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경제가 바닥을 찍고 다시 신용평가 기관들과 EU로부터 좀 나은 평가를 받게 된 것이 불과 작년 하반기부터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는 국가신용 CCC 등급까지 바닥을 쳤던 상황을 벗어나, 드디어 B- / B 등급으로 상향 평가를 받게 되었고 이 등급이 아직 훌륭한 등급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점점 나아질 전망입니다.
(기사 원문 http://uk.reuters.com/article/2014/03/21/uk-greece-ratings-idUKBREA2K0CZ20140321)
지난 몇 년간 그리스인들은 이런 구제금융과 EU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혈세라는 말이 꼭 맞는 엄청난 양의 세금을 냈고, 임금 삭감, 정리해고, 대출금리 인상 등의 모든 과정을 견뎠습니다.
거기에 발맞춰,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저희 가족이 하는 사업도 허리띠를 졸라매며 숨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세금 고지서가 나올 때마다 예년에 비해 어떻게 이렇게 많이 내라고 하는지 놀라서 말문이 막힐 만큼 세금을 내기도 했었고, 작년엔 직원 두 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다가 스스로 그만 두어서 업무에 곤란함을 겪기도 했습니다.
공무원도 30% 이상씩 임금 삭감을 겪고 전 직종이 임금 동결이나 삭감 중인 때에, 그 직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니 저희라고 들어줄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는데, 결국 그렇게 그만 둔 직원 중 한 사람은 저희와 동종 사업을 시작했는데 가게 임대료도 못 낼 만큼 기술력 없이 덜컥 좋지 않은 시기에 사업을 시작해서 곤란한 처지에 놓여있고, 또 한 사람은 아직도 백수로 지내고 있습니다. 아직 20대의 젊은 직원들이라 상황 판단을 잘못 한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그렇게 그 두 직원이 그만 둔 이후로, 동수 씨와 시아버님은 대체할 직원을 구하지 않고 현재 인력으로 몇 배로 더 바쁘게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저 역시 사무실 일이 더 많아져서 참 바빴었는데요. 어쩔 수 없는 국가 경제 상황에 맞춰 대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국가적으로도 개개인의 가정에서도 한 고비가 넘어갔다라는 것을, 저희 사업이나 가족 친척 지인들의 상황, 또 주변 그리스인들의 상황들을 보면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그리스 경제가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기간 동안, 동수 씨가 업무적으로 가장 어려워했던 점은 노동시간이 늘었다는 점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하루 12시간 이상 매일 일에 매달려 있어야 하니 피곤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동수 씨가 워낙 자기 일을 좋아하고 남들이 해결하지 못 하는 일을 기술적으로 해결할 때 느끼는 만족감이 커서, 그럭저럭 잘 버티고 지나왔습니다.
그 시기에 동수 씨에게 가장 어려웠던 일은 다른 일이었습니다.
그리스 경제가 바닥을 쳤던 몇 년 간 마치 한국의 IMF 때 그러했듯이 부실 기업들은 부도가 나고 소비가 위축되면서, 월 임대료를 내지 못 하는 점포사업자나 자영업자들이 속출하게 되었고, 부동산 시장도 거래가 뚝 끊기면서 집 가격이 하락했는데 반대로 은행 대출 금리는 올라가서 그 시기 직전에 결혼을 해 새로 집을 크게 지은 사람들의 경우 결국 몇 달을 버티지 못 하고 새 집을 은행에 넘겨야 하는 상황들도 비일비재로 발생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에서는 이렇게 임대료를 내지 못 한 점포사업자나 사무실 세입자를 건물주가 법적으로 문제를 삼을 경우, 그리스의 법원에서는 한 두 번의 경고 후에 세입자에게 일체의 예고 없이 점포나 사무실의 물건을 차압 하게 되는데요.
이유는 그리스의 도시의 경우 업무용 공간을 임대하려면 그 임대료가 상당히 비싼 편인데, (주거용 집에 대한 임대료는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 아닙니다.) 한국과 달리 보증금을 걸고 월세를 내는 형태가 아닌 보증금 없이 미리 두어 달 상당의 월세를 초기에 내고 그 다음부터는 다달이 월세를 내는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월세가 한 두 달이라도 밀릴 경우 건물 주는 차압 할 보증금도 없으니 바로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법원에서 세입자에게 예고 없이 차압을 강행할 때, 제일 먼저 법원 소속 집행관은 차압을 집행하면서 전문가를 대동해 세입자가 다시 금고 등을 열 수 없게 점포나 사무실 내의 금고를 포함한 모든 잠금장치를 교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행은 법원에서 하지만 그 교체 비용은 건물주가 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는 특수 금고를 소지하고 있는 사업자나 개인이 많고, 유럽은 대개 전자도어락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 유럽에서는 전자도어락에 대해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일반 점포나 사무실에도 특수 기술의 전문가만 열거나 교체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잠금 장치가 존재합니다.)
