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실 어제 거의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다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새벽에 아이를 깨워, 좀 길이 막혔던 날이라 30분 넘게 운전해 학교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여름과는 느낌이 많이 다른, 요즘의 로도스 사진들입니다.
(왼쪽 - 중세 고성마을 빨리아 뽈리 / 오른쪽 - 시내 중앙우체국)
그리스 초등학교는 아이를 건물 안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주어야 하고, 데리고 나올 때도 건물 안에서부터 아이를 데리고 나와야 해서 등하교 길엔 주차전쟁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가능하면 부모들에게 매일 아침 전교생 아침 조회에 아이들과 함께 참석하도록 권하고 있어, 일이 바쁜 부모들은 직장으로 출근하고, 보통 30%정도의 부모들이 남아 조회에 함께 참석합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아침 조회를 지켜보지도 않았고, 사무실에 출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매니저 씨와 가게 직원에게, 일이 바쁜 줄 알지만 딸아이를 좀 하교시켜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올해 들어 처음 있는 일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딸아이의 하교를 부탁한 것이요.
그러니까... 매니저 씨가 워낙 일이 바쁘다 보니, 제가 혹 몸이 아파 일을 못 하는 날이더라도 딸아이 등하교 만큼은 빠짐없이 시켜야 했기에, 지난 1년간 평일에는 단 하루도 집에서만 온전히 있을 수 있는 날이 없었단 얘기입니다. 심지어 제가 수술을 했던 지난 봄에도 제가 딸아이 등하교를 시켰으니까요. 당시 여름 시즌이 시작되며 매니저 씨는 큰 일을 많이 맡은 상태여서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나 형제, 아니면 아주 오래된 친구이든...누구라도 친정 식구가 있었다면 좀 이런 부탁을 맘 편히 할 수도 있을 텐데 여긴 아무도 없는 곳이고, 학교 다른 아이를 제가 대신 하교 시켜 준 적은 있지만, 저희 집이 좀 학교에서 멀기에 다른 부모에게 저희 아이의 하교를 부탁한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오늘 저는 1년만의 휴식을 가졌습니다.
알람 없이 긴 잠을 잤습니다.
다행히 시어머님은, 제가 아침에 오늘은 이래저래 좀 쉬어야겠다고 말씀드리자, 저희 집에 두 번 밖에 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시아버님과 함께 오후에 돌아온 딸아이 밥을 챙겨주고, 학교에서 크게 넘어져 왕창 깨져온 무릎을 치료해준 뒤 다시 또 밀린 집안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퇴근 후 제 얼굴을 본 매니저 씨는 완전 빵 터져서 웃으며,
"너 성형했어? 얼굴이 그게 뭐야? 혹시 안젤리나 졸리가 부러웠던 거야???" 이러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급한 마음에 거울을 들여다보니 글쎄 제 입술이…제 입술이….!!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로도스엔 간혹 겨울 모기가 있는데, 하필 제가 자는 동안 제 윗입술을 딱 물어 준 것이지요.
(아래 위, 입술 크기가 완전 다르지요? 근데 입술이 저 지경이 되도록 모를 만큼 정신없이 잤나 봅니다...)
매니저 씨는 이 모습이 너무 웃긴지, 계속 저를 "안젤리나! 윗입술만 이렇게 만들기도 쉽지 않은데! 난 성형한 안젤리나 올리브나무가 아주 맘에 들어!" 라고 놀렸습니다.
"이, 이게, 이게 맘에 든단 말이야? 뭐야!?"
라고 말을 하면서,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드문 겨울 모기가 하필 이런 때에,
우울할 틈도 주지 않고 하필 윗입술만 물어서,
내 인생을 또 웃프게 만드는가'
라고요.
허허..점점 감각도 없는 윗입술 때문에 자꾸 커피를 흘리고 마시니, 어이없어 웃음만 나옵니다.
웃으라고 생긴 일인가 봅니다...
감사한 댓글 남겨주신 모든 분들, 또 묵묵히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정말 머리 숙여 감사하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읽으면서... 많이 힘이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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