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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그리스에서 한국을 느끼게 한 어떤 돈봉투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4. 16.

 

지난 토요일, 저희 집 인근의 스포츠 카페(축구경기 등을 보는)에서 딸아이의 두 번째 생일파티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고, 생일 파티를 할 때 제가 음식을 만들어 가면 그쪽에서는 음료만 주문하고 적은 파티비용을 내면 일체 서비스는 그쪽에서 제공하는 식이라 가격이 저렴해서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생일 파티를 반 친구들과 부모들만 불러서 밖에서 하기로 했다는 제 말에, 한국어 제자들인 갈리오삐와 디미트라굳이 와서 돕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던 것입니다.

메이크업을 배웠던 디미트라는 초대된 아이들 얼굴에 바디페인팅을 해 주고 싶다고 했고, 사진작가인 갈리오삐는 파티 사진을 찍어 작은 사진첩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토요일 오전까지 일을 하고 겨우 쉬는 주말 오후에 이렇게 수고를 하게 하는 것이 저는 정말 미안해서 "마음만 받은 걸로 할게요" 라며 몇 차례 괜찮다고 말을 했지만, 그 친구들은 굳이 마리아나에게 선물로 해주고 싶다며 결국 오겠다고 했습니다.

이미 지난 주 와플가게에서 만났을 때 딸아이에게 따로 책과 학용품을 푸짐하게 선물했으면서 말입니다.

 

디미트라가 딸아이에게 선물한 것 중에 스티커도 여러장이 있었는데,

한글이 쓰여있는 것이 있어 일부러 사왔다고 해서 함께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토요일 오전에 파티 음식을 만들어 차곡차곡 큰 통에 종류별로 담으면서, 봉투 하나준비했답니다.

제가 알기로, 작은 사진첩(한국의 돌사진 형태의 작품사진첩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을 만든다고 해도 사진 현상비를 포함하면 최소 20유로(3만원) 이상의 원가가 들 텐데, 아무리 선물이라고 해도 공짜로 그 친구들이 일을 하게 만드는 게 정말 말도 안 된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번엔 작년과 달리 레크레이션을 해주는 언니들도 안 불렀고, 파티 후에 아이들에게 들려 보내는 작은 선물도 생략하기로 했기 때문에, 제 입장에서도 이런 이벤트를 해주는 그 친구들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은 크게 부담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레크레이션 언니들에게 주었던 만큼의 돈과 사진인화비를 미리 계산해 봉투에 넣어 가방에 챙겼습니다.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컸으니까요.

 

케이크와 그녀들을 픽업해 파티 장소에 도착을 하니 (요즘 갑자기 좀 추워진 그리스 날씨였는데) 다행히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고, 우린 차를 마시며 오랜만의 뜨거운 그리스 햇볕을 가득 만끽했습니다.

 

디미트라와 함께~ 

 

부모들과 아이들이 도착했고 파티에 신이 난 아이들을 차례로 불러 얼굴에 그림을 그려주는데, 디미트라가 도구를 꺼내 놓은 것을 보니 원래 갖고 있던 얼굴페인팅 도구에 일부러 이 파티 때문에 추가로 새로 산 것도 있는 것 같아 역시 봉투를 준비하길 잘 했다 싶었습니다.

 

페인팅 모양을 고르는 중인 아이들

우리는 스파이더맨이다!

(마리아나 친구들과 함께 온 동생들입니다.)

 

  

 

갈리오삐는 연신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주었고, 사진을 찍지 않을 때는 아이들의 그네를 밀어주며 아이들과 놀아주었습니다.

 

갈리오삐가 사진을 열심히 찍는 덕에 저는 이번 파티에서 마리아나 사진을 덜 찍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사진이 나오면 여러분께도 보여드릴게요^^)

 

 

저는 부모들을 챙겨야 했기에 그런 두 사람이 얼마나 고맙던지요.

 

 

 

갑자기 공항 쪽에 급한 출장이 생겨 늦게 파티 장소에 도착한 동수 씨도 두 사람에게 정말 고마워했습니다.

