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저녁이면 정신 없던 하루 일과를 마무리 하며 저는 글을 쓰려고 자리 잡고 앉습니다.
어떤 땐 소파, 어떤 날은 식탁, 어떤 밤은 침대..
글을 쓰는 장소는 바뀌고 글의 내용도 바뀌지만, 바뀌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조용하게 글을 쓰는 시간은 쉽게 주어지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곳 시간으로 밤 12시 전까지는 글과 사진을 편집해 올려야 한국에선 아침 7시 전에 글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까지 글을 올리기 위해 자리 잡고 앉은 저녁 8시, 9시는 저희 집이 가장 북적이고 시끄러운 시간이지요. 매니저 씨는 막 퇴근을 해서 씻고 뭘 좀 먹는 시간, 딸아이는 숙제를 하는 시간입니다. 간혹 강아지 막스가 문을 벅벅 긁어대기도 하고, 시어머님이 뭔가를 찾으러 혹은 갖다 주러 왔다 갔다 하시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마리아나의 숙제를 더 일찍 하게 하려 해도 하교 후 늦은 점심이 끝나고 영어나 체조 학원을 다녀오면, 하루는 어느새 다 저물어 있습니다.
제가 식탁에 노트북을 켜고 앉아, 생각하고 조사했던 내용들을 타닥타닥 글로 입력해 나갈 때, 녀석은 시종 일관 "엄마, 이건 뭐야?" "이건 왜 이러지?" 숙제에 대해 물어보곤 합니다.
글은 툭 끊어지고, 쓰다가 다시 멈춰야 하고, 편집하길 중단해 흐름을 놓치고...그러길 수 차례 반복합니다.
그런데, 많은 숙제에 대해 늘 전전긍긍 예민한 녀석이, 한번씩 아주 조용하게 엄마가 글을 집중해서 쓰도록 내 버려 둘 때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만들기 숙제를 하는 날이나, 다른 숙제가 끝나고 혼자 뭔가 만들고 있을 때입니다.
어제 밤 스케이트에 관한 글을 쓸 때에도, 옆에서 마리아나는 학교 숙제인 신문 만들기에 열중해 있었습니다.
신문 이름이 '마리아나의 스토리' 네요.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콧노래를 부르며 만들었습니다.
"엄마! 난 만들기가 정말 좋아!
아무리 계속 만들고 또 새로운 것을 만들어도
지겹지가 않아!"
이렇게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니, 엉덩이를 몇 시간을 붙이고 앉아 한 마디 말도 없이 만들고 또 만듭니다. 늘 새로운 만들 거리를 찾다 보니 어떤 땐 유튜브에서 만들기 동영상을 찾아 처음 보는 주제의 만들기를 시도하기도 하지요.
방학 동안 수첩을 만들어서 친척마다 나누어 주고도 남은 수첩들입니다.
이렇게 끝없이 만들어 대니, 만들기의 결과물들과 조각 조각 남은 재료들은 집안 구석구석 차고 넘쳐서
청소하던 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어김없이 저녁이 되면, 저는 노트북을 펼치며 딸아이에게 마치 한석봉의 어머니라도 된 것처럼 말을 건넵니다.
"너는 네 것을 만들어라. 난 내 글을 쓸 테니."
"........................................."
다른 숙제를 할 때는 그렇게나 질문을 하며 궁시렁 말이 많던 저 아이, 완전 좋아하는 만들기를 할 때에는 저의 이런 웃음 섞인 말이 들리지도 않을 만큼 집중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 아이는 태어나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여태껏, 뭔가 끊임없이 자르고 붙이고 조물거리는 만들기를 해왔는데, 그 시간이 굉장히 편안하고 행복한가 보다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원고지에 첫 글을 쓰며 아주 이상한 감정을 느꼈던 아홉 살 무렵부터 여태껏, 뭔가 끊임없이 깨작대며 글을 써 왔는데, 이 시간이 많이 좋고 고맙구나 싶습니다.
그렇기에, 저 아이는 때론 뜻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물건에 스트레스를 받지만 계속해서 만들기를 하는 것이고, 저 역시 자주 뜻대로 써지지 않아 머리를 쥐어 뜯으면서도 계속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는 거겠지요.
만들기와 글쓰기가 우리의 본업은 아니고, 쉽지 않은 여건에서 노력과 시간을 소모해야 할 때도 많지만, 하루 중 잠깐 잠깐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구나 싶습니다.
"우리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에 감사하자. 딸아."
행복한 주말 되세요!
관련글
2013/05/31 - [소통과 독백] - 저는 오늘 딸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2014/01/05 - [소통과 독백] - 글을 두 개나 쓰고도 발행을 못 하는 이 답답이를 어쩌나요.
* 이벤트 엽서를 받으셨다는 분이 반 밖에 되지 않아서, 도대체 이 엽서들의 행방이 참으로 궁금한데...아직 못 받으신 분들에겐 다시 보내야 하는 건가 싶고 그렇답니다...어쩐다지요~~
'소통과 독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민국 블로그 어워드 2014? 내 블로그가?! (43) | 2014.02.25 |
---|---|
그리스의 지친 퇴근 길, 날 설레게 한 사람 (46) | 2014.02.17 |
푸핫, 얼굴 시리지 않게 V라인으로 머리 묶는 법! (51) | 2014.02.13 |
여러분은 올해 어디로 가고 계세요? (51) | 2014.02.08 |
심심할 때, 난 웃고 싶다! (114) | 2014.01.18 |
딸아이 담임선생님, 내게 손을 내밀다. (67) | 2014.01.09 |
글을 두 개나 쓰고도 발행을 못 하는 이 답답이를 어쩌나요. (45) | 2014.01.05 |
이제야 밝혀진 나의 마취 중 진담 (57) | 2013.12.04 |
오늘 매니저 씨가 나에게 성형했냐고 물은 이유 (60) | 2013.11.29 |
막말자들이여. (159) | 2013.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