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로도스 5월 날씨는 좀 이상합니다.
원래라면 이미 더울 만큼 더워져서 긴 팔을 절대 입을 수 없는 때인데, 웬만하면 비가 오지 않는 그리스의 5월에! 지난 주에도 비가 왔고 이번 주에도 이틀이나 비가 오면서, 민소매를 입고 돌아다니던 관광객들까지 점퍼를 꺼내 입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도 오늘 모두 긴팔을 다시 꺼내 입어야 했습니다.
마리아나의 학교에서는, 해마다 학년 말인 이맘 때 (그리스 학교는 6월 중순에 학년이 끝이 나고 여름방학을 시작해요.) 부모 동반 전교생 소풍을 가는데, 이번 주 원래 계획했던 소풍날에 그만 비가 오게 된 것입니다.
소풍 이틀 전 일기예보가 심상치 않자, 개인 자가용으로 소풍장소로 이동하는 가정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원에 대한 관광버스 대절까지 이미 끝이 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소풍은 연기되어 버렸습니다.
더불어 항상 그리스 초등학교 소풍 때에 함께 시행되는 <<유럽 유적지를 깨끗하게!>> 캠페인 까지 취소되어 버렸습니다. (이 캠페인은 소풍 날짜가 다시 잡히면 자세히 소개해 드리도록 할게요^^)
그리고 소풍을 가기로 했던 날은 그냥 정상 수업을 하니 가방을 챙겨오라고 했습니다.
소풍 전날, 최종적으로 이런 통보를 받은 딸아이는 하교 길부터 얼굴이 울상이었는데요.
그리도 속이 상한지 예민해질 데로 예민해져서 어떤 말을 하더라도 짜증 섞인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그래, 뭐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 생각이었는데 속상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던 저는 그냥 딸아이의 짜증을 좀 받아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녁이 되도록 그러고 있는 딸아이의 태도에, 더는 참아 줄 수 없었고 녀석을 눈 앞에 세워 놓고 따끔하게 혼을 냈습니다.
"니가 속상한 건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계속 짜증을 내면 어쩌라는 거니?
날씨가 안 좋은 건데, 넌 그럼 비가와도 산 속에서 소풍을 해야겠다는 얘기니?
거기가 가까운 곳도 아니고 시에서 한 시간 넘게 이동해야 하는 곳인데, 그러고 싶어???
이만 하면 충분하니까 그만 해. 도저히 못 봐주겠어!"
자기가 생각해도 좀 본인이 너무 예민했다 싶었던지 "잘못했어요..."라고 말을 하더니,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않고 뭘 만드는 눈치였습니다.
저는 제 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한참 만에 만들어서 들고 나온 것은 리본으로 만든 카네이션이었는데요.
카네이션이라기엔 좀 특이한 스타일이긴 해도, 굳이 제 실내복 가슴팍에 달아 주겠다니 "고마워." 라며 달아주는 대로 가만히 있었습니다.
꽃을 핀으로 달면서, 마리아나는 자신의 속내를 털어 놓았습니다.
"엄마. 내가 소풍이 취소되어서 뭐가 제일 속상한 줄 알아요?"
"친구들과 재미있게 못 노는 거? 거기 놀이시설이 잘 되어 있는데 못 놀아서 서운한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난, 난...정말 계란밥이랑 김밥이랑 먹고 싶었단 말이에요!"
"그거야 집에서 해주면 되지. 뭐 그렇게 서운해 하고 그래."
"하지만 밖에서 먹는 건 맛이 다른데!!!"
"...그렇긴 하지...."
"그리고 거기 아기오 술라(소풍장소)에는 수블라끼랑 맛있는 아이스크림도 많이 파는데, 엄마 기억 안 나요???"
"그래. 기억나. 그게 그렇게 먹고 싶었어?"
"그럼요~~~ 얼마나 맛있는데요."
"하긴. 넌 소풍 가면, 여기에 먹으러 온 건지 싶게, 도시락 싸 간 것 다 먹고, 또 파는 것 사서 먹고, 또 디저트 먹고...먹기만 하다 오는 애지. 엄마가 깜빡 했다."
