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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나를 많이 당황하게 한 그리스의 ‘람바다’ 라는 물건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4. 5.

 

여러분은 람바다, 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제가 그리스에서 결혼식을 준비할 때였는데, 시댁 어르신들은 결혼식 준비 품목으로 '람바다'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리스 결혼식은 준비해야 할 자잘한 품목들이 많기 때문에 도대체 이 '람바다'가 뭐길래 준비를 하라는 건가 싶었는데, 주변 그리스인 중엔 누구 하나 제게 속 시원하게 말을 해주는 사람이 당시엔 없었습니다.

 

그리스에서는 결혼식 전에 신랑과 신부가  예복을 서로 보여주지 않는 것을 여전히 전통으로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신부는 드레스를 고르는 일부터 몇 가지 자질구레한 일들을 신랑과 함께 준비를 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 드라마에서 많이 나오는 장면인, 예비 신부가 드레스를 입고 나오길 기다리던 예비 신랑의 깜짝 놀라는 모습 같은 것은 그리스에서는 연출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부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신랑의 예복 역시 신랑 친구들과 준비하는 경우가 많으니 신부는 대략 신랑의 예복의 색깔 정도는 알 수 있어도 서로의 예복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결혼식 장소에서 예식 직전에야 가능한 것입니다.

 

이렇게 신부가 혼자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보니, 그리스 현지 실정을 잘 몰랐던 저는 자연스럽게 시댁 고모님들이나 시어머님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데요.

하필 당시 저를 도와줄 만한 시간이 나는 고모님께서 영어를 거의 못 하는 분이셨고 그건 시어머님도 마찬가지 셨습니다.

그렇게, 준비를 해야 한다는 람바다는 점점 미궁 속에 쌓인 물건이 되어 준비 품목에서 뒤로 밀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결혼식에 사용할 꽃을 맞추러 갔는데 다행히 그 날은 동수 씨가 함께 갈 수가 있어 고모님과 어머님까지 카탈로그를 보면서 함께 예식 꽃을 고르게 되었는데요.

꽃을 보여주시던 업체 사장님께서 제게 이런 말을 하시는 것입니다.

 

"자, 차량 장식부터 부케까지 다른 꽃들은 대략 고르셨으니,

람바다에 장식할 꽃도 고르셔야지요.

그런데 람바다는 준비가 되셨나요?"

 

'정말 잘 됐다. 이분이 영어를 잘 하시니 제대로 람바다라는 물건에 대해 물어야겠다.'

싶었던 저는 "저기…그런데 람바다가 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설명을 좀 해주시겠어요?"

라고, 첨 뵙는 분이라 좀 쑥스럽게 묻게 되었는데요.

 

그런데...

점잖게 생긴 그 사장님의 대답에, 저는 그만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람바다 모르셨어요?

신부가 꽃을 온 몸에 이리저리 휘감고 결혼식 때 람바다 춤을 추는 거에요.

아직 춤 연습을 안 하셨나봐요."

 

 

 

헉

 

이게 도대체 무슨…

 

"나보고 지금 뭘 하라고요?

꽃을 몸에 감고 결혼식에서 무슨 춤을 추라고요???"

 

 

 
그리스에서는 2014년 현재에도, '마카레나'와 함께 일년에 몇 번은 여전히 파티에서 들을 수 있는 
 
1989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람바다(La Lambada)입니다.

 

 

저는 너무 당황을 해서 말까지 더듬으며, 마시고 있던 커피를 엎을 뻔했는데요.

아직 그리스 예식에서 단체로 춘다는 전통춤도 잘 모르겠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제 표정을 보고 있던 동수 씨웃겨아하하하하하…라며 폭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며 그 사장님이 제게 영어로 했던 말을 옆에 있던 식구들에게 그리스어로 설명해 주자, 고모님과 시어머님도 거의 얼굴이 벌개져서 숨 넘어가게 웃으시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웃는 걸까…

저분들도 내가 람바다 춤을 못 출 거라는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는 거야????

