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기한 그리스 문화

이 영화 본 그리스인 남편 분통 터져 고래고래!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4. 17.

 

 

 

동수 씨는 새로 나온 웬만한 할리우드 영화는 잘 챙겨 보는 편입니다.

SF나 수사물을 좋아하는 부분은 저와 같지만, 인디 영화도 좋아하는 저와는 대개 영화 코드가 잘 맞지 않을 만큼 남편은 쾅쾅 터지는 액션 영화들에 열광합니다.

커다란 외장하드에 아놀드 슈워제네거, 실버스타 스텔론, 재키 찬 카테고리가 따로 있어, 심심할 땐 앉아서 차례로 그들의 지난 영화들을 복습하며 '마치 이 순간 저 영화를 처음 본다는 듯' 아하하하! 와후! 이러며 감탄하며 관람할 정도입니다.

물론 동수 씨는 히어로 영화와 코미디 영화도 좋아하는 편입니다.

저도 코미디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총알 탄 사나이, 폴리스 스토리, 미스터 빈 시리즈 그렇게 수십 번 복습하며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지루한 영화라면 딱 질색인 동수 씨의외로 좋아하는 장르가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실제 역사나 고전 소설을 다룬 영화들입니다.

영화를 좀 좋아하는 편인 제가 동수 씨와 친구로 지내던 시절, "넌 이제껏 본 영화 중에 어떤 게 제일 좋았니?" 라고 묻자 동수 씨는 '몬테 크리스토' 라고 대답했는데, 제가 그 이유를 되묻자

 

"흠~ 고전소설 속의 복수하는 모습을 아주 잘 그려냈잖아!

통쾌해. 아주 통쾌해! 음하하하. 음하하하"

슈퍼맨

 

라고 대답해서, 저로 하여 '뜨헉. 이상한 애니까 조금만 친하게 지내야겠구나.' 생각하게 만들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애랑 결국 결혼을 하다니요ㅠㅠ)

 

 

(영화 몬테 크리스토, 2002)

 

 

이런 동수 씨가 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중  손 꼽아 기다리던 영화가 두 편 있었는데, 바로 영화 300 제국의 부활(300 rise of an empire, 2014) 헤라클레스 레전드 비긴즈 (The legend of Hercules, 2014)였는데요.

안 그래도 역사물을 좋아하는데 더구나 그리스 역사와 신화를 다룬 영화이니 얼마나 기대했을지 짐작이 되겠지요?

 

"스파르타!" 라는 유행어를 낳은 전작 영화 300은,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실제 역사와 좀 다르다는 논란이 일긴 했지만 그럭저럭 재미로 봐줄만하다는 호평을 받았었기에 후속편에 대한 기대도 그만큼 컸던 것 같습니다.

 

최근 영화, 300 제국의 부활

(300 rise of an empire, 2014)

 

 

 

동수 씨는 영화를 다운받던 날, 시아버님까지 불러 함께 보겠다며 넉넉한 피자와 소다를 준비해 저희 집 소파에 자리잡고 앉았고, 저는 전작 300이 좀 잔인한 장면이 많았었기에 새 영화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 되 보고 싶지 않아 그냥 2층에 먼저 올라와버렸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2층으로 올라온 동수 씨 표정이 단단히 화가 난 얼굴이었는데요.

맛있는 것 먹으며 영화를 잘 봤으면서 왜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지 저는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영화는 어땠는데?"

 

제 질문에 동수 씨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어휴! 열 받아. 그것도 영화라고 만든 거야? 어휴 신경질 나!"

아자

 

당황한 저는 "왜? 뭐가 문제인데? 재미가 없어??" 라고 되물었고, 동수 씨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거리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역사를 왜곡해도 정도껏 왜곡해야지. 어느 정도 왜곡하면 그냥 봐줄 만 하잖아.

이건 뭐 완전 엉터리야! "

부르르2

 

"도대체 어느 부분이 그렇게 잘못되었는데??"

 

 

영화를 보지 않은 저는 궁금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내용도 약간씩 문제가 있지만 제일 문제가 있는 것은 반복되어 나오는 전투씬이야!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런 식으로 전투하지 않았다고.

해상전투를 할 때 바다로 적이 공격을 해오면 적의 함선들을 만(bay,)으로 유인해

높은 곳에서 대포를 쏴서 침몰시키는 식으로 전투했다고.

이건 그리스인이라면 상식으로 배우는 역사야. 우린 그렇게 많은 배를 만들어 싸우지 않았다고.

그런데 저 영화는 그리스인들이 죄다 배를 만들어서 함선과 함선끼리 전투하는 모습만 잔뜩 그려놨더라고.

전혀 잘못된 방식이라고!! 만약 영화대로 역사가 흘러갔다면 지금 남아 있는 유적들의 모습이 전혀 달라야 한다고!

