곳 호텔에 갈 일은 거의 없습니다. 동수 씨는 호텔 금고 일 때문에 수시로 드나들지만, 저와 마리아나는 이제껏 로도스 섬 내의 2,000개에 달하는 호텔들을 겉에서만 볼 뿐 안에 들어갈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어느 날 생각해보니, 제가 한국에 살 때에도 서울 안이나 서울 근교에 살았었기 때문에 서울 안의 유명 호텔들에 묵을 일은 거의 없었지만 각종 세미나나 회사 행사 일로 유명 호텔 컨벤션 룸을 자주 드나들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 호텔이 꼭 거기에 묵을 사람만 가는 곳이 아니고

세미나 등의 행사를 갈수도 있고 커피숍을 이용하는 사람도 많은데,

마리아나가 로도스의 호텔들을 구경만해도 관광 온 기분이 제대로 들겠구나!

생각중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마리아나와 저는 저희 집에서 가까운데 한번도 들어가본 적이 없는 호텔 한 군데를 골라 어느 늦은 밤 퇴근 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물가에 비해 커피값이 비싸지 않은 그리스여서인지, 호텔 카페의 커피도 한국의 호텔에 비해서는 저렴했고(저희가 방문한 호텔은 하룻밤 200유로-30만원- 이상을 줘야 묵을 수 있는 곳이었는데, 커피 값은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 값 정도였습니다.) 마리아나는 핫초코를 마시며 즐거워했습니다.

 

 

"엄마! 로도스에 이런 곳이 다 있구나. 난 지나만 다녀서 몰랐어요!

꼭 여행 온 것 같고 정말 좋아요! 영국이나 미국 갔을 때 생각도 나고 저엉~~~~~말 좋아요!

 엄마! 고마워요!!"

 

'그렇겠지. 영국에서는 비행기 연착으로 2박3일을 호텔에만 있었으니

어느 호텔에 간 들 영국 생각이 안 날까...

너에게 영국의 이미지는 호텔과 물이 비싸다는 것 뿐이어서

언젠가 제대로 여행할 날이 왔으면 좋겠구나...'

탱고

 

게다가 호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구경하고 각종 시설들을 이용해 주는 마리아나 모습에 '시골사람 처음 타본 기차~' 라는 노래가 생각이 나며 웃음이 빵빵 터졌지만, 웃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써야 했답니다. ^^

 

 

결정적으로 밤 12시가 넘어 커피와 핫초코를 마시는 우리를 당연히 관광객으로 생각했던 카페 직원과의 대화 때문에 저희는 웃음을 꾹꾹 눌러 참아야 했는데요.

그러니까 그리스인인 카페 직원은 저희에게 영어로 주문을 해왔고, 얼떨결에 영어로 마실 것을 주문 해버린 저희는 그 후로 뭘 추가로 물어볼 때에도 새삼스럽게 그리스어를 쓰기가 어색해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계속 영어만 사용하게 되었는데요.

영어보다는 그리스어와 한국어가 훨씬 편한 마리아나는 이렇게 영어를 쓰며 관광객인 것처럼 핫초코를 마시는 상황이 너무 웃겼던 모양입니다.

결국 웃음을 눌러 참던 마리아나는, 나중에 계산을 할 때 그리스인 여자 직원의 영어 질문에 그만 영어로 이렇게 대답하고야 말았습니다.

 

"너 정말 귀엽게 생겼구나. 이름이 뭐니?"

 

"앗! 제 이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혀를 최대한 굴려서)

매뤼애놔......"

 

 

호텔을 빠져나오면서 둘이 웃음이 터져서 얼마나 크게 웃었던지 나중엔 배가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원래 마리아나 라는 그리스 이름의 '리'는 한국어의 '리'보다 좀 더 투박하게 '(으)리'에 가깝게 발음하게 되어 있는데, 녀석은 딴에 영어식으로 자기 이름을 발음해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냥 대충 매리애나 정도만 발음해도 될 것을 너무 긴장한 나머지 지나친 R발음을 집어 넣어 거의 매뤼애놔 로 들리게 대답한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인 호텔 직원은 그냥 외국에서 온 애라 그런가 하고 별 반응 없이 넘어갔지만, 실제 그리스 현지인인 저희 두 사람은 마리아나가 영미권 사람도 아닌 그리스인에게 얼떨결에 그런 식으로 이름을 소개한 것이 엄청나게 웃겼던 것입니다.

 우하하ㅋㅋㅋ

그렇게 큰 웃음으로 끝났던 마리아나의 로도스 호텔 탐방은 앞으로도 쭈욱 이어질 예정인데요.

아마 그 어떤 해외여행 못지 않은 큰 즐거움을 줄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물론 매뤼애놔, 라는 자기 소개는 좀 자제해야겠지만요^^

ㅎㅎㅎ

 

 

여러분 즐거운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관련글

2014/07/12 -  그리스 마리아나, 내 딸이지만 참 만화 캐릭터 같다.

2014/05/23 -  여행와 그리스 여름 겪은 어린 딸의 돌발행동

2014/05/19 -  그리스 로도스 이런 장소 둘러보세요! 여행정보 대방출 2편!

2014/05/13 -  유럽에서 자녀를 키우는 데엔 ‘필터’가 필요하다.

2014/05/09 -  딸이 그리스 소풍 취소에 크게 상심한 이유

 

 

2013/06/13 -  그리스 내에 하루아침에 불어닥친 중국어 열풍

2013/10/27 -  미국 허리케인 Sandy로, 국제 떠돌이 가족이 되다.1

2013/10/28 -  살짝 정신 줄 놓게 했던 아테네에서의 사흘 - 미국 허리케인 Sandy로, 국제 떠돌이 가족이 되다.2

2013/10/30 -  낯선 장소의 진수를 경험한 영국에서의 사흘 - 미국 허리케인 Sandy로, 국제 떠돌이 가족이 되다.3 끝.

2014/03/07 -  아테네 공항 직원에게 큰 오해 받았던 우리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