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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딸을 이런 남자에게만 허락한다는 그리스인 아빠 동수 씨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5. 8.

 

 

어버이날이라고 동생이 부모님께 꽃 배달을 시켜드려야 하는데 해외라 그런지 결재가 자꾸만 에러가 난다며 전화가 왔습니다. 같이 인터넷에 들어가보며 통화를 하다 보니, 오랜만에 이런 저런 이야기들까지 길게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긴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자, 동수 씨가 "무슨 할 말들이 그렇게 많아~ 한 시간도 넘게 통화하네~" 라며 툴툴거리길래, "응. 한국은 내일이 어버이날이잖아. 시차와 거리가 있으니 딸이 셋이나 있어도 이렇게 부모님을 챙겨드리는 것도 참 쉽지 않네. 그래도 동생이 저렇게 잘 챙기는 편이라 다행이야." 라고 대답했습니다.

 

 

제 말을 들은 동수 씨는 "아! 맞다! 그렇네... 그리스랑 어버이날 날짜가 다르니 신경을 잘 못 썼네. 전화 드릴 때 나도 바꿔 줘." 라며 한국의 장인 장모님에 대해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갑자기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으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올리브나무! 마리아나가 언제까지나 여기 그리스에 살 거라고 생각하지 마.

마리아나가 조금 더 큰다면, 어쩌면 한국에서 살고 싶어할지도 몰라."

 

갑작스럽게 동수 씨가 던진 화두에 우리부부는 마리아나의 아직 기미도 안 보이는 먼 미래에 대한 열띤 토론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렇지. 나도 마리아나가 커서 한국에 살겠다면 말릴 생각은 없어. 다만 워낙 어릴 때 한국을 떠나오며 한국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한국을 너무 환상적인 나라라고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런 환상이 있다면 나중에 한국에 살게 되었을 때 힘들 테니 말이야. 어린 기억 속의 좋은 것들만 가득하다고 기대했다가, 만약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된다면 놀랄 일이 많을 수도 있으니… "

 

"그건 그래. 마리아나가 한국에서 자라지 않았는데 커서 한국에서 일을 한다면 문화가 낯서니 힘들 수도 있겠지. 나도 한국에 살 때 어떤 동료가 부득이한 일로 20분 지각한 것 때문에 해고 되는 것도 봤었으니까. 물론 그 전에 회사에서 찍힌 게 있었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핑계 김에 자르는 거지. 근데 그 친구는 별 문제 없이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거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부서에 새로 들어오겠다고 줄 선 사람이 많았던 듯 하더라고. 그 때 회사 경영이 좀 어려웠는데 더 싼 임금에 그 친구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신입사원을 채용하기 위해서 그냥 잘라버린 거지 뭐. 나도 이해는 하지만, 좀 너무 하다 싶었어. 하지만 한국은 살기에 재미있는 나라잖아. 맛있는 것도 많고 놀 거리도 많고. 난 마리아나가 한국에 사는 것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 자기 좋아하는 음식도 실컷 먹고. 혹시 그 때는 또 그리스 음식이 그리울 수도 있겠지만?"

 

"그럼, 당신은 마리아나가 나중에 결혼한다며 한국 남자를 사위로 데리고 와도 괜찮다는 거지?"

 

"물론이야.

한국 남자, 괜찮잖아. 정 많고, 속도 깊고. 그리스 남자처럼 허세도 별로 없고.

난 찬성!"

 

저는 동수 씨가 한국 남자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 했기 때문에 좀 깜짝 놀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수 씨가 한국에 살 때에는 지하철이나 길에서 마주치는 한국의 이십 대 남자들에 대해서 늘 했던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한국의 젊은 남자들은 저렇게 좀 여자같이 옷을 입는 남자가 많을까? 꽃미남이 되려고 멋을 내는 것은 좋은데, 지나친 스키니 바지나 얼굴에 색조화장 하고 다니는 남자들을 보면, 그리스에서라면 분명 성 정체성을 의심받을 것 같은데..."

"그건 그리스 남자들은 마초적인 매력을 중요시 하니까 그런 것이고,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는 그리스처럼 근육남도 좋아하지만, 거칠지 않은 부드러운 외모에 여성을 배려하는 따뜻한 성격의 남자도 아주 인기라고."

"음. 그렇구나. 우리는 무조건 남자는 카리스마 있고 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라마다 문화는 다른 거니까."

 

 

그랬던 동수 씨가 한국 남자가 정 많고 속이 깊고 그리스 남자처럼 허세도 별로 없어서 사윗감으로 괜찮다니 의외이면서도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리스인 스스로 허세가 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니 놀라운 걸!^^'

 

 

 

저는 동수 씨가 혹시라도 사윗감에 대해 굉장히 열린 자세"누구라도 네가 좋다면 아빠도 찬성이다." 라는 생각을 가졌나 싶어, 좀 더 자세히 물어보았습니다.