이런 일은 대개 도시나 지역마다 법원이나 지자체와 계약된 업체에서 하게 되어 있는데, 공교롭게도 동수 씨가 이 일을 할 수 있는 특수 업무 코드를 갖고 있어서 저희 사무실에는 싫어도 이 법원 집행관이 로도스 시 안팎의 대부분 점포와 사무실을 차압 할 상황이 생겼을 때 업무를 강행하기 위해 따라 나설 수 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지금이야 경제 위기를 한 고비 넘긴 때이기에 요즘은 이런 종류의 일이 몇 달에 한 건도 잘 없지만, 2011년부터 2013년 상반기까지 이런 종류의 일이 많을 때는 하루에 네 다섯 건이 되기도 해서, 저희 사무실 로고가 새겨진 벤이 상업지구에 등장하면 자영업자들이 "설마 우리 가게에 오는 건가? 내가 지난 달에 월세를 제대로 냈나?" 이러며 굉장히 싫어하기까지 했을 정도이니, 동수 씨나 그 일을 하는 직원이라고 해서 결코 기분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만약 대저택을 새로 지어 놓고 경제 위기로 대출금을 상환 못 해 은행에서 집을 차압 하는 경우라면 대개 이미 집 주인이 그 집을 떠난 상태에서 은행 집행관과 함께 금고 등의 잠금장치를 교체하고 차압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크게 심정적으로 불편할 일을 겪지는 않아도 되는데, 이렇게 점포나 사무실을 차압 할 경우엔 어떤 땐 세입자가 와서 법원 집행관이나 동수 씨에게 따지고 들며 마찰을 일으키기도 해서 곤란할 때가 정말 많았습니다.
동수 씨도 을의 입장이라, 또 이 일만 안 하겠다고 하게 되면 다른 정부 기관(경찰서, 소방서 등)과 연계된 사업까지도 타격을 입을 수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긴 하지만, 그렇게 여러 가게를 폐업시키고 온 날은 얼굴까지 죽상이 되어서 "내가 오늘 남의 가게를 몇 개 문 닫게 하고 온 줄 알아. 진짜 기분 안 좋다." 라고 말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런 업무를 할 때는 웬만하면 따라 나서지 않는 편인데, 2013년 초반에 한 가게를 차압 하는 데에 법원과의 서류를 처리하는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쫓아갔다가 기겁을 하고 다시는 그런 업무에 따라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은, 그리스 경제 상황을 악용한 악덕 건물주가 사기에 가깝게 법원을 통해 세입자의 점포를 차압 한 경우였습니다. 그 그리스인 건물주에게는 젊은 러시아인 새 아내가 있었고 그 아내는, 나이든 남편의 건물에 새 들어 사업을 하는 한 인기 옷 가게가 정말 탐이 났다고 합니다. 만약 그 가게를 그 러시아인 아내가 운영하고 싶다면, 세입자에게 많은 권리금을 주고 가게를 인수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렇게 돈을 들이기는 싫으니 남편을 계속 부추겼던 것입니다.
당시 그리스 법원에서는, 임대료를 작정하고 늦게 내거나 안 내고 버티는 세입자들이 너무 많다 보니, 임대료가 단 며칠만 늦어져도 바로 법적인 수순을 밟을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건물주들의 편의를 봐주고 있던 상황이었는데요.
그런 상황을 악용해서 세입자가 단지 이틀 월 임대료를 늦게 입금했을 뿐인데, 건물주는 기회는 이때다 하고 바로 법적인 절차를 밟아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 아침에 갑자기 점포 차압을 당하고 점포 안의 모든 물건들까지 건물주 소유라고 하니, 옷 가게 주인 여성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그런 날벼락이 없는 셈이었지요.
동수 씨와 직원은 법원 집행관이 하라는 일을 했을 뿐인데, 옷 가게 주인 여성은 울고 불고 난리가 났고 주변에 모든 지인을 동원해 순식간에 스무 명 가까운 장정들이 가게 앞에 모여들어 건물주 나오라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보복이 무서웠던 주인은, 금고 잠금장치 교체비용을 저희에게 지불해야 하는데 가게 앞에 오지도 못 했고, 저희를 법원 행정관과 다른 지역으로 불러서 돈을 지불했습니다.
어떻든 상황이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매번 동수 씨가 그렇게 얼굴이 죽상을 해서 집에 돌아오는 이유를 알 수 있었고, 나중에 그곳을 지나다 보니 그 가게는 다른 용도의 가게로 바뀌어 있는 것으로 보아, 결국 그 세입자는 쫓겨났지만 그렇다고 그 러시아인 젊은 아내가 옷 가게를 빼앗아서 계속 하지도 못 한 듯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작년에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도 이런 일들이 계속 발생을 했지만, 당시에는 너무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라 블로그에 쓰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동수 씨의 업무적인 고충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업무를 할 일이 거의 없을 만큼 그리스 경기가 회복되는 중이고(여전히 세금은 폭탄입니다만) 이 일들이 이미 지나간 상황이 되니, 여러분께 이렇게 들려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여러 고비를 넘기며 고생한 그리스인들과 그리스에서 함께 이 기간을 넘긴 수 많은 이민자들에게, 오늘은 파이팅을 외쳐주고 싶습니다!
더불어...
현재 한국에서 당면한 위기는 경제적인 위기는 아니지만, 한국이 그리스 이상으로 IMF시대를 고통스럽게 겪으며 국가와 기업의 부조리한 경제적인 구조를 국제 규격에 맞게 뜯어 고쳤던 것처럼, 이번 참사에 대해 책임 진위를 가리는 데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고통스럽더라도 고쳐져야 할 체계와 시스템 부분들은 허물어서 선진국 규격에 맞게 제대로 다시 설립할 수 있도록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여러분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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