진짜 아무리 돈 많이 들여 영화를 만들면 뭐해. 저렇게 다 틀리게 만들어 놓고. 진짜 눈만 버렸어!!"

 

영화 속 해상 전투씬들

 

 

그랬던 것입니다.

국사 과목을 초등학교 때부터 특별히 가르치는 교육을 받은 그리스인들이기에 다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도 자국의 신화와 역사에 대해 상식이 많을 수 밖에 없는데, 영화가 재미를 위해 역사를 왜곡해버리니 동수 씨는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동수 씨가 불같이 화를 낸 것은 며칠 뒤 신작 헤라클레스를 보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에이! 순 엉터리. 눈만 버렸어. 이건 뭐 그냥 재미로 새로운 이야길 만들어 낸 거잖아!" 라고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헤라클레스 레전드 비긴즈 (The legend of Hercules, 2014)

 

동수 씨가 너무 화를 내길래, 저는 오늘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 중이며 역사 교육도 담당하고 있는 친구 소피아를 만난 김에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소피아의 얘기는 이랬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의 재미와 이윤추구를 위한 역사 왜곡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닌 걸 뭐. 하지만 그리스인 입장에서 그런 부분이 억울해도 그리스의 영화 시장이 크지 않아서 그런 대작을 만들지는 못하니 사실 딱히 어떤 행동을 취할 수도 없는 걸. 또 일단 이런 그리스 이야길 소재로 영화가 만들어지면 이번에는 어떨까 하고 일단 수입을 해서 배급을 하긴 해. 난 아예 배급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리스인들이라면 어느 경로로든 자국의 역사를 담은 영화를 궁금해서라도 보려고 할 거야. 결국 실망으로 끝이 나지만.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있어. 그리스에서도 500년 안쪽의 근대사에 관한 영화는 많이 만들었는데, 역사를 중요시 여기는 만큼 절대 재미나 이윤을 위해 역사를 왜곡하지 않는다는 거야. 우린 그런 점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거든. 우리의 자부심이기도 하지."

 

소피아의 말을 들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드라마가 한류의 바람을 타고 해외로 수출되면서 상식적으로 볼 땐 더 정확한 역사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만 만들어져야 할 텐데, 도리어 시장이 커질수록 재미와 이윤을 위해 역사 왜곡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현상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드라마는 분명 소설 이야기가 아닌 역사 이야기라고 하면서도 그냥 사극이나 역사극이라는 장르만 취하고 있을 뿐 완전 허구의 이야기를 약간의 사실과 버무려 재미있게 재 탄생시킨 것들도 있는데, 물론 저도 이런 드라마를 보면 정말 극의 흐름이 재미있긴 하지만 역사 속의 인물들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해 썼다는 부분에서 실제 역사와 충분히 혼돈이 올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으니까요.

 

'우리나라도 이제 영화 드라마 산업의 시장이 점점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기 때문에 경제 논리로 어쩔 수 없다' 라고 만 하기에는 한국 역사는 좀 길고, 우린 나름 역사 의식이 있는 국민들이 아닌가 싶어 '그리스인들이 비록 영화 시장이 작더라도 왜곡된 역사 영화는 만들지 않는다는 자긍심이 있다' 라는 얘기에 씁쓸한 마음이 다 들었습니다.

 

결국 남의 나라에서 내 나라 역사를 왜곡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분통 터져 하는 동수 씨 앞에서, 한국은 자국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면서 재미와 이윤 때문에 스스로 역사를 왜곡하기도 한다 라는 말을 차마 꺼낼 수가 없어 입을 꾹 다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한국이 영화를 잘 만든다고 한국 영화라면 그렇게나 좋아하며, 최근에는 '설국열차' 를 그리스어 자막과 함께 시부모님, 시누, 고모님들까지 골고루 나눠주며 관람하게 만든 동수 씨이니 말입니다.

 

이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는 한국 영화이니만큼, '의식 있게 만들어진 최근 몇몇 한국 영화들'처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영화들이 더 많이 생산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됩니다.

 

여러분 힘 내시는 목요일 되세요!

 좋은하루

 

 * 그리스 언론에서도 한국에서 일어난 여객선 사고에 대한 소식을 뉴스마다 다루었고 이에 대해 그리스인들도 진심으로 크게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뉴스를 접하며 가슴이 너무 아파 이 내용을 글로 다루지는 못했습니다. 

 

 

관련글

2014/03/16 - [신비한 로도스] - 고대불가사의 그리스 로도스거상, 도대체 왜?어디로?!

2014/01/06 - [신비한 로도스] - 헤라클레스가 지나갔다는 장소에 가보니

2013/07/05 - [세계속의 한국] - 그리스인 남편의 한국영화 '26년'에 대한 뜻밖의 반응

2013/04/29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빼앗긴 유물 반환을 호소하는 그리스인들의 독특한 운동

2013/08/29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한국사 수능 필수 채택'에 들여다본 그리스의 국사 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