"그럼 한국 남자가 괜찮다면, 또 다른 나라 남자 중에 사윗감으로 괜찮은 남자는 어떤 남자인데? 난, 솔직히 마리아나가 19살 이후로는 어느 나라에서 살겠다고 해도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 그게 공부 때문이든 일 때문이든 자신이 해보고 싶은 여러 가질 경험해보며 살면 좋겠어. 여기 그리스 아이들은 영국이나 독일, 미국, 이탈리아 등 다양한 곳으로 공부하러 떠나기도 하니까 마리아나도 원하면 갈 수도 있는 것이고. 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려고 해. 다만 아이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건강하고 강하게 자라주길 바랄 뿐이야. 그래야 어디서 어떤 삶을 살더라도 잘 이겨나갈 수 있을 테니… 그러고 보니…앞으로 겨우 10년이네. 10년 금방 가는데…"

 

그런데, 제 말을 거기까지 차분히 듣고 있던 동수 씨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특유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안 돼! 난, 다른 나라에 사는 것까지는 찬성이지만, 아무 나라에나 가보라고 할 수는 없어!!

내 기준에서 허락이 안 되는 남자들이 있단 말이야.

만약 그런 놈을 남자친구라고 집에 데리고 오기만 해.

내가 사냥총을 준비하고 기다릴거야!!!!!!"

흥4

 

헉

"진..진정해. 사냥총까지 준비할 필요가 뭐가 있어. 도대체 어떤 남자는 사윗감으로 안 되는데??"

"우선! 난 터키 남자는 안 돼!"

(저는 어제 터키 아저씨들을 슈퍼에서 만난 이야기도 동수 씨에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인들이 터키인들에 대한 감정은 역사적인 배경 – 터키의 그리스 침략과 지배, 무자비한 학살, 종교나 문화, 언어 강요 등 - 때문에 정말 좋지 않아서, 제가 잘못 터키인 편을 드는 이야길 꺼냈다간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도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듯 불 같은 화가 돌아올 수가 있으니까요.)

 

"그래, 뭐 그건 나도 그리스인 정서를 이해하니까... 또 다른 남자는?"

"난, 독일 남자도 내 사윗감으로는 싫어. 내 친구로는 독일 남자 물론 괜찮아! 남자 대 남자로는 독일인들도 괜찮으니까. 하지만 독일 남자들은 대부분 아주 고리타분하고 재미가 없어. 우리 마리아나가 그런 남자랑 결혼한다고 생각해봐. 어휴! 얼마나 인생이 지루하겠어???

다른 성격의 여자애라면 독일 남자도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마리아나는 독특한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아이라고. 내가 그 부분을 얼마나 좋아하는 지 알지? 그런 아이가 지루한 남자랑 결혼한다면? 끔찍하지 않겠어?"

 

"그래...뭐. 하지만 모든 독일 남자가 그런 것도 아닌데 너무 단정지어 생각하지 마."

"아무튼 마리아나와는 안 맞아. 그래서 안 돼!"

 

이쯤 되니, 또 좀 차분하게 말을 하는 듯 하던 동수 씨는 다시 벌떡 일어나서 흥분을 하며 고래고래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만약에 마리아나를 울리는 놈이 있어봐.

아주 이 놈 얼굴에 펀치를 가하고, 총으로 협박해서 쫓아버릴 거야!!!!!

사기꾼 같은 놈도 안 되고, 입만 싼 놈도 안 돼! 책임감 없는 놈도 안 되고! 바보 같은 놈도 안 돼!

남자가 머리를 잘 써야 처 자식을 책임지지. 뺀질 대는 놈도 안 돼!.

암튼 이상한 놈은 다 안 돼!!!!!"

아자

 

저는 시끄러워서 도저히 동수 씨의 이야길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었습니다.

 

" 알겠어. 알겠다고. 그러니까 뭐야? 결론은 그리스 남자, 아니면 한국 남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소리처럼 들려. 그런 거야?"

"흠, 그건 아니지만 그러면 최고지. 내가 볼 때는 그리스 남자와 한국 남자가 최고야!!!"

ㅎㅎㅎ

 

결국 동수 씨가 딸아이의 사윗감으로 허락하는 남자'사기꾼 같지 않고, 입만 싸지 않고, 책임감 있어야 하고, 바보 같지 않고, 머리도 잘 쓰고, 지루하지 않고, 정이 많고, 속이 깊은 한국 남자나 그리스 남자'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 딸, 과연 연애나 할 수 있을까요?^^

만약 중학생쯤 되어 마리아나가 남자친구를 집에 소개시키려고 데리고 온다면, 그 땐 진짜 총은 안 되니 비비탄 넣은 장총을 준비하고 어떤 놈인지 딱 기다리겠다는 동수 씨 앞에서 말이지요.

참...한국 아빠들 만큼이나 딸 사랑이 강한, 그래서 딸 결혼 시킬 때 가진 것을 다 퍼주는 그리스인 아빠답습니다.

 

더불어, 우리 아버지도 저 때문에 참 많이 속 상해 하셨는데 싶어서, 이 어버이날, 멀리서 부모님께 참 죄송한 마음만 드네요.

 

여러분 따뜻한 어버이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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