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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로도스

이럴 땐 차라리 한국과 교류가 적은 나라에 사는 게, 부모님께 다행이다.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11. 25.

 

 

 

저희 부모님은 어쩌다가 딸 셋을 다 해외로 떠나 보내고 두 분만 한국에 살고 계십니다.

저희가 어릴 때부터 이런 상황을 꿈꾸거나 바랬던 것도 아닌데도 어쩌다 보니 이렇게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분은 본의 아니게, 늘 멀리 있는 딸들이나 손녀 손자들이 잘 지내는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으신 것입니다.

 

요즘 그리스는 작년에 비해 확실히 덜 춥지만, 본격적인 겨울 시즌에 접어들어 전국적으로 비가 오는 지역이 많아졌습니다.

11월 23일 일요일, 그리스 전국 주요 도시의 날씨입니다.

오랜만에 비가 오지 않았던 날이었지만, 역시 전국적으로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는데요.

비가 오는 다른 날은 온도가 5~10도 정도 더 떨어지고,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추위가 시작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보시다시피 동쪽 에게해 바다를 낀 중부 아테네북부 알렉산드로뽈리, 남부 로도스크게 기온 차이가 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특히 남부지역인 로도스는 본래도 겨울엔 중부 아테네 보다 비가 좀 더 많이 오는데, 지난 금요일이었던 11월22일은 정말 무섭게 비가 내려서, 이러다가 작년처럼 도로가 다 패이고 나무들이 쓰러져나가는 지경에 이르는 게 아닌가 좀 걱정이 될 정도였는데요.

저는 아침부터 일 때문에 바빴고, 저녁에도 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폭우를 뚫고 운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천둥 번개를 동원해 무섭게 비가 오던 그날 저녁, 수업을 하러 이동하는데 한쪽 도로가 완전 잠긴 것이 보였는데요. 다행히도 잠긴 도로를 피해 경로를 우회해 다른 도로로 운전해 수업을 하러 갔습니다.

수업을 하는 내내 엄청난 번개가 치더니 결국 그 지역 전기가 잠시 끊어지는 사태가 벌어져서, 그리스인 친구들은 한석봉도 아닌데 작은 촛불에 의지해 함께 한글 작문을 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비가 좀 멎어 무사히 잘 돌아왔습니다.

 

 

 
 
로도스 시 외곽 이알리소스 지역의 도로에 물이 넘치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 찍은 동영상이 뉴스에 소개되었습니다.
 
소리를 키워서 들으면, 빗소리와 천둥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요.

 

불과 몇 달 전, 제가 찍어서 올렸던 이 사진을 기억하시나요?

로도스 시의 바다와 닿아있는 만드라끼 지역인데요.

 

이곳도 이날은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토요일 아침, 그리스 전국 공중파 뉴스에선 전날 저녁 폭우로 로도스 시 가까운 외곽의 지역의 도로가 파손되었고 집들이 침수되었을 뿐만 아니라, 작은 강이 범람해 운전 중이던 세 명이 사망했고 실종자 한 명이 발생했다고 반복해서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지역은 공항에서 빠른 도로가 아닌 시내 쪽 길로 들어서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곳이으로 저 역시도 잘 아는 곳이라, 그 뉴스를 보면서 등골이 서늘해지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일단 지대가 높은 로도스 시내 안쪽은 비 피해가 별로 없었고 토요일은 비가 좀 덜 오기도 해서, 저는 원래 약속이 되어 있던 대로 딸아이 반 친구들과 엄마들과 만나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기로 한 장소에 일단 나갔습니다.

 

 

이렇게 시내 안쪽은 감사하게도...물이 차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을 영화관에 들여보내고 두 명의 그리스인 엄마와 저, 이렇게 세 명은 영화가 끝나길 기다리며 커피를 마셨는데요.

 

 

그리스 타 지역 출신인 이 두 엄마는(남부 코스와 북부 야네나), 자리에 앉자마자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오늘 하루 종일 부모님과 친척들, 친구들 전화를 받느라고 정신이 없었어."

저는 "왜?"라고 물었는데요.

??

"전국적으로 뉴스에서, 로도스 지역이 폭우로 강이 범람해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나오니, 다들 걱정이 되셨던 거지."

"그래. 난 특히 출근할 때 그쪽 길을 지날 때가 많아서 우리 엄마는 전화해서 아주 난리셨어. 난 사실 어제부터 오늘까지 비번이라 뉴스를 안 봐서 엄마 전화오시기 전까지 그 지역에 그런 일이 있는 줄도 몰랐거든. "

 

아...그러니까 다른 지역에 사는 그녀들의 부모님과 친척, 친구들은 그리스 내의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걱정이 되셔서 하루 내내 몇 번을 전화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도 금요일에 한국에 계신 엄마와 잠깐 통화를 하긴 했지만 여기에 얼마나 비가 무섭게 오고 있는지 그리스의 겨울을 경험한 바가 없으신 엄마에게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까진 없어서 그냥 "비가 좀 많이 와." 라고 만 말씀 드렸었기에 아마 여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모르고 계실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스는 한국과 먼 나라이고, 수십 명 이상의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일이 아닌 다음에야 국제 뉴스에까지 오르내리진 않으니 말이지요.

 

저는 그리스인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럴 땐 차라리 제가 한국과 교류가 적은 나라에 살고 있어서 다행이라고요.

제게 직접 무슨 일이 생긴다면야 당연히 연락이 가겠지만, 그게 아닌데도 제가 사는 지역에 이런 사건들이 생겼다는 것을 아시는 것만으로도 괜한 걱정만 증폭시키실 수 있으니 말이지요.

사실 동생들이 사는 미국은, 그리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한국과 밀접한 관계의 나라이기 때문에 멀어도, 그리스에 대한 소식보다는 국제 뉴스에서 더 자주 소식을 들을 수 있어, 태풍만 크게 와도 걱정되셔서 동생들 집으로 전화를 하시는 부모님이시니 말이지요.

저도 부모이다 보니 알겠더라고요.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부모는 늘 자식 걱정을 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을요.

 

월요일인 오늘, 지난 여름 한국에 다녀온 뒤로는 거의 매일 저에게 카톡으로 문자를 보내시는 저희 부모님께,

즐거운 한 주 되시라고, 안부 메시지라도 보내야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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