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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독백

여러분은 올해 어디로 가고 계세요?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2. 8.

 

 

제게 2013년은 몇 년간의 그리스 생활이 드디어 자리를 잡으며, 또 블로그에 거의 매일 글을 쓰며 유난히 바쁘게 지나가 버린 해였습니다.

그런데 2014년이 되면서 오래된 한국에 아직 펼쳐 두었던 일들을 대략 정리를 하기로 결정했기에 이제 좀 편할까 싶은 찰나에 다른 새로운 일들이 생겼고, 마치 한쪽 문이 닫힐 때 다른 한쪽 문이 열리는 것처럼 올 한해도 바쁘지만 좀 특별한 그런 한 해가 되겠구나 싶은 복잡한 심정으로 1월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1월을 보내고, 2월이 되니 그리스 남부인 이곳엔 작년처럼 비를 뚫고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1주일이면 피었다 사라질 벚꽃도 간간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봄도 아닌데 한국의 봄이나 가을에 봄 직한 꽃들이 이곳에선 겨울 비를 뚫고 피었다 순식간에 져 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비로소 2014년이구나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몰아치게 바쁜, 그렇지만 매일 일과가 똑딱똑딱 똑 같은, 그런 2월의 날들을 보내다가,

문득 오늘 아침 잠시라도 일상에서 깨어나자 싶었습니다.

저는 의무화된 일상을 살아나가느라, 살아 있고 깨어 있는데도 마치 '일상에 잠들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일어나, 올리브나무야.'

 

아이를 학교에 내려 주고 일을 시작하기 전, 잠시 오래된 도시란 이름을 가진 빨리아 뽈리에 들렀습니다.

겨울이라 상점들이 문을 닫았고 성곽 안의 일반 가정집들과 관공서들만 움직이고 있는 텅 빈 고성 안을 아주 잠깐 걸었습니다.

 

 

 

 

 

 

 

 

 

 

여덟 시가 조금 넘은 이른 아침, 수 천 년 전에 소크라테스와 제자들이 토론을 했던 광장을 지나 도서관 앞에 섰습니다.

 

책 냄새를 맡고 싶었는데 아직 시간이 일러 도서관 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고개를 돌려 고대의, 중세의, 그리고 근대의 사람들이 지나다녔을 텅 빈 길을 무심코 돌아 보는데, 바쁘다고 외면했던 제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 많이 외로웠던 제 마음이 말이지요.

 

순간순간, 내가 뭘 해도 이해해줄 오래된 한국의 친구들과 뜨끈한 바닥에 주저 앉아 커피를 마시며 질펀하게 목이 아프도록 수다를 떨고 싶었던, 눌러 놓았던 감정들이 마치 잠금 장치가 해제된 듯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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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십오 분쯤 걷다가 다시 성밖으로 발걸음을 돌려, 일상으로 복귀해야 했습니다.

 

다시 바쁜 시내로 돌아왔고 할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일상에 잠들지는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내 감정을 외면하고 그 감정을 만들어 낸 진짜 문제들을 반복적으로 외면하다 보면, 내가 아무리 대단한 곳을 향해 방향 맞춰 가고 있다 하더라도 그 과정이 즐겁지 않을 것이고, 결국 어디로 가고 있는지 조차 모를,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자꾸만 묻게 되는, 그런 이상한 삶에 놓이게 될 것이 뻔 하기 때문입니다.

 

가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타의로 자의로 부여된 의무들에서 벗어나, 나를 위로해 주어야겠다 싶습니다.

현실에서는 질펀한 수다를 떨 수 있을 만큼 오래되고 깊은 친구들이 이곳엔 없고, 내 성격에 시간과 신뢰가 쌓인 관계의 깊어짐 없이 아무에게나 속 얘길 주절거리지도 못하지만, 이곳에서 몇 년 동안 그래도 일상을 함께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조금씩 내 속을 좀 터 놓을 수 있어야겠다 싶었습니다. 늘 질문하고 상대의 이야길 고개를 주억거리며 듣고만 있는 내 자세가 참 방어적이었구나 새삼 깨닫게 됩니다.

 

사람에게 방어적이 되어버린 나는, 자꾸만 고양이에게만 속 얘길 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블로그에 매일, 혹은 가끔 들러주시는 여러분께 특별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곳에 제 속을 다 펼쳐 보여드리는 그런 이야기만 쓸 수는 없고, 여러분 또한 제게 댓글을 남기시며 속내를 다 드러내시진 못 하시겠지만,

그래도 여러분 마음이 울적하고 고단할 때, 잠든 일상에서 깨어나 이곳에 온다면 글의 주제와 상관 없이 어쩐지 잠시 쉴 곳이 되어 주는 그런 곳이 되었으면 싶습니다.

비록 제가 고성을 단 십오 분 밖에 걷지 못 했듯, 어쩌면 아주 잠깐 일상에서 깨어나더라도 말이지요.

제가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이유는, 여러분 또한 일상에 자꾸 잠들어 버리는 고단한 저에게 쉼이 되어 주실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

 

 

문득 성식이 형의 노래, '두 사람'이 생각나네요.

저와 여러분이 두 사람은 아니지만, 글을 발행하고 댓글을 쓰는 순간엔 여러분을 한 분, 한 분으로 여기며 글을 쓰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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