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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독백

딸아이 담임선생님, 내게 손을 내밀다.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1. 9.

 

 

 

*이 글은 오해 없이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독백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

 

 

 "리아나는 이번 학기 수업태도가 좋았어요. 좀 엉뚱한 질문을 가끔 하는 것과 수줍음이 많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학교가 정한 기준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시험이나 쪽지시험, 숙제 결과도 포함되었지만, 이런 부분 때문에 성적을 잘 주었습니다."

알렉산드라Αλεξάνδρα, 담임선생님은 예의 말투대로 건조하고 실수하지 않으려는 듯 입술에 잔뜩 힘을 준 채로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3학년 1학기가 마무리 되는 날이었다. 학부모 동반 자녀 개별 면담을 했고 선생님으로부터 그렇게 딸아이에 대한 극찬에 가까운 이야길 들으면서도, 또 그 중요한 성적표를 건네 받으면서도, 또 각 과목 선생님이 성적을 주며 딸아이에 대해 남겼다는 메시지들을 전해 들으면서도…내 신경은 온통 내 오른손에 쥐고 있는 작은 쇼핑백에 쏠려 있었다. 어떻게 줄까, 줄 때 선생님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싫어하진 않을까….이런 생각들로 심장이 두근대고 있었다.

 

  블로그에서 선생님에 대한 글과 내 진심을 오해한 이들에게 막말 폭탄을 맞은 후 마음이 툭 하고 떨어져 싸늘해진 것과 상관 없이, 실제 선생님과 나 사이는 평온하기만 했다. 등 하교 길에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실수하지 않고 말하고 업무를 처리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녀의 긴장된 표정 때문에, 그 글 이후로도 몇 번이나 이어졌던 무단 결근에 대해 난 차마 묻지도 못했다. 다른 엄마들 역시 이에 대해 뭔가 선생님에게 말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 말들이 있었으나, 매일 마주치는 그녀의 그런 긴장된 얼굴과 힘이 잔뜩 실린 말투는 어쩐지 학부모들을 자꾸 밀어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다들 일단 두고 봐야겠다 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하지만 내 속 마음은 이렇게 시끄러운데 표면적인 그녀와의 관계는 평온하기 그지 없는, 난 이 거짓 평화를 이어 나갈 것인지 아님, '한 덩어리로 엉킨 미역을 풀어 줄에 가지런히 널 듯' 내 마음을 낱낱이 풀어 해결을 보아야 할 지 결정해야 했다.

 

 그녀에게 편지를 건네며 먼저 손을 내밀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던 것은 사소한 어떤 날 때문이었다.

  가 세차게 오던 날, 학교가 끝나 아이를 데리고 학교 주차장을 빠져 나오려는데 앞 차들이 일렬로 길게 늘어서서 나가질 못 하고 있었고, 난 차량 행렬 꽁무니에서 앞 차가 움직여주길 기다리며, 유리창에서 신나게 춤추는 와이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멀리 주차장 입구에서 우산 없이 비를 쫄딱 맞으며 작은 여자아이와 뛰어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내 차 쪽으로 가까워지는데 빗속이라 잘 보이지 않아 눈에 힘을 주며 바라보니, 담임선생님과 아싸나시아Αθανασία, 그녀의 어린 딸이었다.

그녀의 딸 아싸나시아는 올해 1학년에 입학했다. 아주 영민한 눈에 정확한 발음을 갖고 있는 예의 바른 아이임을 알고 있었던 것은, 교실 앞에서 그 아이가 선생님인 엄마를 기다릴 때 나는 딸아이를 기다리며 몇 번인가 대화를 나누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내 차 옆을 지나치려는데, 난 본능적으로 황급히 창문을 내리며 물었다.

"선생님! 차, 멀리 세워 놓으셨어요? 태워다 드릴까요?"

선생님은 입술에 힘을 주어 말을 하느라 입술 끝에 맺힌 빗방울을 삼켜가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바로 저 뒤에요. 괜찮아요."

대답을 하면서도 그녀는 뛰고 있었다. 나는 걱정이 되어 내 차를 이미 스쳐 지나간 그녀를, 사이드 미러를 통해 눈으로 쫓았다. 그런데 내 눈에 걸린 것은, 비 맞은 그녀의 밝은 갈색 머리가 아니었다. 그녀의 작은 딸 아싸나시아의 젖은 외투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 작은 아이의 어깨를 최대한 자기 쪽으로 끌어 당겨 움켜쥐느라 힘이 잔뜩 들어가 핏기 없는 그녀의 왼손이었다.

아이를 비 맞지 않게 하려고 어떻게든 움켜쥔 엄마의 손.

이런…!

순간 난 그녀를 그만, 이해해주기로 결정해 버렸다.

 

 

  지 않으면서도 자세히 살펴보면 패션감각이 좋은 그녀였다.

작게 달랑거리는 수공예 귀걸이, 신비로운 갈색의 스카프, 갸름한 턱 선에 잘 감기는 짧은 커트 머리…

눈 앞에 그려진 평소 그녀의 모습이다.

 

정성스런 편지를 쓰고 싶었다.

그리고 그 편지에 어울리는 '내 아이를 잘 봐 달라.'는 뇌물 같은 선물이 결코 아닌, '당신 마음을 이해해요.' 라는 소박한 선물을 하고 싶어 그녀를 찬찬히 떠올려보았던 것이다.