재미있게도 동수 씨와 디미트라는 좀비나 호러 시리즈를 완전히 좋아하는 미드 취향이 같아서, 이날 둘은 수다를 제대로 떨 수 있었답니다.^^ 저와 갈리오삐는 전혀 다른 취향이라 두 사람의 대화를 고개를 가로 저으며 보고만 있었지요.^^

 

 

 

 

그렇게 파티가 끝이 났고, 저는 그 친구들을 집에 데려다 주게 되었습니다.

집 앞에 차를 세웠을 때, 분명 돈을 안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흰 봉투를 반으로 접어 급하게 디미트라에게 건넸는데요.

그런데 옆자리에 앉았던 디미트라는 극구 안 받겠다며 사양을 했고, 갈리오삐는 받지 않으려고 차에서 먼저 내려버리는 게 아니겠어요!

디미트라는 돈 봉투를 제게 다시 돌려주며 "왜요? 쌤. 아니에요. 쌤." 이라고 말을 했고, 저는 그녀에게 다시 봉투를 들이 밀며 "아니야. 아니야. 이건 받아야 해. 정말 조금 밖에 안 넣었단 말이야."라며 서로 몇 번을 이렇게 반복했습니다.

 

순간, 저는 이 상황을 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요.

한국에서도 몇 번은 겪어 본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돈을 주는 쪽이었던 적도 있었고, 받는 쪽이었던 적도 있었지요.

가까운 사이라 그냥 기꺼이 일을 해주었는데 돈을 주려고 해서 저는 그 손을 거절하고, 상대는 제게 다시 주려고 하고, 몇 번을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상대가 제게 밥을 사주는 것으로 마무리 되기도 했던 일들 말이지요.

동생이 이곳에 여행을 왔을 때, 제가 해준 것도 없는데 대접이 고마웠다며 내밀었던 봉투를 몇 번을 거절하며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받았던 일도 떠올랐습니다.

 

결국 저는 디미트라 무릎 위에 있었던 가방 뒷주머니를 열어 봉투를 쑥 집어 넣고 지퍼를 닿은 후, 막 내리라며 그녀의 등을 떠밀었습니다.

그녀는 마지못해 내렸고 저는 다시 한번 두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데, 그녀들 덕분에 이 파티가 얼마나 든든했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를 때에도 그리스 노래, 영어 노래 뒤에 한국어 노래를 부를 때, 그 친구들이 함께 큰 소리로 합창을 해주어 작년과 달리, 저희 가족과 두 사람의 목소리가 합해져 다섯 사람의 한국어 생일 축하 노래가 완성되었으니 말이지요.

그리스에 와서 다섯 사람이 한국어 생일 축하를 부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한국보다는 '지인 사이라 해도 더치페이나 돈 계산이 정확한 편'이 그리스 사람들이지만 이렇게 친분 때문에 일을 도와주고도 '돈봉투를 주겠다 안 받겠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문화' 역시 한국과 참 비슷해서, 이날 저는 이 돈봉투 때문에 한국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집에 왔을 때,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던 동수 씨 덕에 저의 한국 감성은 왕창 깨졌지만요.

 

바로 이런 통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 여자친구 소개해 줄까? 응. 올리브나무 친구인데 이름은 디미트라이고,

세무서 뒤의 서점 알지? 응 거기서 근무해.

아주 괜찮은 아가씨야. 왜냐고? 좀비 미드를 좋아하거든. 음하하하하.

너도 좀비 미드 좋아하지? 응. 그래.그래."

슈퍼맨

 

 ㅎㅎㅎ푸핫.

 

참 사람에 대해 저런 식으로 홍보해 소개하기도 쉽지 않다 싶습니다. 다른 장점들도 많은데, 하필 괜찮은 아가씨인 이유가 좀비 미드를 좋아해서라고 말하다니요.^^;; 근데 상대가 또 그 이유에 수긍을 했던 모양이지요? 동수 씨가 응. 그래. 그래. 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면요!!!

참 못 말리는 동수 씨입니다.^^

 

 

여러분 신나는 수요일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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