그렇게 내 외모에서 표가 나나????'

??

 

  

제 당황하는 얼굴을 보던 동수 씨는 그제야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올리브나무! 람바다는 여기서도 한 때 유행했던 유명한 노래와 춤이지만,

그리스어 람바다는 사실 다른 뜻이 있어."

 

 

동수 씨가 설명해준 람바다(Λαμπάδα)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바로! 이것! 

특별한 날을 위해 사용되는 장식이 달린 긴 초를 그리스에서는 람바다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결혼식에서는 양가 어머님들이 예식 시작 때 함께 입장해서 앞쪽에 있는 초에 화촉을 밝히시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리스 결혼식에서는 아주 큰 초에 꽃 장식을 한 람바다 예식 장소의 맨 앞쪽에 장식을 하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그리스어로, 집에서 켜는 일반 초는 통칭으로 깨리(Κερί) 라는 단어가 따로 있는데, 결혼식, 세례식, 명절 빠스하(부활절) 등에 사용되는 장식용 긴 초는 모두 람바다(Λαμπάδα)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세례식을 위한 람바다입니다.

 

그럼 도대체 저 꽃 업체 사장님은 왜 제게 람바다에 대해 그렇게 말을 해서 저를 당황하게 만드셨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요.

게다가 웃음기 하나도 없는 얼굴로 말을 해서, 더 속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장님은 제 벌개진 얼굴을 보시더니, 그제야 영어로 이렇게 설명을 하셨습니다.

 

"올리브나무 씨가 시어머님 때문에 너무 속상해하는 것이 제 눈에도 보여서,

그냥 좀 재미있게 해주고 싶어서 농담을 한 건데 이렇게 당황할 줄 몰랐어요.

미안해요.

아마 시간이 지나 그리스인들을 좀 더 알게 된다면 이런 농담쯤은 구분할 줄 알게 될 거에요."

 

(지금 생각해보니 아직도 동수 씨에게 만우절 때 속는 저는, 여전히 그리스인들의 천연덕스러운 농담에 익숙하지 못한 것 같네요^^)

 

 

사실 돈에 민감하신 시어머님께서 업체 사장님을 만나기 전부터 꽃 가격이 비싸다고 내내 제게 잔소리를 하시더니(당신이 돈을 내실 것도 아니면서 말이지요. 아마 저를 나름 위한다고 그러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 결혼식의 장식 꽃은 여자 쪽에서 준비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장님 앞에서 까지 내내 좀 인상을 쓰고 계셨던 것입니다.

저도 가격을 비싼 것으로 고를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그렇게 인상을 쓰며 업체 사장님과 대화를 해 봤자 좋은 가격으로 협상할 수 있지도 않을 텐데 싶었기에 제 마음이 많이 불편했었는데, 그 사장님이 그걸 눈치 채고 분위기를 좀 바꾸려고 농담을 하셨던 것입니다.

 

사장님의 농담 덕에 저는 많이 당황하긴 했지만, 결국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고 꽃 가격 역시 최대한 많은 할인을 받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 명절 빠스하가 2주 앞으로 다가온 요즘, 대형 마트나 어린이 용품을 파는 곳에서는 이 람바다가 정말 다양한 종류로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그리스 명절 빠스하를 위한 람바다입니다.

 

'그리스에서는 누구에게나 있는 대부나 대모가', 아이들에게 이 람바다와 큰 달걀 모양의 초콜릿(안에 장난감이 들어 있는)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마리아나 역시 가족들과 고모로부터 람바다와 초콜릿을 받아왔기 때문에, 저도 그런 진열된 람바다가 이제는 예사로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비록 한 때는 저를 많이 당황하게 했던 물건이지만 말이지요.^^

 

 

여러분 즐거운 주말 되세요!

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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