"힝. 나 놀리지 마요. 맛있는 걸 어쩌라고...엉엉."
녀석은 그 기대했던 맛있는 걸 다 먹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갑자기 서러웠던지 엉엉 눈물까지 흘리며 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하도 기가 막혀서 "엄마가 집에서 해 준다니까? 그리고 수블라끼 꼬치나 아이스크림 먹고 싶으면 그것도 사 줄게." 얼른 달랬는데요.
"아니..그게 아니고...친구들이랑 산에서 먹으면 더 맛있는데...공기도 좋고...흑흑..."
아이쿠. 진짜 못 말리겠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이었습니다.
이런 마리아나의 맛있는 것을, 제 때, 적당한 장소에서, 좋은 사람들과 먹어야 하는 욕구가 제대로 풀리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한국어 수업을 하러 갔다가 마침 디미트라가 요새 다이어트를 시작했다며 요거트만 먹고 참는 중이라고 말하니, 옆에 있던 마리아는 너무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며 "디미트라! 어떻게 하지요! 얼마나 먹고 싶은 게 많을까...뭐가 제일 먹고 싶은데요?" 라고 물어보았고, 그녀는 한국말로 "빵! 맛있는 빵! 신선한 빵!!" 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떻든 저희는 수업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어능력시험 듣기평가 기출문제를 풀던 디미트라가 정말 쉬운 문제를 말도 안 되게 실수를 한 것이었습니다!
제 34 회 TOPIC 한국어능력시험 ㅣ 듣기평가 기출문제 9 번 (3점) 여기는 어디입니까? 알맞은 곳을 고르십시오.
① 집 ② 학교 ③ 공항 ④ 커피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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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4번 커피숍입니다!"
옆에서 같이 문제를 풀던 갈리오삐는 "응? 왜 그래? 디미트라? 답은 1번 '집'이잖아!" 라고 놀라서 가르쳐주었는데요.
제가 왜 이런 실수를 했냐고 묻자, 문제를 다시 반복해서 들어본 디미트라는 깜짝 놀라더니 한국어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쌤~~ 난 방이란 말이 빵으로 들렸어요!! 어떻게 하지요. 아이고, 나 왜 그랬지? 죄송해요!"
남자 : 여기가 제 빵이고 저기는 누나 빵이에요. 여자 : 정말 크고 좋네요.
결국 수업 후에 다같이 이런 저런 것을 나누어 먹으며 한국 노래들을 들으며 신나는 시간을 보내고 나자, 마리아나도 디미트라도 기분이 좋아져서 소풍이 취소된 것도, 문제를 틀린 것도 다 잊고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나의 말대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어디서 어느 때에 먹느냐가 참 중요하구나. 저도 새삼 느끼는 날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저는 소풍 때 싸갈 도시락 재료를 몽땅 다시 사야 하게 생겼네요.~
게다가 저희는 차로 이동하기로 해서 차에 기름도 든든히 채워 두었는데,
이 것으로 어디 다른 곳이라도 드라이브를 다녀오고 싶네요~
여러분, 맛있는 것을, 좋은 사람과, 좋은 곳에서 함께 드시는 그런 주말 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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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님들께만 발행해드리고 있는 티스토리 초대장은 반드시 이메일이 있어야 보내드릴 수 있어요ㅠㅠ 부탁드릴게요. 이메일을 남겨주세용! 내일까지가 마지막 신청일이고요. 다음 신청일은 6월에 다시 시행할 예정입니다.
* 다음 포스팅은 내일 저녁에 있을 예정이고요. 다음 주엔 요즘 많이 물어보시는 그리스 여행에 대한 포스팅도 있을 예정입니다.
앞으로 포스팅은 일주일에 6일 포스팅을 유지하되, 한 달에 사흘 더 포스팅 휴무가 있을 거에요. 물론 휴무 전에 미리 말씀드리도록 할게요~ 일단 이 체제로 가보고 다시 조절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저를 생각해주시고 격려와 여러 의견 내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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