 

쇼핑몰, 가게란 가게는 다 헤집고 다녔다. 소박하지만 상대가 딱 좋아할 그것을 찾기 위해서 고단한 줄 모르고 돌아다녔다.

가게를 돌며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늘 실수하지 않으려고 온 몸에 힘을 주고 안간힘을 쓰지만, 무단 결근이나 혹은 아이들에게 필요 이상의 호통을 치며, 혹은 무언가에 쫓기듯 집중해서 상대의 말을 잘 놓치는' 그런 그녀, 물건을 한번 들었다 내려 놓을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건 내가 늘 완벽을 추구하는 강박을 갖고 살지만, 결코 완벽할 수 없다는 함정에서 허덕이는 것과 마찬가지인듯 보였다.

어떤 땐 그 함정이 사자 굴처럼 끔찍하고 어떤 땐 진흙탕처럼 날 옥죄어 오지만, 어느 순간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인간인지 깨달을 땐 이내 함정 따윈 사라지고 '괜찮아 실수하며 사는 거야' 느긋해지길 반복하는 나다.

 

  선물은, 적당한 크기로 타는 시간이 길며 단정한 장식이 있는 향초 두 개로 낙점되었다. 시나몬 향과 진한 체리 향의 초였다. 사실 감각 있는 오스트리아 고모님이 좋아하는 향이다. 그 두 초의 오묘한 색깔이 평소 담임선생님이 자주 목에 두르는 신비로운 갈색 스카프와 그녀의 안경태를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아싸나시아에게도 편지를 썼고, 그 작은 소녀를 위한 선물도 샀다. 그리스 학교 수업에선 많이 사용해, 자주 사야 하는 색깔 팬 세트였다. 마지막까지 처음 쓰듯 쓸 수 있는 괜찮은 브랜드로 골랐다.

 

편지에 긴 말은 필요 없었다. 그저 "감사했습니다. 좋은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이 정도면 족하다 싶었다.

이상했다. 참 할말이 많았었는데, 그녀의 좀 이상한 행동을 그냥 이해할 것 같아지자, 내 마음은 '잘 널어 말려 최상품으로 포장된 미역'같이 정갈해져 버렸다. 그래서 긴 편지가 필요치 않게 되어 버렸다.

 

  "자, 즐거운 방학 보내렴. 마리아나!" 라며 상담을 마무리 하려는 그녀에게, 난 그제서야 오른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내밀 수 있었다. 그녀가 무엇이냐고 물을 까봐 급하게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시라고요!" 덧붙이면서.

안경 너머로 눈이 동그래진 그녀는 순간 놀란 눈치였다. 그러고 보니 올해 선생님의 책상엔 선물이 많지 않았다. 그 어느 해보다 세금폭탄, 고용보험 삭감 등으로 재정적 압박을 받고 있는 그리스인 부모들이었다. 게다가 늘 경직된 선생님의 태도에, 부모들은 선생님을 친근히 여기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예년과 달리 크리스마스 선물을 많이들 못 하고 넘어가는구나 싶었다.

왼손으로 선물을 받아 든 선생님은, 짧은 순간 작은 쇼핑백을 멍하니 보는 것 같았다. 마치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사람처럼.  하지만 이내 재빠르게 내게 악수를 청했다.

어색할 새라, 나도 냉큼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녀의 오른손은, 비가 왔던 날 그녀의 딸아이를 움켜쥐었던 왼손만큼이나 힘이 들어가 있었다.

참 이상했다. 여느 그리스인들 여성들처럼 뺨키스를 하지 않고 힘찬 악수를 청하는 그녀가.

그리고 그 힘찬 악수와 달리,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며 낮게 떨리는 목소리가.

그녀는 얼마나 오랜 세월, 이렇게 삶에 힘을 주고 경직된 채 살아 왔던 걸까.

어떤 이유로? 부모와의 관계? 성장 배경? 남편과의 관계? 재정적 이유? 타고난 성격?

꼴에 상담 공부 좀 했다고 머릿속엔 많은 경우의 수가 한꺼번에 떠올랐지만, 그런 이유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녀의 내면까지 딱딱하게 화를 내고 있는 게 아니고, 진심이 그게 아니란 걸 알았으면 되었다 싶었다.

 

 

 오늘 딸아이가 개학을 했다. 등교 길, 난 담임선생님을 보름 만에 만났다.

개학 후 첫 운동장 조회라 대부분 부모들이 조회에 함께 참석했다. 특별한 전달사항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조회 중간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난 고개를 까딱 눈으로 인사를 전했다.

그런데 조회가 끝나고 선생님이 내게 일부러 다가왔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좀 당황한 나에게 선생님은 오른손을 내밀었다. 힘차게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좋은 새해 되세요!"라며, 입가에 웃음을 물고 말했다.

마주 잡은 그녀의 손은 여전히 힘찼지만 부드러웠다. 입술엔 웃음을 물어 힘을 줄 수 없는 듯 했다.

 

내 마음이 전달되었구나, 싶었다.

 

그렇게 내 마음 속 정갈한 미역 박스는 완판되었고, 나는 날아갈 듯 가볍게 학교를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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